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학술발표회 1

이른바 ‘나주 현상’과 신천지 등의 신심 및 종교 현상에 대면해, 평신도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쇄신해 가는 신앙 주체로서 어떻게 그 면모를 새롭게 할 것인가?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와 광주인권평화재단은 <신학전망> 발간 50주년을 맞아 11월 8일 “새로운 신심 및 종교 현상을 통해 평신도가 바라보는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열고 특히 평신도가 신앙의 주체로 어떻게 설 것인가를 묻고 답했다.

주최 측은 ‘나주 현상’, 신천지예수교 등 현상에 대면해 가톨릭 교회가 취한 태도는 대체로 법적 제재나 교리의 오류 지적 등 “문제를 해결하고 방어하려는 형태”를 보여 왔다고 지적하고, “이 같은 현상 앞에서 평신도는 어떻게 신앙주체로서 새로운 면모를 갖출 것인지 살핀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또 주최 측은 “이 같은 문제들 앞에서 교의나 교리 차원의 비판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간학, 심리학, 사회문화, 정치, 역사적 분석에 보다 주목한다”며, “새로운 복음화라는 패러다임으로, 주체로서 ‘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행위와 삶을 설계할 것인가 고민하려 한다”고 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학술발표회 발제 내용을 두 편에 나누어 싣는다.

이날 주제에 따라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가 “하느님의 도성은 ‘사회적 사랑’”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으며, 주원준 수석연구원(한님성서연구소)이 “히브리적 시선으로 본 한국 가톨릭의 순교신학”, 최현순 대우교수(서강대 신학대학원)가 “주교와 신자들의 특별한 협동”, 황경훈 소장(우리신학연구소)이 “통합적 인간발전으로서 새 복음화”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각 발표에 대한 논평은 김영선 수녀(광주가톨릭대 교수), 김정용 신부(광주대교구 사목국장), 황종열 소장(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이 맡았다.

복음의 기쁨, 복음화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기조강연에서 성염 전 대사는 복음의 기쁨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정의구현에서도 이뤄야 하며, 그에 따른 평신도의 사명을 강조했다. 또 오늘날 교회가 싸워야 할 맘몬은 신자유주의 경제 그리고 이에 대한 싸움을 반대하는 근본주의 신앙이라고 확인했다.

먼저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부터 이어진 정의구현이 곧 복음선포라는 선언은 베네딕토 16세의 “사회적 사랑”으로 이어졌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 이르러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음의 기쁨'은 4장 “우리의 구원은 사회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개별 인간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도 구원하시기 때문”(178항)이라는 구절을 들며, “복음화의 정치적 차원에 관한 논지는 ‘인간은 사랑’이라는 논지에서 비롯되며, 사랑은 일개 덕목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실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교회가 받은 정의구현이라는 복음선포 소명은 일차적으로 평신도에 위임되고,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목자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확대된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교회의 사명이 직면한 오늘의 박해 가운데는 “교회의 사회복음에 대한 맘몬의 저항과 반발”이 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한 이 심각한 도전인 신자유주의 경제를 "살인경제"로 규정하며, 자본의 독재에 순응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가리켜 돈을 하느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자로 부른다고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착취하고 배척하고 억압하는 경제구조를 거부하는 것은 곧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과 같다는 그는, “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우상숭배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을 교황은 ‘침묵의 공모’라고 부르며 과감히 배격한다. 사회복음을 설교하고 실천하는 이들에 대한 근본주의 신자들의 공격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차없이 환상에 빠진 교회, 껍데기뿐인 영성과 사목으로 치장한 교회, 속물근성의 영성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향해 지녀야 할 "자비의 얼굴"에 율법의 철가면을 씌우는 시류에는 세 가지 오류가 있다며, 그것은 “하느님과 맘몬을 두 필의 말로 부리면 만사가 형통하다는 태도, 사회적 사랑을 통한 복음의 기쁨을 되찾자는 목자의 호소에 엘리트 영성을 견지하는 태도, 교도권의 사목적 배려에 대한 이단자 낙인”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가톨릭교회의 ‘사회복음’이 신자유주의 경제, 즉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맘몬’을 살인자라고 공격하는 것에 대해 맘몬 숭배자들은 ‘성애’, ‘금욕’ 등 제도교회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한다”며,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이 뉴스에 대해 교황은 근본주의자들의 ‘자비논쟁’을 감수하며, 하느님의 적을 정확히 맘몬으로 지적하는 전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8일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전망' 발간 5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신심 및 종교 현상을 통해 평신도가 바라보는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학술발표회가 열렸다. ⓒ정현진 기자

“세상과 다르다”

첫 발제를 맡은 주원준 연구원은 “히브리적 시선으로 시도하는 한국 가톨릭의 순교신학”을 주제로, “구약성경을 통해 한국 가톨릭 초대 순교 시대를 성찰하고 신학화하는 것을 시도하며, 한국 가톨릭의 독특한 전승을 구약성경이라는 보편적 전승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과거 신앙을 우리 언어로 현재화”했다.

