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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아이코 수녀, 41년 동안 한국에서 봉사하다 선종-평생 가난한 이들 속에서 겸손하게 살아.. 일본에게 받은 한국인 상처 갚으려고 애써..

 

   

 

일본인으로서 40년 넘게 한국사회 안에서 예수의 작은자매회 회원으로 활동해 온 막달레나 아이코 수녀가 지난 7월1일 선종했다. 

   

7월 3일 오전 10시 서울대교구 역촌동 성당에서 거행된 아이코 수녀의 장례미사는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가 직접 주례를 맡아 봉헌되었다. 강우일 주교는 강론을 통해 "그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에 외교적 마찰도 많았고, 역사적 긴장도 많았는데, 일본사람으로서 한국에서 평생을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지낸 아이코 수녀"의 삶을 기렸다. 강 주교에 따르면, 아이코 수녀는 "한국에서 30여 년을 활동하고 부친의 병환으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9년 가까이 머물렀는데, 그후 일본에 남기를 거절하고 구태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생을 다할 때까지 온전히 자신을 봉헌했다"고 한다. 강 주교는 "아이코 수녀는 한국에 살면서 일본인으로서 그동안 한국인들이 일본에게서 받은 상처를 자신의 온몸으로 기워갚으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이코 수녀는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부터 샤를 드 푸코 성인에게 감화되었는데, 푸코 성인은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 오지에서 수도생활을 했으며, 예수의 작은 자매회와 작은 형제회의 영적 아버지다.  푸코 성인은 사제품을 받았으나 사제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고 그저 '예수의 작은 형제'로 불러주길 원했다고 한다. 푸코 성인은 사하라 오지에서 유목민들 곁에서 천막을 치고 살면서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신의 몸을 통해 복음을 선포했다. 강 주교는 "푸코 성인은 유목인들을 가르치기보다 사랑으로 다가가 그들과 똑같이 살다가 죽은 분으로, 아이코 수녀도 역시 삶으로 복음을 구현했다"면서 "예수의 작은 자로, 누이로 낮은 자들과 함께 살며 자신의 현존 자체로 신앙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또한 강우일 주교는 "아이코 수녀는 자매들과 이웃주민들과 동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40여 년을 한국에서 살면서 국경과 문화, 민족을 뛰어넘어 참된 하느님의 백성, 참된 예수의 작은 누이로 온유하고 가난하게 살다 갔다"고 말하며 아이코 수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날 미사에서 김정식 씨는 샤를 드 푸코의 <의탁의노래>를 불러주었으며, 추모시를 낭독한 어느 작은 자매회의 재속회원은  아이코 수녀가 차를 좋아하여 늘 향 좋은 차를 대접하곤 했다고 회고하면서, 그녀를 "따뜻한 언니"로 기억했다. 그리고 늘 서툰 일본발음으로 "증말 감사합니다. 증말 예뻐요"하던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한편 작은자매회의 마리아 수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아이코 수녀는 한국에 살고 있던 단 한 명의 일본인 자매로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여 있던 감정적 골을 메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서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아이코 수녀는 '제주'라고 답했다. 한국 발음이 서툴어도 제주 사람이라고 말하면 이해해 줄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한다.

아이코 수녀는 장례미사를 마치고 이날 오후 벽제에서 화장하여 길음동성당 납골당에 안치될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예수의 막달레나 아이코 수녀 발자취

아이코 수녀는
1938년 9월 13일 일본 큐슈우에서 태어나 
1962년 10월 22일 일본 동경에서 예수의 작은 자매회에 입회하고 
1965년 9월 25일 첫 서원을 했으며
1970년 5월 19일 종신허원을 하고 창설자 마들렌 소피 수녀의 제안에 따라 한국행을 결정하고
1971년에 한국으로 파견되어
이후 31년 동안 서울 혜화동, 대구자매원, 부산자매원, 서울 삼선동 등에서 일하다가
2007년 7월 12일 뇌암진단을 받고 서울 신사동자매원에서 1년7개월동안 생활하다가
2009년 7월 1일 선종했다.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세상속에서 하느님을 관상하는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성체를 중심으로 한 기도의 삶, 즉 세상에서의 관상생활을 추구한다.

1939년 사하라의 루그르트에 창립된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의 창설자 마들렌 수녀는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군의관으로 일하면서 아랍 소년의 생명을 구했던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에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아프리카와 아랍 사람들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가졌다. 유목민들의 삶을 동경했던 마들렌 수녀는 1921년 사하라 사막의 성자로 불렸던 샤를르 드 푸코의 전기를 읽고 그 안에서 자신이 키워온 삶의 이상을 발견했다.

그러나 전쟁이 몰고 온 가정의 시련과 건강의 악화로 꿈을 실현할 수 없었던 그녀는 1939년 그가 앓고 있던 변형성 관절염에 대해 "불구자가 되지 않으려면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으로 가서 사시오"라는 기적과 같은 처방을 받고, 사하라의 알제리, 이슬람 땅으로 떠나게 됐다. 무료급식, 진료, 교육 등의 일에 투신했던 마들렌 수녀는 1938년 성소식별을 위해 찾았던 푸코 신부의 무덤에서 사하라 교구장인 누에 주교를 만났고, 그를 통해 수도회 창설이라는 하느님 뜻을 받게됐다. 그녀는 백의회 수녀회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수도회 창설을 준비하고 1939년 첫 서원을 하게됐다. 이로써 '우애의 집'이라는 공동체가 사하라 사막 투구르트에서 태어나면서 수도회가 시작된 것이다.

노동자들과 장애인, 결핵, 나병 환자들 그리고 목동, 집시, 노점상인들 사이 곳곳에 우애의 집을 창설한 마들렌 수녀는 56년 로마에 총본부를 두었고, 64년 교황청 직속 수도회로 인가를 받았다. 보편교회 안에서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실현했던 그녀는 1989년 수도회 창설 50주년이 되던 해에 이 세상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살았던 마들렌 수녀는 회원들에게 '반죽 속의 누룩'처럼 대중 속에 섞여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 것을 당부했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 한사람으로 그들을 지도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친구나 형제로서 그들을 사랑하며 살도록 했다. 따라서 작은 자매들은 서민들이 사는 지역에서 그들이 하는 공장 노동이나 파출부, 농사일을 함께 하면서,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기쁨과 아픔, 하느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며 살고 있다. 수도자들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삶과 아울러 매일의 성체 조배를 통해 인류의 희망과 이웃들의 삶, 특히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을 전달하는 기도인으로서 전세계 각지에서 살아가고 있다.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의 한국진출은 1954년 마들렌 수녀의 한국방문으로 시작됐다. 나환자들 사이에 우애의 집을 짓고자 했던 수도회는 1955년 대구대교구 최덕홍 주교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 2명의 수녀가 경북 왜관 삼청동 나환자촌에 공동체를 마련했다. 이후 수도자들은 나환우들에게 효과적인 의료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연결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초창기 대구와 서울 명동성당 앞 마당 낡은 응급차 안에서 삶을 이어간 이들은 현재 서울과 대구, 광주, 대전 및 인천, 부산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김정식 곡 / 작은자매와 뱅상신부 노래 <예수의 샤를르 작은 형제의 의탁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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