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2월 2일(대림 제1주일) 루카 21,25-28.34-36

깨어서 기다리다. (이미지 출처 = publicdomainpictures.net)

우리는 대림절을 시작하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오심이라는 사건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깨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말씀들의 요청이다.

해방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 복음은 어려운 말씀이다. 조금 앞에서 루카는 예루살렘의 포위와 함락에 관해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루카 21,20-23) 이제는 그는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파루지아라고 하는 것이다. 때때로, 파루지아는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속에 별로 존재하지 않는데, 그러나 우리 신앙의 한 부분이다. 파루지아의 장면은 묵시적이다. 그러나 묵시는 우리가 보통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재앙을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계시, 예언을 뜻한다. 주님의 재림은 역사를 더 선명하게 밝혀 줄 것이다. 감추어졌던 진실이 완전히 밝게 나타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파루지아는 테러를 제시하지 않고 용기를 제안한다. “왜냐하면 구원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루카 21,28)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주의는 오늘의 요구를 없애지 않는다. 이 깨어 있음은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깨어 있는 기다림이고, 주님께서 그분을 드러내는 시대의 징표에(루카 21,29-33) 집중해 있는 상태다. 우리는 “늘 깨어”(루카 25,36)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무상의 선물, 우리가 희망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에 거기에 온전한 의미를 부여하는 하느님의 무상의 사랑에 대한 경험이요 자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공의

오늘의 독서들은 우리에게 사랑과 공의를 말해 준다. 주님의 오심 앞에서 깨어 있는 것은 “세상에서 공정과 정의”(예레 33,15)를 실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성탄 때에 기념하는 “다윗의 아들”이 세상에 첫 번째로 올 때에 수행해야 하는 사명이기도 하다. 공정과 정의는 주님의 약속의 두 가지 기본 측면들이다.(33,14) 약속이 이루어질 때에 “유다는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은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33,16) 예언자들은 자주 예루살렘을 하느님의 뜻의 실현이라고 표현하였다. 예를 들면 이사야는 예루살렘을 “기쁨”이라고 불렀는데(이사 65,18),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충만하게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루카 복음의 말씀은 우리가 성탄 준비를 시작하는 일요일에 주님의 두 번째 오심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 준다. 한 번의 대림은 또 다른 대림으로 이어진다. 두 대림 사이에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때가 자리 잡는다. 이때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공정과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이 세계의 가난한 이들이 겪고 있는 매일의 고통과 함께 하는 결단을 의미한다. 그 연대는 정의, 사랑, 평화가 가능한 사회, 하느님의 선물, 하느님의 나라가 역사 속에서 표현되어 가난한 사람들과 모든 인류가 그들의 나라들을 “공정”과 “기쁨”으로 부를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결심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충만한 사랑”(1테살 3,12)이 없다면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이 관대하고도 무상의 승복으로,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3,12)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얕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3,13)을 기다리면서 깨어 있는 길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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