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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끝’을 기다리며[유상우 신부] 11월 18일(연중 제33주일) 다니 12,1-3; 히브 10,11-14.18; 마르 13,24-32

11월의 한가운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11월은 ‘끝’을 향해 감을 느끼는 시기입니다. 마지막 달인 12월이 남아 있긴 하지만 12월은 사회 분위기상 설렘과 기다림이 더 느껴지는 달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아직 연말이라는 느낌은 덜하지만 ‘끝’, ‘마무리’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때입니다. 전례력으로도 11월은 ‘끝’을 향해 가는 상징들로 가득합니다. 특별히 교회는 전통적으로 11월을 위령 성월로 지냅니다. 앞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기이지요. 나보다 먼저 인생의 끝을 맞은 사람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나에게도 언젠간 다가올 그 끝을 다시 한번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하게끔 하는 시기입니다. 더불어 이번 주일 교회는 연중 제33주일을 맞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지요. 이 대축일은 연중시기를 끝내는 동시에 교회의 한 해를 마감짓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기에 녹색 제의를 입고 드리는 마지막 주일미사인 이번 주 역시 ‘끝’을 향해 달려가는 그 정점에 와 있는 셈입니다.

이번 주일 우리가 마주하는 말씀들도 끊임없이 ‘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 제시된 복음의 자리부터 그렇습니다. 해당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사화 직전에 배치된 이야기입니다. 마르코 복음 13장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이 마무리되고 이어지는 14장부터는 유다의 배신, 최후의 만찬 등이 나타납니다. 예수님 지상 생애의 ‘끝’을 향하고 있는 자리에 오늘 복음이 제시되어 있는 것이지요. 당신 생애의 ‘끝’을 준비하는 이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끝’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끝이 다가오는 모습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음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은 흔들릴 것이다."(마르 13,25-26)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단순히 이러한 물리적 현상이 아닙니다. 이 뒤에 사람의 아들 즉,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이러한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은 해와 달 그리고 별 역시 그것을 창조하신 주님의 권능 아래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오늘 복음을 무서운 종말의 예고라고 보기에는 복음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내용이 너무 깊고 희망찹니다.

끝을 향해 가는 11월.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 희망을 얘기하기 위해서 먼저 1독서에 배치된 다니엘서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니엘 예언서는 재앙의 때, 다시 말해 ‘끝’을 예고하면서 그때가 오더라도 하느님의 백성은 구원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묵시적 표현은 우리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성경의 ‘끝’)을 향하게끔 합니다. 특별히 "그때에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다니 12,1)는 요한 묵시록 14장을 떠올리게끔 합니다. "내가 또 보니 어린양이 시온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묵시 14,1) 책에 기록된 이들의 구원과 인장을 받은 이라는 표현은 의미론적으로 서로 통하지요. 그리고 14만 4000이라는 표현과 책에 쓰인 이들이라는 표현이 무언가 제한적인 느낌을 받게 합니다. 사실 묵시문학에서 숫자 상징은 매주 중요합니다.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14만 4000명도 사실 중요한 상징 중에 하나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강론 전체의 맥락을 위해 간단하게 말씀드릴까 합니다. 우선 성경에서 12는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상징하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12가 곱해진 144라는 숫자에 충만함과 풍요함을 상징하는 숫자인 1000이 곱해진 숫자가 바로 144,000입니다. 그렇게 묵시록에 등장하는 14만 4000명이라는 숫자는 특정인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 셈이지요. 결국 묵시록의 해당 표현은 구원을 받은 의인이 아주 많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예수님의 말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마르 13,27) 그리고 방금 언급했던 묵시록에 등장하는 14만 4000이라는 숫자의 의미와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모든 이의 구원은 의미가 서로 같은 것이지요. 구원은 일부에게만 유보된 것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이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는 특정인들의 구원을 희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님을 믿는 이들의 구원은 물론 "세상을 떠난 다른 이"(감사 기도 제2양식 중) 즉 비록 주님을 알지는 못하지만 "주님만 그 믿음을 아시는 죽은 이들"(감사 기도 제4양식 중)의 구원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는 끝은 무력하고 절망적인 끝이 아니라 기쁨의 끝, 주님과 마주함을 기다리는 희망의 끝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전례문이 고백하는 바와 같이 우리 모두는 "주님의 자비와 은총 덕분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게 될 것"(위령감사송 5)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끝을 보여 주려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마르 13,29) 알게 될 때 두려움보다는 기쁨과 희망으로 그분을 맞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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