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신곡'. (1465)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어느 상갓집 이야기

- 닐숨 박춘식

 

화장(火葬)이냐 토장(土葬)이냐

구교우 어른들이 관습과 시류를 두고

초저녁부터 진지하게 의논하였습니다

자정 무렵 화장터로 의견이 기울 때

중학생인 손주의 말 한마디가

상갓집을 온통 웃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연옥 불을 미리 예습하니까, 화장이 좋아요”

 

작은할아버지께서, 이놈, 크게 야단쳤지만

킥킥대는 웃음은 구석구석 소리를 낮췄습니다

구순을 훌쩍 넘긴 호상(好喪)이어서

그날 밤

어린 손주는 벌을 면했다고 합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1월 12일 월요일)

 

‘연옥’이라는 단어와 ‘연옥 교리’는 초대교회 때부터 믿으면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많이 바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믿을 교리로 교종이 반포한 시기는 중세기이며, ‘연옥’이란 단어가 교회 밖으로도 널리 알려진 계기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알리기에리 단테의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이라는 대서사시로 널리 알려졌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가기 전에 말끔하고 밝은 모습으로 정화하는 과정으로 연옥을 많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옥의 고통이 불길로 표현되는 이유는 성경의 영향이나 많은 교부들이 설명하기 쉬운 방법으로 표현하려는 방편으로 말한 것이지, 실체로 불길이 치솟는 벌이 아니라고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죽고 보니 오로지 하느님만이 삶의 전부임을 통절히 깨닫게 되고, 하느님과의 거리가 기쁨과 행복의 척도가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연옥은 하느님의 얼굴이 아주 멀리서 겨우 보이는 정도라고 상상을 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연옥 영혼이 이승의 신자들 기도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마시고 열심히 기도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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