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계룡산 국립공원 관음봉에서 본 천지창조와 같은 아침. (사진 출처 = ko.wikipedia.org)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지옥을 만드셨다고 한 성인이 있다고 하던데…. 세상에나 세상에나! 어디에 그런 말이 나오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진짜 그런 말을 한 성인이 있다면.... 그 성인은 괴팍하기 이를 데 없는 이가 될 것입니다. 이런 질문이 쓸데없다니요! 얼마나 심오한 질문인데 말입니다.

엄밀히 따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세상은 그것이 우리에 앞서 창조되었다고 해도, 우리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없는데 세상이야 있건 없건 상관이 없으니까요. 이를 통해 보건대,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의 하느님도 우리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믿는 하느님도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는 당신 스스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는 존재였다고 하겠습니다. 오로지 당신 홀로 영원한 고독을 벗삼아 억겁에 억겁에 억겁의 시간을 지내셨을 겁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시니 좀 덜 심심하셨겠다는 어림짐작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 위대한 분께서는 당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확장하고 싶으셨나 봅니다. 더 다양한 존재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기쁨을 줄 것이며 말 그대로 “의미 있는” 일임을 아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랑은 상관없는 듯한 창조 이전의 하느님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유익함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이 유익함 때문에 세상 창조 전의 하느님께서 무엇을 하셨을까? 라는 질문이 의미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작과 끝을 모르는 시간과 공간의 주인께서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모르는 고독을 거쳐 창조의 힘을 활용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은 변치 않으나 변화무상한 피조물들을 통해 역동이란 것을 느껴 보고 싶었고, 확장된 관계를 맺고 싶었고, 이 관계를 통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나누고 싶어졌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상상을 하시나요? 오늘의 질문에 대해 정해진 답은 없으며 누구나 창조 이전의 하느님에 대해 상상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적어도 앞서 언급한 사연들이 타당성 있어 보인다면, 우리는 각자가 경험하는 고독이 창조주의 시간과 맞닿아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어찌하여 내가 내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지도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고독에서 벗어나는 행위가 창조요 노동이었다는 것도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세상이 창조되지 않았다면 필요 없었겠지만, 하느님에 대해 알게 된 이상 독자분들도 이런 질문 앞에서 한 번쯤 사색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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