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지원 절실", "본당은 야전병원 돼야"

천주교주교회의 가정과 생명위원회가 한국사회 가정 폭력의 현실과 이에 대한 교회의 대응 방향을 짚었다.

12월 3일 열린 가정생명 세미나에는 대구대교구 이주사목위원장 이관홍 신부가 다문화가정의 폭력 실태, 치유와 예방을 주제로, 가톨릭여성상담소 김은랑 소장이 일반가정의 가정폭력 원인과 실태, 치유와 예방을 주제로 발표했다.

먼저 이관홍 신부는 결혼이주여성들은 결혼 과정과 언어장벽,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부정적 시선, 아내를 ‘소유물’로 보는 남성들의 의식으로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다며, 이주여성들의 폭력 피해가 심각하지만, 스스로 대응하는 힘이 약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정의하는 가정폭력 개념은 가족구성원 사이에서 신체적, 정신적, 재산상의 피해를 일으키는 행위다.

이 가운데 다문화가정의 가정폭력은 한국인 남편이 여성 결혼이민자에게 행하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 경제적 폭력이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과 욕설, 막말, 무시, 언행감시 등 정신적 폭력, 성관계 강요나 강제 불임과 낙태 등 성폭력, 약속한 돈을 주지 않거나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하고, 생활비를 주지 않는 등의 경제적 학대, 그리고 배우자를 가족, 친구와 격리시키거나, 외출을 방해하는 사회적 격리 등으로 나타난다. 

이 신부는 결혼이주여성은 가족 안에서 겪는 다양한 폭력 이전에 한국사회 안에서 “환영받지 못한 이방인”이라는 생각으로 1차적 소외를 겪으며, 폭력이 벌어지는 상황은 물론 후유증도 심각해, 평생 신체적, 심리적 외상을 지니고 살게 되지만, 사회적 안전망이나 의료 서비스가 취약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이 같은 폭력은 단지 여성 결혼이민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녀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쳐, 똑같은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가정폭력에 노출된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대처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들은 언어 문제나 법적인 무지, 사회적 관계의 단절, 남편과 관계 악화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폭력을 무조건 참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이혼’은 최후의 수단이지만, 여성, 이주민으로서 이혼은 불안정한 이주노동자가 된다는 뜻이고, 같은 폭력을 당하는 자녀와 헤어지게 되므로 훨씬 어려운 결정이다.

이 신부는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결혼이주여성들의 선택지는 “참고 살면서 막연한 남편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 이혼, 쉼터와 집을 오가는 것”뿐이라며, “그러나 어떠한 선택도 이들에게는 불안하고 막막한 미래”라고 말했다.

12월 3일 주교회의 가정생명위원회가 가정폭력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정현진 기자

이 신부는 교회가 이주민, 특히 폭력을 겪는 여성 결혼이주민에 대한 사목 방향으로 “치료적 대책과 접근, 가해자인 남편을 위한 교육과 상담 프로그램, 이혼 뒤 정착 지원 프로그램,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과 건강한 공동체 형성” 등을 꼽았다.

일례로 그는 일시적인 쉼터를 넘어 이혼한 이주여성과 자녀들의 정착을 돕는 서울대교구의 공동생활 가정(그룹홈)을 들며, 3-4년간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자립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자체와 교회가 공동 부담하는 방식은 상당히 모범적 사례라고 소개했다.

또 개별적 지원이나 협력 외에 전 사회적으로 극복해야 할 것은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소외’, 부정적 시각이라며, 교회는 구조적으로 소외된 이주여성이 지지받고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인 외에 자국민 이주여성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스스로 소수민족 문화에 대해 강한 자아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가정폭력 뒤에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처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신앙적으로 잘 형성된 결혼이주여성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획기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신앙 안에서 결속된 공동체는 이주여성들에게 지지세력이 되고, 한국인들에게도 다양성 안의 일치, 신앙표현의 다양성을 배우는 훌륭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그 자체로 위험하고 전 사회적으로 부작용을 미치는 가정폭력은 한국 가톨릭교회가 풀어야 할 새로운 이슈이며, 결혼이주여성의 사회적 통합과 자립 지원은 ‘완전한 환대’의 차원”이라며, “교회의 이주사목활동은 사업 그 자체가 아니라 힘없는 약자들이 그 중심에 있고, 단순한 도움을 넘어 한 인격으로서 존엄성과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각 본당, 특히 규모나 여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농촌본당에서 이주민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사목적, 정책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이주민들 입장에서 본다면 신앙공동체, 본당은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작은 본당, 농촌본당 소공동체가 이주민들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주민들에 대해서 ‘다르다’는 이유로 먼저 배척하는 면역체계가 작동한다. 그러나 보편교회로서 하느님 안의 한 형제자매를 고백하는 이들로서 먼저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주민들을 제대로 돕고, 맞이할 수 있으려면, 그들의 문화, 삶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돕는다는 이유로 그들에게는 어려운 한국적인 것을 강요하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라고 말했다.

“가정폭력을 신고할 수 있었다면, 그 순간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가 되는 것”

일반적 가정폭력과 치유, 예방에 대해 발표한 김은랑 소장은 가정폭력은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목격하는 이들도 심각한 심신 피해, 후유증을 겪게 되며, 사회적으로 폭력의 악순환, 확대를 가져오지만, 많은 이들이 “가정의 문제”라며 방치하거나 무관심하고, 피해자 스스로도 수치심에서 신고하지 못해 예방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정폭력은 결코 개인적이거나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적 문제라며, 만약 옆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면, “시끄럽다”며 귀를 막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변에서 가정폭력을 목격하거나 알고 있지만 귀를 막는 이유는 “남의 가정사, 참견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라며, “가정폭력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을 때, 폭력은 점점 심해지고 잦아지지만, 외부에서 관여하고 처벌을 받을수록 그 정도는 약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폭력 처벌법은 그 목적을 “가정 보호와 유지를 위한다”고 밝히지만, “(현실에서) 이 목적은 가정의 보호와 유지를 위해 피해자가 견디고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목적은 피해자 보호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법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범죄’이기 때문”이라며, “폭력 방지를 위해 적극 개입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신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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