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투쟁기록집 "아스팔트 위에 씨를 뿌리다" 출판

"돌이켜보니 밀 씨앗이 긴 겨울을 견디는 동안 백남기 농민 자신이 씨앗이 되어 싹을 틔웠다. 그러고는 끝내 우리에게 밀알들을 쥐어 주고 떠났다. 이제 밀알을 다시 뿌릴 시간이 왔다."

백남기 농민의 삶과 죽음, 그리고 수많은 백남기들의 싸움을 기록한 책,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가 나왔다.

백남기 씨가 쓰러진 2015년 11월 14일로부터 꼬박 3년째인 11월 1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그동안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고 장례를 치르기까지 1년을 함께 싸운 이들이 모여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책의 부제는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이지만, 사실 이 기록은 백남기 농민만이 아닌, “우리가 백남기”라며 병상에 누운 317일과 장례를 치르기까지 40여 일간 그의 곁을 지키고 함께 싸웠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약 1년 6개월, 백남기 씨의 가족, 살던 마을의 농민, 연대했던 세월호 가족, 엄혹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며 죽어간 아들 이한빛 피디의 장례식에 들어온 물품을 백남기 농민 장례식장으로 보냈던 아버지, 서울대병원 앞과 장례식장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한 사제와 수도자, 친동기간처럼 지낸 농민회 누이, 학교 동문 등은 백남기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곁에서 살았고 마지막까지 백남기를 지켰던 일을 증언했다.

출판기념회에 앞서 봉헌된 미사. ⓒ정현진 기자

약 1년간 이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정리한 정은정 작가는 “이 책은 물대포 직사 살수를 비롯해,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몬 이들이 누구인지, 왜 그토록 무자비한 폭력이 가능했는지 밝히는 한편, 백남기 농민 투쟁을 이끌어 온 사람들의 ‘안간힘’에 대한 기록이며, 물심양면 싸움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제출하는 보고서”라고 말한다.

정 작가는 출판기념회에서 “완벽하지 않은 기록이지만 기억이 흩어지기 전에 모은, 투쟁에 함께한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너무 많은 이들이 이 땅의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을 치렀다. 선배들의 뒤만 따를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몫이 있는 사람으로서, 기록으로 시대를 증언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현장부터 사진으로 싸움을 기록해 온 윤성희 작가는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자리부터 그 뒤까지, 그리고 가족들이 처참한 모습이거나, 불쌍한 희생자의 이미지로만 남지 않기를 바랐다”며, “백남기 농민 그리고 함께 싸운 이들이 그 이름, 지키고 싶은 신념,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고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 글을 기록한 정은정 작가(왼쪽)와 사진을 기록한 윤성희 작가. ⓒ정현진 기자

백남기 투쟁에 함께 한 이들은 “내가 백남기”라고 외쳤던 1년의 의미, 그리고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쌀값을 보장받기 위해 싸우는 현실을 기억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을 당시 가톨릭농민회 회장이었던 정현찬 전 회장은, 3년이 지났지만 농민의 현실은 여전히 쌀값 보장을 외치며 싸워야 한다며, “백남기와 함께 싸웠던 이들이 아니었다면 촛불정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농민, 노동자, 민중의 삶은 생명과 평화를 꿈꿨던 백남기의 정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록을 남기고 후대에게도 알리려는 것은 더 이상 이땅의 힘없는 민중들이 정권에 의해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민중들이 권력에 맞서 어떻게 싸웠는지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 씨는 아들이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다른 세상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며, “이제는 죽음으로 항거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 세상이 되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념회에 앞서 봉헌된 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안영배 신부(안동교구)는 “지난 3년간 우리에게 벌어진 수많은 일과 역사의 과정 한가운데 백남기 농민에게도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여전한 이 시대의 아픔, 수많은 약자들의 목소리를 받아 견디며 싸웠던 험난한 여정과 백남기 농민의 삶을 기억하고, 이루지 못한 그의 꿈을 다시 기억하고 살아가야 할 몫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백남기와 함께했던 이들이 출판기념회에 모여 다시 그를 기억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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