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영적인 사람을 딱히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네요. 하지만 몇 가지 떠오르는 단어들로 연상해 보는 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깊이, 따스함, 기도, 웃음, 겸손, 지혜, 자비, 부드러움 등이 떠오릅니다. 

공자가 사람의 나이 예순을 가리켜 이순(耳順)이라 표현한 것으로 봐서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만큼 많은 것을 나눠 줄 수 있다고 할 만합니다. 물론 공자는 사람이 나이 드는 이치가 그렇다라기보다는 그 나이가 되면 그래야 한다는 당위를 말한 것이겠습니다만, 사람은 모름지기 나이가 들수록 그만큼 내적 여유를 가지게 된다는 뜻으로도 알아들을 만합니다.

어떤 개인이 유아기, 소년기, 청소년기를 무난히 거치며 성장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이런 낙관적 견해는 큰 무리 없이 통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이 초기 성장 단계들을 무난히 거친다는 것은 그 시기에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 이를 통해 자기애, 독립성,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을 습득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초기의 성장 단계에서 어떤 보살핌을 받고 습득하는가가 결국 일생 전반을 좌우한다는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성장기를 통해 필요한 삶의 태도를 각 시기에 적절하게 습득할 수 있다면, 그는 앞에서 언급한 영적인 이들이 지니는 면모도 키워 나갈 수 있습니다. 즉,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본당에서 뵐 수 있었던 한 신부님께서 금경축 행사 때 하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보좌로 발령을 기다리는 신부들 사이에서 당신이 만나고 싶지 않은 주임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살았던 것이 후회스럽다는 취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은 제 기억으로도 교우 분들과 긴장을 주고받으며 소위 “까칠한” 본당신부님이셨습니다. 그렇게 살아오셨던 분이 그런 소회를 밝히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솔직함과 변화에 대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좀 더딜 수는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사람들이 곁에 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자연스런 모습임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이 들수록 영적인 사람이 될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누군가 다른 사람들, 특히 후배들이 다가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모습은 중년을 넘어선 이가 자신의 경험을 나눠 주고자 하는 배려입니다. 더불어 그 역시 이런 나눔을 통해 더 배울 수 있습니다. 만남은 그 자체로 풍성함을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삶을 다할 때까지 성장할 수 있고요. 

나이가 들수록 영적인 사람이 되는 걸까?라는 질문에 대해 수도생활의 경험에 기대어 보건대, 자신 있게 답을 못 내리겠습니다. 수도생활을 하지 않는 상태보다는 좀 더 그럴 것이다라는 답을 하고 싶지만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그저 어릴 때부터 타인들과 어울리는 법을 잘 익혀 온 이라면 큰 무리 없이 공동체의 삶을 영위할 것이고 그만큼 자연스럽게 영적인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현실은 어디에든지 형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그는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끝까지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공동체가 그런 누군가에게 자신과 음식을 나눌 형제들을 마련해 준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로 보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당사자가 잘 알겠지요. 아무튼 이런 형제가 많지는 않다는 사실이 저로 하여금 수도생활을 하는 이들의 나이 듦과 영적 성장의 비례를 여전히 낙관하게 만듭니다. 그러고 보니, 우선 저부터 과연 나이가 들수록 영적으로 깊이를 더해 가는지 물어보며 살아야겠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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