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땅물벗]

서울대교구 신학과 1학년 학생들과 함께 원주교구 대안리 공소에 갔습니다. 모두 스물다섯 명의 신학생들이 백년 넘은 공소를 찾았습니다. 스물다섯명의 신학생들은 이제 5일 동안 이 공소에서 생명농업 농사를 짓는 신자들의 논과 밭에서 땀 흘려 일해야 합니다.

대부분 신학생들은 태어나 첫 농촌봉사활동입니다. 첫날 저녁부터 밥도 스스로 짓고 반찬도 만듭니다. 국은 유정란을 풀어 만든 계란 국에 반찬은 어묵무침입니다. 대안리 공소 회장인 종범 형님의 형수는 그런 신학생들 모습이 기특했는지 이웃집 안나 할머니와 함께 신학생들 먹으라고 겉절이 김치를 담궈 주시고 산에서 취나물을 캐다 나물도 무쳐주십니다.

겉절이가 맛있게 만들어지자 안나 할머니는 집에서 보리에 감자를 넣어 찐 감자 꽁보리밥을 해오십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자란 콩과 맑은 물로 만든 된장을 뚝배기에 지저옵니다. 배추 겉절이에 취나물무침과 강된장, 밥은 강원도 감자 꽁보리밥. 공소 마당 큰 나무 아래 평상에서 종범형님과 형수, 안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둘러 앉아 밥을 먹습니다.

서양의 ‘유토피아’를 동양에서는 ‘대동(大同)세상’이라 하는데 이 ‘대동(大同)’이라는 말이 ‘함께 천막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을 본 따 만든 말이라 하니 바로 공소 마당 평상이 제겐 유토피아였습니다.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는 맛있는 저녁밥이었습니다. 밥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공소 윗집 할머니가 하루 종일 안 보이신다고 할아버지가 걱정하십니다. 윗집을 바라보니 많이 어두워졌는데도 불이 꺼져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종범 형수는 서둘러 밥을 먹고는 윗집으로 올라갑니다. 이윽고 형수는 웃으며 할머니를 모시고 내려옵니다. 주무셨다고 합니다. 모두가 웃습니다.

할머니는 이가 다 빠지셨지만 그래도 우물우물 맛나게 밥을 드십니다. 신학생들은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논과 밭에서 허리 숙여 일할 것입니다. 크고 화려하고 편리한 도시 성당에서 느낄 수 없는 공소 생활의 불편함과 몸의 수고로움을 느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덧 물량주의와 성장주의에 물들고 있는 도심 속 커다란 성당이 아니라, 이 무더위 속에서 호미로 땅을 골라 들깨 모종을 심고, 몇 천원 어치 제초제를 뿌리면 거울처럼 깨끗해지는 편한 선택을 하지 않고 바보처럼 손으로 풀을 뽑는 농민들의 삶속에 계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손톱에 물드는 풀빛, 흙빛의 소중함을 느낄 것입니다. 부디 그 땅의 배움이 우리 교회의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맹주형/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교육부장, 천주교 농부학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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