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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안에서 기뻐하기[구티에레스 신부] 12월 16일(대림 제3주일) 루카 3,10-18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뻐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태도는 기쁨의 자세이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대의 징표에 주의를 기울이며 깨어 있어야 한다.

분별

루카 복음은 주님보다 앞서 온 선각자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의 가르침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루카 3,10)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사람들은 그가 말한 것을 이해했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듣고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이 주는 세례가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즉시 나온다: 가지고 있는 것, 옷, 식량을 나누라는 대답이다.(3,10-11) 가난한 이들이 고초를 겪고 있는 이때에 요한의 요구는 긴급하다. 우리 자신의 식량을 나누기 위하여 다른 이들을 초대해야 할 때는 지금이다. 이것이 예수님을 기다리는 방식이다.

요한은 가장 어려운 사람들(세리들, 군인들)에게 그들이 먼저 옳은 것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금을 지나치게 징수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권력을 잘못 행사하지 말며, 거짓 고발을 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루카 3,13-14)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 따르면, 공의의 기본 요구는 나눔에 있다. 주님의 오심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러한 나눔의 회심을 요구한다. 행동에 의하여, 우리들은 주님의 오심으로부터 우리를 멀리 떼어 놓는 것과 우리를 더 가깝게 데려가는 것을 분별하게 된다. 그날, 하느님은 우리의 행동에서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실 것이다.

축제 (사진 출처 = Pxhere)

축제의 날

성서에서, 기쁨은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될 때에 함께 온다. 이때가 오면 심오한 기쁨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다.”(필리 4,5) 모든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쳐야 한다.(4,6) 공의의 실천과 기쁨의 체험은 우리를 진정한 평화, 하느님의 샬롬(생명, 온전함)으로 데려갈 것이다.

기아와 황폐가 만연되어 있는 요즈음, 성탄을 기다리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을까? 먼저, 이것이 어려운 질문임을 인정하자. 우리는 인간 존재가 기도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피상적으로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고 대답할 순 없다. 다른 한편, 우리들은 기쁨의 원천이 심오하고 그 원천들은 인간생명의 변화와 희망의 보고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기쁨은 고통 한가운데에서도 끈질기게 버틴다. 고통이 슬픔, 회한으로 변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자신 안에 갇히지 않도록 해 준다. 가난한 이들에게 참으로 연대가 필요한 때에 슬픔, 회한에만 잠겨 있다면 큰 비극이다. 이 모든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스바니야 예언자가 외치는 확신으로 현재의 역경과 대변하기 위하여 역사 속에 굳건히 뿌리를 박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온아, 두려워하지 마라. 주 너의 하느님께서 너희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스바 3,16-18)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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