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 청천

지난 10월 말, 지역에서 생태적이고, 순환적 삶 그리고 작은 농사(소농ㆍ小農)를 지향하는 천주교농부학교 2기생들과 충북 청천지역에 자리한 청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청천ㆍ노나분회로 농촌 현장체험을 다녀왔습니다. 저희가 다녀온 곳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속리산 국립공원의 일부인 화양계곡과 선유동계곡이 이웃해 있고 백두대간이 지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동네입니다. 동네의 이름이 ‘청천(靑天)’인 만큼 맑은 하늘과 깨끗한 내를 품고 있는 살기 좋은 곳이죠.

젊은 귀농자들의 공동체

저희가 이곳을 농부학교의 현장체험 장소로 잡은 이유는 바로 젊은 귀농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생명농업을 실천하는 젊은 농민들이 많고, 또 지난 2002년에는 이곳에 사는 여성농민들로 구성된 ‘노나 분회’도 만들어졌습니다. ‘노나’는 ‘있는 것을 나누어 쓴다.’는 뜻의 순 우리말로, 농촌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이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가정에서의 친환경적인 삶의 실천 방법을 서로 나눈다는 뜻으로 이름 지어져,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것 이외에도, 지역 내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백두대간인 대야산 자락에 대규모 채석장 개발에 따른 자연 경관의 훼손과 주민들의 생존권의 위협에 맞서 채석장 개발 반대 운동을 벌였고, 얼마 전까지 지역 내 생수 공장 반대운동 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땅과 함께 하는 삶의 배움

천주교농부학교 학생들은 바로 이러한 농민들과 2박3일 동안 함께 먹고, 함께 일하며 ‘땅과 함께 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였습니다. 농부학교 학생들과 함께 2박3일의 시간을 지낸 농민들께서는 저희에게 “죽는 날까지 내 몸을 쓰며 평생을 사는 소중한 일”이 바로 농사일이며, 땀과 노동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일이 바로 농사일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기쁨’이라는 말이 히브리말에서 ‘뛰어놀고, 함께 어울림’이라는 뜻이 있음을 볼 때, 바로 농사일의 기쁨은 땀 흘려 일함(노동)을 통해 함께 놀고, 함께 어울리는 가장 기쁜 일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농부학교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그 소감을 적었습니다.

“자연과 사람들의 위대함에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이신 농민들의 영적 차원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느꼈습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농부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노동의 기쁨이란, 아이가 마냥 뛰노는 자연적인 감정과 같이,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고구마 줄기 다듬기>


또 다른 분은 “농산물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공기와 물처럼 생명을 지탱해주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자연이 허락해준 이 풍요로움이 너무도 오랫동안 일상화되어 그 가치가 폭락되어 있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전 지구적 환경 대재앙의 시대, 이러한 풍요에 지혜를 발휘해 지속가능한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농업은 결코 가볍게 다루어야 할 가치가 아님을 늘 잊지 않고, 하느님을 전하듯 인생을 통해 반드시 실현해야할 과제로 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은 억지로 흐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 청천지역에서 스물두명의 아이들과 ‘하늘지기 꿈터’를 아름답게 꾸며나가고 계시는 한 수녀님은 그곳을 떠나는 저희들에게 배움의 글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자연이다.

자연이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존재하지 않으니

그 삶이 어찌 고단하고 힘겹지 않으랴?

자연은 억지를 모른다.

모두가 저절로 이루어진다.

저절로 이루어지니 따로 힘쓸 데가 없다.

억지로 흐르는 물 못 보았고 기를 쓰고 피는 꽃 보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을 스승으로 보셨던 노자(老子)는 말하기를

나의 가름침은 매우 알기 쉽고 매우 하기 쉽다고 했다.

빈말이 아니다.

대나무가 너구리처럼 살려면 힘들겠지만

대나무가 대나무로 사는데 무슨 힘이 들겠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는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는 이현주 목사님의 글이었습니다.


땅과 함께 스스로의 노동으로 기쁘게 살아가는 삶,

바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삶이며,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저의 화두입니다.

 


/맹주형 200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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