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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김정은을 생각한다[시사비평 - 이수태]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 글을 써 보고 싶었다. 그런데 글이 잘 쓰이지 않았다. SNS에도 요즈음은 그 방면의 글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글이 잘 쓰이지 않는 것이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말해 주는 듯하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때가 아무래도 절정이었던 것 같다. 이어서 미국이 갑자기 몸을 도사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도대체 미국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의심이 드는 단계가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미국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확고하지 않은 것 같다. 그들 입장에서 보더라도 여기에 걸린 것이 단지 비핵화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은 경제, 군사 등 다방면에 걸쳐 생각보다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군사동맹은 유지할 의향이 있지만 한미일 군사동맹에 대해서는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드도 기왕 들여온 것은 그냥 두지만 더는 들여올 의향이 없음을 확실히 밝혔다. 한국과 미국이 이 방면에 걸쳐서 생각이 같지 않다는 것을 미국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 미국을 대상으로 호수 위의 백조처럼 분주히 자맥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말끔한 해법이 보이지 않고 결론은 마냥 미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미 북미 간에는 합의된 사항이 있느니 만큼 미국도 무작정 미루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년이 되면 무언가 진전되는 모습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는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국내 상황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가장 낙관적인 미래를 표명하고 있는 것은 아직은 트럼프만이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우리가 바라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미국의 평균적인 국민들마저 그렇다. 분단 70년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하면 미국도 마찬가지다. 모든 현실과 이해관계가 70년 세월에 고착되어 좀처럼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미국의 과거 70년은 그들이 말하는 영광의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 변화든 더 영광스럽지도 더 위대하지도 않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솔직한 실정이다.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우리만 하더라도 완고한 보수주의자들은 현재의 남북 대치 상황이 더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고 본다. 김정은이 서울에 온다니 인민군 탱크가 미아리를 넘어오던 것이 생각나는 구세대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정체 상황에서 가장 답답한 사람은 역시 김정은일 것 같다. 김일성과도 김정일과도 분명히 다른 노선을 천명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제재 조치에 막혀 한 발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으니 명색이 새 시대의 지도자로서 답답하지 않겠는가? 이 난국을 시원하게 열어 주지 못하고 있는 문재인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모든 상황이 나로 하여금 뭔가 말하기를 어렵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지켜보는 상황이 길어지는 중에 나는 이 모든 상황의 저변에 있는 6.25를 생각해 보는 나날이 많았다. 만약 6.25가 없었더라면 우리도 독일처럼 좌우 이념의 벽이 무너지던 20세기 말엽에는 그 어떤 형태로든 민족 현실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된 것이다. 김일성은 정권을 수립하고 2년도 안 된 시점에 남침을 단행했으니 정권 수립 전부터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가지고 지금도 그것이 통일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긍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부정적이다. 그 전쟁이 통일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144만 명(남북미중 도합)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폭력을 통하여 통일을 달성하려 했다는 것은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었다. ‘미국만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경험 없고 철없는 나이였음을 감안하더라도 김일성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70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마치 전쟁이 없었던 것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가장 큰 이유다. 나는 지금 묘하게 어려움을 겪으며 풀릴 듯 풀리지 않고 있는 남북, 북미 현안의 기초에서 또 다시 6.25를 본다. 맞다. 거기에 아직도 6.25가 있다. 가장 곤혹스런 상태에 빠진 사람은 김정은이다. 아무도 그 옛날의 전쟁을 가지고 명시적으로 문제 삼지 않음에도 김정은은 그 후과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이미지 출처 = Pixabay)

김정은을 생각하면 참으로 딱하다. 그는 아직 경험도 판단력도 부족하다. 그러나 옛날 김일성에 비하면 그는 탁월한 판단을 한 셈이다. 1970년대 초반, 김형석 교수는 어느 수업 시간에 1945년 고향 마을에서 김일성을 처음 만나던 느낌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아주 뛰어난 인물이라는 느낌은 없었어요. 구태여 말하자면 무슨 유격대 분대장 같은 느낌을 받았지요.” 김형석 교수의 느낌이 딱히 어떤 객관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를 유격대 분대장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그 이상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은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쳐 놓은 담장 안에서만 살았다. 그 담장을 오히려 더 폐쇄적으로 고착시키고 제도화한 것이 김정일이었다. 선군정치가 다 뭔가? 군이 민을 앞지르는 것은 동양의 오랜 관념에 있어서도 그 자체가 불길이자 불상이다. 온 세상이 피하는 구도 속으로 그는 스스로 기어 들어갔다. 나라는 평상의 체계를 잃고 비상의 체계를 갖게 되었다. 좋게 말해서 비상이지 달리 말하면 비정상이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든 것은 그런 체계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그것은 미국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였지만 설혹 그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꼭 그것만일까? 상황 변화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는 일당 독재 체제, 일제 패망 28년이 지나도록 괌의 동굴 속에 숨어 살던 저 패잔병 요코이의 국가적 행태가 어쩌면 김일성에게만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온 북한의 처량한 현실이 아니었을까? 김정일은 그런 비정상의 국가를 스물여덟 살짜리 어린 아들에게 물려주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김정은이 황망 중에 권력을 물려받고 벌써 7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그는 고모부 장성택을 죽였고 형 김정남을 죽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적잖이 일어났지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이 권력을 둘러싸고 일으켰던 사건들에 비하면 특별할 것도 없는 사건들이었다. 이어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급속한 개발 및 완성은 미국의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불러왔다.

이제 김정은은 그 모든 것을 폐기하고 국가를 정상화하겠다고 나섰다. 그것이 반드시 미국의 압박에 의한 결과인가 김정은의 예정된 수순인가는 구태여 따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실전에 쓸 것도 아니었고 먹거나 입을 것도 아니었다.

김정은의 선택은 옳았고 또 불가피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김일성의 70년에 걸친 긴 빨치산 국가 체제를 끝내는 것이었다. 원칙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을 드디어 청산하게 된다. 빨치산들은 이제 산에서 내려와 마을에 정착하게 되는 것이다.

문재인은 이 선택을 도와주었고 지지해 주었다. 백번 잘 한 일이다. 트럼프는 시간을 더 끌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후퇴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미국의 역할은 점점 줄어든다. 일본도 고만고만한 선에서 정체를 보일 것이다. 중국은 좀 더 역할이 커질 것이다. 쌍중단을 통해 서로서로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하라는 중국의 권고는 지금까지는 말 그대로 이행되었다. 더 이행되는 과정에서 김정은이 겪어야 할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남아 있는 빨치산 체제, 6.25 체제의 해체 과정이라 생각하고 그가 잘 견뎌 내기를 바란다. 어차피 그것들이 해체되는 과정은 험난하고 괴로울 것이다. 남한은 그 과정을 도와 주어야 한다.

나는 6.25를 이야기하였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걸리적거리고 있는 것의 깊은 정체를 밝힌다는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이지 새삼스레 그것을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그것을 문제 삼아 어쩌겠다는 것인가? 기왕불구(旣往不咎)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다 지나간 이야기들이다.

두 나라가 한 나라로 되는 통일은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점잖게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가능하고 우리가 진심으로 바란다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멀리 내다보며 깊이 생각하고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수태
저술가, 칼럼니스트, 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행정부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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