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91]

다이어트 식단. ⓒ김혜율

나는 편식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음식 중에 안 먹는 재료만 따로 골라내는 법도, 남기는 법도 없다. 그리고 적당량 먹는 법도 없다. 늘 배부르게, 몸에 좋든 나쁘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내가 무엇을 먹는지 모를 만큼, 아니, 외면하면서 먹었다. 

물론 내가 먹고 난 빈 밥그릇과 국, 반찬 그릇을 보면 꽤 흐뭇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설거지할 물을 아끼고 세제를 아끼고, 처리하는 비용을 아끼고, 거시적으로 지구환경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그 옛날 집집마다 거름통을 가지고 있던 시절과는 달리, 음식과 쓰레기의 복합체를 내 몸에 들이부은 결과 뚱뚱해진 내가 보다 푸짐하게 싸는 똥은 딱히 어디 쓰일 데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살면서 주구장창 편하게 똥만 싸고 있을 수는 없다. 주기적으로 똥차(점잖은 명칭으로는 정화조 청소차 정도 되겠지만 너무 기니까 그냥 똥차라고 부르겠다)를 불러서 돈을 주고 우리 집 똥통을 비워 달라고 해야 하는데, 똥차를 부르면 꼭 아저씨가 평균적인 집보다 많이 푸느라 힘들었으니 돈을 더 내야 한다고 하신다. 다른 집은 10만 원인데 우리집은 12만 원이라고.... 

하지만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그저 감사하며 우리 집 똥통 비운 대가를 속 시원히 치른다. 매번 밥 잘 먹고 똥 잘 싸는 내가 특별히 기여한 덕분으로 2년에 한 번 풀 걸 1년마다 푸거나, 한 번 풀 때 돈을 더 내야 한다면 그 어찌 돈 낭비, 시간 낭비가 아니겠는가. 그뿐이 아니다. 깜빡하고 똥 풀 시기를 지나쳤을 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만 정화조가 차고 넘쳐 마당 땅속에 묻어 둔 똥수로관 어딘가가 터져서 마당이 폭발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는 공사를 했는데, 그 당시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았던 우리가 돈 좀 아낀다고 전문가를 초빙하지 않았던 게 문제다. 대신 전문가에 버금가는 준전문가와 비전문가가 합심하여 아마추어적 실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우리 집은 똥통 과부하로 폭발이 일어나도 역시.... 하고 이마를 칠 집이다. 똥 풀 시기가 임박해 오면 내 마음이 얼마나 불안해지는지 아마 남들을 알지 못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왜 똥 처리만큼은 4차혁명적으로 처리되지 않고, 꼭 눈앞에서 퍼 줘야만 되는지, 또 퍼 간 똥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는 건지 고민해 보지만, 내가 그 상세한 루트를 알 리가 없다. 그저 어떻게든 잘 처리될 거라고 믿고 넘어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나는 마침,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인재가 되기는커녕 그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가랑이가 찢어질 참이라서.

내가 앞서 남기지 않고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어서 지구환경에 작게나마 기여를 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좀 아니다. 자꾸 먹다 보면 옷이 작아지고 태가 안 나, 옷을 옷장에 쌓아 두거나 버려야 한다. 동네 헌옷 수거함은 늘 가득 차 있고, 한살림에서 하는 네팔 어린이들에게 옷 보내기 운동도 1년에 한 번뿐이다. 플리마켓을 열어 옷을 팔아 용돈이라도 벌면 좋겠지만, 나는 그 정도로도 부지런하지도 않고 계획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결국 옷은 지구쓰레기가 된다. 내 옷이 지구쓰레기가 되면 입을 만한 옷이 적어지고, 옷을 다시 사야 한다. 옷을 사기 위해 돈을 줘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저녁 자동차를 타고 배기가스를 뿜으면서 출퇴근을 해야 한다. 일주일에 휘발유값으로 7만 원을 쓴다. 그리고 일한다는 핑계로 매일 컴퓨터를 쓰고 수십 장의 파지를 분쇄기에 갈아 댄다. 또 일하느라 바빠서 요리할 시간이 부족하므로 손질한 식재료와 반조리식품, 냉동식품 등을 쌓아 둘 냉장고도 한 대 더 사야 한다. 나의 소중한 찬장엔 두고두고 먹을 간식들이 비상식량이라는 이름으로 쌓여 가다가 찬장 문을 열 때마다 발밑으로 와르르 무너진다. 

세상일은 한 면만 보면 안 된다고,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도 있는 것이고,(그게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어딘가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어딘가에는 해가 될 수도 있다더니, 내가 음식을 무분별하게 너무 많이 먹는 대식가 생활 패턴을 지속하는 한 지구는 더 오염되고, 내 삶의 다른 부분 또한 도미노처럼 쓰러져 갈 것임이 분명하다. 왜 그렇게 먹는가. 남들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고, 딱히 건설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이 없는 내가 쌓이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고 있다는 가설은 정설이다. 그래, 먹는 것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행위는, 먹어야 살 수 있는 생명체로 태어났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남아도는 칼로리로 인해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데 이르렀다면 스스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거울 앞에 서서 솔직하게 자신을 쳐다본다. 날이 갈수록 군살이 붙는 몸과 늙어 가는 얼굴을. 그리고 그 너머 지친 마음까지도. 말하자면 똥 푸는 게 걱정되고, 냉장고 값을 치러야 되고, 옷을 다시 사야 하고, 찬장에서 식량들이 쏟아져 발등을 찧는 것 말고도 내 내면에 다른 문제가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 살펴본다. 나는 내가 줄곧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하루 무거워지는 나날을 보내면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모든 게 엉망이네!라는 한탄만하고 있었다. 무거워져서 엉망이 되는지, 엉망이어서 무거워지는지,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두 개의 톱니바퀴는 서로를 동력으로 해서 잘도 돌아갔다. 일도, 육아도, 살림도, 인간관계도, 공부도, 미래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으로 향한다는 보장 없이, 현실은 늘 덜그럭거리고, 즐거움보다는 의무감이 앞서는 재미없는 하루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부정적 마음을 덜기 위해 손쉽게 무언가를 먹으며 마음을 달래 보려고 했지만 음식은 잠깐 순간을 잊게 할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잘 알았다. 하지만 먹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왕성한 소화력과 배변력으로 인해 몸은 표준치였지만 아마도 마음은 중도비만으로 치닫고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마음은 잘 보이지 않으니까 그럭저럭 더 불려 나갈 여지도 충분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며, 저녁식사 때마다 굶주린 사자처럼 허겁지겁, 혹은 썩은 고기를 먹는 하이에나처럼 살금살금 간식거리를 먹어 치우곤 하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내 옆구리를 톡 치듯이 물었다. ‘혜율이도 이거 한번 해 볼래?’ ‘뭘?’ 그것은 ‘한 달 동안의 다이어트 프로젝트!’였다. 