먼저 그는 “다름, 낯섬, 새로움”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서학으로 들어온 천주교는 “다른 종교, 낯선 종교, 새로운 종교”였지만, “그러나 히브리어 ‘하다쉬’(새롭다, 새롭게 하다)를 통해 사유하면, 이는 단지 역사적 문화적 맥락 변화에 따라 낯설게 느껴질 뿐, 하느님 백성의 임무는 역사에서 맞닥뜨리는 새 문맥에 적절하게 ‘새로운 다름’을 정의하고 실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천주교 전래라는 새롭고 다양한 현상을 기술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몫이지만, 그 현상의 이면에 새롭고 낯설게 등장한 "다름", 즉 "이교"라고 불리운 천주교의 본질이 결국 복음, 또는 거룩함이라는 하나의 본질이라는 점을 깨닫고 기술하는 것은 신학자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성찰에 대한 기록, 글쓰기의 방식이다. 주원준 연구원은 히브리적 사유는 “유일한 거룩함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새롭게 표현되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에 가깝다”며, “새로운 역사적 맥락에서 거룩함을 어떻게 새롭고 다르게 드러냈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 구약성경의 방식으로 구체적 이야기의 글쓰기를 통해 “순교자들의 이야기에 우리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 번째 교회론적 참조사항이다. 그는 순교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자’였으며, 소수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 확인하고 증명해야 생존할 수 있으며, 자신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며,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무엇이고,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계속 성찰하고 한반도의 역사적 상황에서 늘 새롭게 드러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약성경에서 하느님 백성의 거룩한 삶의 본질은 “다름”에 있었으며, “바알신을 따르지 말라, 바빌론이나 아시리아, 페르시아의 종교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등의 ‘다름의 가르침’은 사제 못지않게 평신도를 겨냥하고 있었으며, 율법은 하느님 백성의 평범한 구성원들이 일상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실천할 것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느님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라 ‘다름’을 유지할 수 있으면 곧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잘 지킨 것이며 또한 다름을 선택하는 것은 고난을 자처하는 것”이라며, “안락함과 고난 사이의 선택을 항상 강요받은 유대인들의 역사를 깊이 참조하며 순교시대 선조들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순교시대 그리스도인, “과연 무엇이 달랐는가”

주원준 연구원은 한반도라는 역사적, 지리적, 사회적 맥락에서 천주교인들이 제시한 다름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긴장을 발생시켰고, 순교시대 신자들은 이를 어떻게 인식했는가라는 물음을 통해 이 답이 오늘날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천주교 신앙이 한반도에 들인 것은 “새로운 시간관과 공간관”이었다.

전통적 음력, 24절기, 중국 황제의 연호 등으로 인식했던 시간은 전례력, 서기 등의 시간으로 바뀌었고, 세상의 중심도 중국 연경(베이징)이 아니라 예루살렘, 바티칸, 십자가로 바뀌고 확장됐다. 이렇게 새로운 시간과 공간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시공간, 세계관을 만들었고, 삶의 차원도 달라졌다.

일례로, 사람들의 이름은 세례명이 본명이 됐고, 관계 또한 신분, 남녀의 구분을 떠나 신앙공동체 속에서 ‘남녀교우, 남녀교형’이 됐다. 삶과 죽음의 의미가 달라졌고, “천상을 향하지만 오히려 지상에 충실하고, 타인을 위한 봉사와 고통을 피하지 않으면서 모든 일에 은총과 감사와 찬미를 노래하는 ‘역설의 인간형’”이 나타났다.

새로운 인간형으로서 천주교인들은 윤리적 차원의 훌륭한 표양이 됐으며, 국가를 상대화하고, 진보적 성격을 띄게 됐다. 또 이들의 삶과 죽음은 전혀 새로운 체험으로서 독특한 "이야기"가 됐다.

주 연구원은 순교자가 처했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더 깊이 연구하고 또 그런 상황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자칫 박해가 없으면 순교는 없는 것이라는 상대적 인식이나, 순교가 역사의 우연한 비극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순교자 연구에 신학의 자리가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학적 사고의 틀에서 순교시대 신앙인들의 의미는, 그들이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훌륭하고 충실하게 성찰하고 실천했다는 것과 그들로부터 하느님 백성이 반드시 숙고해야 할 ‘다름과 동화’의 변증법이 한반도에 도입된 것”이라며, “다름과 동화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야 하는 임무는 초기 신자들이나 현대의 신자들에게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동화와 다름”의 시각으로 현대교회와 세속화를 성찰할 가능성을 제시하며, “경영합리화, 이익극대화 등의 신자유주의적 현상, 국가주의나 안보주의, 교회기관의 수익극대화 등은 동화의 태도이며, ‘국가 없이 교회 없다’는 대수천의 논리는 동화의 극단적 형태이며, 교회의 보수화는 교회 내 동화의 확산과 동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동화를 보수로 다름을 진보로 등치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다만 보수 성향의 신자는 세상과 다른 보수, 진보 성향의 신자는 세상과 다른 진보를 지향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 더 적응하면 할수록 더 조화되고 안락해져 교회도 잘될 것이라는 ‘동화의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며, “순교자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내면으로부터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고 다름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 곧 다름의 능력을 기르고 유지해야 한다. 다름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순교자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다름과 동화’를 폐쇄적이나 극단적으로 이해하거나, 교회가 외부의 다양성에 배타적으로 다름을 드러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말은 종교인에게 부끄러운 말이다. 세상에 동화된 교회에서 복음의 체험은 발생하지 않는다. ‘다르다’는 ‘믿을 만함’을 인정받는 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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