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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로 이루어지는 평화[구티에레스 신부] 12월 9일(대림 제2주일) 루카 3,1-6

대림, 희망과 변화에 대한 열림의 때: 옷을 바꾸고 이름을 바꾸는 때,(바룩) 그리고 길들을 바꾸는 때(이사야) - 모든 사람이 주님의 구원을 볼 수 있도록 변화하는 때.

하느님은 너를 기억하신다

추방된 예언자로서, 바룩은 괴로움 중에 있는 백성들에게 위로의 말을 한다. “주님께서 너를 기억하신다.”(바룩 5,5) 제2이사야는 이미 물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해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충실하신 하느님은 예루살렘, 그분의 신부를 잊지 않는다. 예루살렘은 슬픔의 옷을 벗어 버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입도록”(바룩 5,1) 초대된다. 백성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로 만들어진 이 변화는 또한 옷을 바꿔 입고 이 도시에 다른 이름이 붙여지는 것으로 표현된다. “의로운 평화”(5,4) 혹은 하느님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이 그분의 사랑 속에서 기억하는 이들에게 주는 구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이다.

복음에서, 때가 가득 차면, 하느님께서 요한을 통하여 하느님나라의 도래를 선언하시고 이사야와 함께 “모두가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6)는 사실을 확인하신다. 매우 꼼꼼한 루카는(1,1-4) 우리에게 요한의 가르침의 역사적 배경을 마련해 준다.(3,1-3) 오늘날 우리 자신의 역사 속에서 바로 지금, 우리는 구원의 선물을 갖고 오시는 하느님의 길을 준비해야 한다.

평평한 길. (이미지 출처 = Pixabay)

길을 준비하기

세례자 요한에 의해 반복되고 바룩에 의해 확증되는 이사야의 호소는 우리로 하여금 역동적인 회심 속으로 들어가도록, 길을 시작하도록, 변화하도록 - 안으로부터의 변화, 기본적인, 다시 말하자면 무엇이 가장 옳은지 결정하기 위하여(필리 1,10) 사랑 속에 성장하는 변화를 시작하라고 초대한다. 통찰과 사랑의 감수성으로, 우리는 주님의 요청을 더 잘 듣게 될 것이고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1,11) 그분을 만나러 나갈 것이다.

안으로부터의 이 쇄신은 외적 모습도 달라지게 한다. 왜냐하면 “높은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져 굽은 것은 곧게 펴지고, 울퉁불퉁한 것은 평평하게 되기 때문이다.(바룩 5,7) 거친 것은 부드러워지고, 불평등은 금지되고, 거리는 좁혀져서 구원이 모두에게 올 것이다. 변화된 인간은 화해하고 평등한 인간으로 “동쪽에서 서쪽에서 모여든 자녀들”(5,5)과 함께 가족이 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고, 희망을 세계만큼 그리고 하느님만큼 확장시키는 것이다. 더 평등하고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더 존중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구원이 오는 가장 최고의 길이다. 우리 모두는 굽어진 것을 펴고 산들을 고르게 하거나 골짜기를 채우는 것이 자기 포기를 요구하는 것임을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이 오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길이 곧아져야 한다.

희망으로 화합하며, 우리는 우리의 하느님을 만나기 위하여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시며, 길을 가리키고 계신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서 나오는 자비와 의로움으로, 당신 영광의 빛 속에서 이스라엘을 즐거이 이끌어”(5,9) 주시기 때문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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