[민들레국수집 이야기]

술에 취해서 옆에 앉아 식사하는 손님을 못 살게 구는 사람, 음식을 접시에 잔뜩 욕심껏 담고 얼마 먹지도 못하고 남기는 사람, 남이야 기다리든 말든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면서 먹는 사람, 좁은 식탁을 혼자서만 독차지해버린 사람도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옵니다. 어르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간절히 부탁도 해 봅니다. 그래도 옆에서 식사하는 다른 손님을 계속 괴롭히면 강제로 끌어내기도 합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인데

술에 취한 손님이 밥을 드시러 왔습니다. 좀 쉬었다가 술이 어느 정도 깨면 다시 오셔서 식사하시라고 했더니 사흘을 굶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조금만 드시라고 허락했는데 너무 터무니없이 음식을 접시에 많이 담습니다. 겨우 자리에 앉아서는 밥은 먹지 않고 앞에서 식사하는 사람에게 시비를 겁니다.

“손님, 다른 분에게 그러면 안 됩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인데..” 오히려 화를 냅니다.

그러곤 반도 못 드십니다. 제가 잔소리를 합니다.
“아,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밥 한 그릇가지고 지랄이야.”
온갖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갑니다.

사과상자를 사물함처럼 들고 민들레국수집에 오는 손님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함께 식사하다가 사무엘 형제와 싸웠던 손님입니다. 얻어맞는 것이 고소해서 말리지도 않았습니다. 옛날 민들레국수집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유명한 양모 씨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몇 번이나 출입금지를 당했습니다. 지난번에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밥 먹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약속하고선 또 왔습니다. 사과상자에서 바나나 한 손을 꺼내더니 저에게 내밉니다. 받을 수 없습니다. 받았다가는 바로 코걸이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사과 상자 안에는 먹을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밥을 좀 먹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지난번에 다시는 민들레국수집에 오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하면서 막아섰습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합니다. 텔레비전에 한 번 나왔다고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냐고 합니다. 한참을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퍼부으며 떠들다가 제풀에 지쳐서 떠나갔습니다. 저는 아주 오래 살 것 같습니다.

세상에 남이란 없습니다

‘세상에 남이란 없습니다.’는 신영복 선생께서 쓰신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정말 세상에는 남이란 없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처음 온 손님입니다. 처음 보는 분입니다. 인사를 했는데도 무표정한 얼굴로 밥솥만 봅니다.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저 밥을 풉니다. 반찬을 담습니다. 국을 드릴까요? 물어보았더니 싫다고 합니다.

물 컵에 물을 담아서 가져다 드렸습니다. 손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처음 오셨습니까? 물어봐도 들은 체 만 체입니다. 그 손님 앞으로 가서 눈을 맞추면서 손님, 어디서 오셨어요?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몇 번을 물어보았더니 그제야 기분이 아주 나쁘다는 듯 왜 기분 나쁘게 꼬치꼬치 캐묻느냐는 것입니다. 남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 남이야 무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합니다.

제가 밴댕이처럼 삐졌습니다. 손님 말대로 남에게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남이야 밥을 먹든 말든, 굶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냥 가시라고 했습니다. 남이니까. 그러면서 손님을 식당에서 내보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오시는 분들은 거의가 다 남이니까 상관하지 않는 인정머리 없는 세상에서 밥 한 끼니 찾아먹기 힘든 분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이니까 자기와 상관없다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고 행동합니다. 속이 상합니다. 세상에 남이란 없습니다.

인정머리 없다더니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앞에 있는 교회 유치부 건물 계단에서 박 선장과 눈을 다쳐 붕대를 감은 친구가 한가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있습니다. 어제도 두 사람은 교회 건물 계단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분께서 불쌍한 두 사람을 왜 돕지 않느냐고 물어봅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오시는 분들 중에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제가 돕지 않을 수가 없는데, 알코올 중독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사람은 도울 길이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분께서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면서 두 사람을 부축해서 교회로 모시고 갔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보는 듯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침에 교회라면서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급히 교회에 가 보았습니다. 박 선장과 눈을 다친 친구가 술에 취해서 교회 밖에 끌려나와 벌벌 떨고 있습니다. 새벽녘에 두 사람이 교회에서 자다가 쫓겨났습니다. 누워 자던 의자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모양입니다. 인정머리 없다고 욕하던 사람이 더 인정머리 없는 짓을 했습니다. 참으로 대책이 없습니다.

서울에서 오신 손님입니다. 다리가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멀리 청량리역 근처에서 오십니다. 쪽방에서 혼자 산다고 합니다. 아주 편식이 심하신 분입니다. 네 번에서 다섯 번 정도 접시에 음식을 담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정도로 과식을 합니다. 첫 번째에는 밥은 담지 않고 반찬만 가득 담습니다. 반찬만 드시다가 비워지면 밥과 반찬을 담습니다. 마지막에는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으니까 가슴을 치면서 드십니다. 음식에 너무 욕심내시지 말라고 달랬습니다. 그랬더니 화를 냅니다. 나가서 가게에서 소주를 몇 병 마시곤 술에 잔뜩 취했습니다. 거의 세 시간이나 국수집 주변에서 욕하고 떠들고 난리를 쳤습니다. 두 번이나 겨우 달래서 보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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