다이어트 식단. ⓒ김혜율

남편의 이 제안이 헛소리같이 들리지 않은 까닭은 남편 본인 자신이 그 어려운 걸 이미 해냈기 때문이다. 결혼 뒤 꾸준하게 체지방 지수를 올려 가며 비만인으로 살던 남편은 앞서 두 달간 식이와 운동으로 10킬로그램 이상을 줄이고 번듯한 비포 앤 애프터 사진을 찍더니, 이제는 근육을 더 키워 온라인 다이어트 코치에 도전하고 있다. 뭐 꼭 그래서는 아니고 나는 원래 깊은 고민 없이 결심하는 타입이라 이번에도 남편이 묻자마자 설득당한 사람처럼 ‘그래!’라고 찬성했을 뿐이다. 그때부터 내 생애 최초로 다이어트 코치가 함께 하는 한 달간의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한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법은 없지만 포기하기도 귀찮고, 어차피 뭐든 끝이 나기 때문에 버티다 보니 지금은 다이어트 3주째에 이르렀다. 아직은 결론이 난 게 아니고 진행 중이지만, 그래도 그 시작과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의미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히 몸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에, 중도비만인 내 내면을 감량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쨌거나 그 시작은 몸이다. 먹는 것이고 움직이는 것이다.

다이어트는 자고로 혼자서 하는 게 아니고, 함께 하거나 최소한 공개적으로 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력이야말로 믿을 게 못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그리 쉽지도 않을 뿐더러, 주변 환경의 유혹은 지속적이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눈을 뜨고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침샘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두 눈 뜨고 두고 보기만은 어려운, 맛있고 자극적인 먹을거리 천지인 세상이라서. 수시로 사람들을 만나는 사회생활이라는걸 활발히 하는 사람이면 더더욱 자신의 나약한 의지 하나만 믿고서 엄격한 다이어트로 한 달을 온전히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약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는 그래서 모두와 함께하는 다이어트를 선택했다. 다이어트 전문가 코치 한 명이 다수 회원의 식단과 운동을 관리해 주는 방식이다. 성공확률은 그간의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증명해 주었다. 그렇다고 서로 얼굴을 보면서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바쁜 현대인으로 무엇보다 효율을 중시하므로 딱 한 번의 오프라인 미팅 외에 따로 만나지는 않고, 자신의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매일 온라인상에서 만난다. 

덕분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스마트폰을 자주 확인하고 있다. 필요에 의한 사용은 내 인생을 축내지 않고, 오히려 득이 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내가 참여한 그룹의 회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모두 10여 명 여성으로 이루어진 회원 중 놀랍게도 나는 어린 편이다. 그 말인즉슨 이번 다이어트 프로젝트에는 나 포함해서 엄마로서 살아가고 있거나, 그동안 자신을 조금 내버려 두었던, 다른 말로는 자신을 남들보다 돌보지 못했던, 중년 여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우리는 예전의 구태의연한 자신을 벗어버리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다. 자신이 먹는 것을 의식하고, 절제하고, 몸의 움직임을 의도하며 매일 운동 미션을 해내며 다이어트를 이어 나가고 있다. 매일 아침 체중을 재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턱선과 뱃살, 옆구리살을 돌아보며, 자신의 체중과 사진, 그리고 매 끼니와 간식까지, 먹는 모든 것을 온라인상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내 하루를 보면, 오늘 아침, 점심,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와 무엇을 먹지 않을까의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고, 아이들을 재운 밤이면 입에서 거친 숨과 함께 욕이 나오는 내 몸의 지방태우기 운동-‘죽음의 레이스’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왜냐하면 코치선생님과 약속했으니까. 그리고 나한테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그렇게 2주가 지난 지금은 살이 좀 빠졌냐고? 물론이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회원도 나오고 있고, 거의 모두가 식습관이 교정되고 있다. 아, 내 양쪽 허벅지 군살도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다. 마치 2개월과도 같았던 지난 2주간, 샐러드 도시락, 견과류, 고구마와 닭가슴살등에 경애를 표하며, 또 나머지 2주도 그들의 에너지를 빌릴 것을 약속하며, 비로소 한 달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뒤, 그간의 과정과 성과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해야겠다! 무슨 일이든 끝이 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아무리 온라인상의 지면이지만 한 참에 너무 길어지는 건 실례니까.

p.s : 전국에 7명쯤 있는 내 칼럼의 독자들을 위해 다음 칼럼은 제때 쓸 것임을 약속드리며....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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