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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앤 하이드 그리고 금욕주의자[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90]

욜라의 유치원 생활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욜라는 유치원 학기 초의 긴 탐색기를 거치고 나면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는 크게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이 된다. 지난 3년 동안 욜라는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 간의 관계를 정립하는 나름의 사회생활에 편안히 적응했다고 해도 무방한 것 같다. 얼마 전 유치원 프로젝트 수업 발표회에 갔을 때는 진심으로 깜짝 놀랐었다. 욜라의 유치원은 7세반이 되면 한 가지 주제를 두고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사대로 변주되는 프로젝트 수업을 약 한 달이 넘도록 진행한다. 예를 들어 주제가 ‘물’이라면 물의 성질, 빗물, 바닷물, 수돗물, 인체의 물, 물 속 생물, 물의 에너지, 물의 결정, 물과 환경 등등 관련 주제로 끝없이 뻗어 나가는 수업이다. 

수업의 백미는 수업 말미에 수업의 전 과정이 담긴 작품 전시회에 부모를 초청하여 아이의 성장을 음미하는 데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이미 메리 때 한 번 참여를 해 봤기 때문에 욜라 때는 아무 기대가 없었다. 이제 겨우 맞춤법에 어긋나는 글을 끄적이고 색칠도 선을 마구 튀어 나가게 하는 욜라가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하느라 바빠서 그동안 욜라한테 신경을 못 썼으니 엄마된 도리로 수업참관이라도 하겠다는 의무감이 앞선 채로 유치원을 방문했다. 초등학교 교실 하나 크기 정도 되는 욜라네 ‘바다 반’은 벽과 천장, 그리고 탁자나 바닥에 아이들의 작품들이 빼곡히 차 있는 거대한 설치물을 방불케 했다. 서투르지만 치열한 고민과 정성이 담긴 아이들의 작품이 한데 모인 지상 최고의 전시장이었다. 어디 보자. 욜라의 작품은 어디 있지? 

나는 욜라의 손을 잡고 한 걸음에 작품 하나, 두 걸음에 작품 하나, 세 걸음에 또 하나, 해서 십수 개에 달하는 욜라의 모든 작품들을 신중하게 관람했고, 욜라는 내게 친히 작품설명을 해 주었다. 그때의 욜라는 얼마나 진지하고 다정했던지 나는 그만 울 뻔했다. 선생님마저 눈에 하트를 켜고 다가오셔서는 욜라가 수업에 정말 열심히 참여했다고 칭찬을 많이 해 주라고 당부를 하시기에 난 결국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헤헤. 욜라 이 녀석, 바보는 아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욜라는 유치원과 관계된 일이라면 의외로 바람직한 편이다. 유치원 학부모들은 욜라를 착하고, 인성이 올바르며, 박학다식하고, 특히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꽤 괜찮은 아이로 봐주신다. 그런 시각에 편승해 나도 ‘유치원을 다니는 욜라’만 생각하면 ‘이런 애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은 흐뭇하고 고개는 절로 끄덕여진다.

그러나 ‘집에 있는 욜라’를 생각하면 평온하던 내 심장은 박동이 빨라지고 골치가 지끈거리며 한숨이 연달아 나오니, 대체 집에서 욜라는 어떤 모습이길래! 한마디로 욜라는 집에서는 거의 미치광이다. 문제되는 행동만 골라하고, 하지 말란 건 꼭 한다. 예를 들어 욜라가 밥에 콜라를 부을 것 같은 기미가 보여 ‘하지 마.’라고 말해도 악마처럼 웃으며 콜라를 들이붓는 건 양반이요, 대개는 ‘하지 마!’의 ‘하’ 자를 겨우 말했는데 이미 상황종료된 뒤다. 밥그릇은 엎어졌고, 액체괴물(끈적거리는 아이들 장난감)은 사방천지에 붙어 있고, 종이는 찢어발겨져 있으며, 누군가 울고 있다. 누나나 동생 괴롭히는 취미가 극에 달했음은 물론이다. 

하이드 욜라. ⓒ김혜율

게다가 별로 상관없는 언어를 모아서 기묘한 어구를 만들고 곡을 갖다 붙이는 요상한 재주가 있는데, 이게 들으면 들을수록 짜증이 솟구치는 노래 일색이다. 정확히 복기할 순 없지만 대충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얘야, 백두산에 가서 물 좀 떠 오너라. 뭐라구요 아버지.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얘야 백두산에 가서 물 좀 떠 오너라.”를 반복한다든지 “쌈각김밥쌀라미쏘야 퐈우” 같은 말도 안 되는 가사를 키키득 웃으며 무한반복하는데 이걸 듣고 있으면 정신이 사나워지고 짜증이 나는 건 시간 문제다. 나는 귀를 틀어막으며 ‘제발! 그만해!’ 하고 괴로워 한다. 그러면서 ‘근데, 얘 정말 천재 아니야?!’ 하고 생각한다. 바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악마의 노래를 만드는 천재 말이다! 

집 언저리에서 걸핏하면 넘어지고 고꾸라지고 처박히는 걸 지켜보는 것도 힘들다. 일부러 넘어지는 경우도 있고, 조심성 없이 날뛰다가 어김없이 자빠지기도 하고, 멀쩡하게 걷다가 갑자기 황소처럼 벽이나 문, 모서리에 자기 머리통을 처박고 쓰러져 우는 걸 보면 그래서 걱정보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정말 왜 저래?'라는 생각뿐이다. 그런 모습을 메리와 같이 팔짱을 끼고 지켜보며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누곤 한다.

메리 : 엄마, 쟤 미쳤나 봐.
나 : 그러게. 미쳤네, 미쳤어.
메리 : 어휴, 진짜 왜 저래?
나 : 그러게. 왜 저러냐.
메리 : 엄마! 쟤 병원에 좀 데리고 가아.
나 : 무슨 병원?
메리 : 머리 병원.
나 : ....(그래, 나도 동감이다)

메리도 내면의 열정이 활화산 같은 아이라 내가 감당하기 벅찬데, 욜라 앞에서 메리는 그래도 나와 말이 통하는 편이다. 천하의 메리는 아래 남동생을 둘 거느리며 맘 고생을 많이 하더니 여러모로 사람이 되어 가는 중이다. 메리의 피아노학원 선생님 말씀으론 메리가 친구들과 둘러앉아 ‘동생을 둔 고충’에 대해 열띤 대화를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고 한다. “아이들끼리 ‘누구 동생이 더 말을 안 듣나?’라는 주제로 내기를 자주 하는데, 재원이가 늘 이기는 것 같더라구요. 어머니~” 하고 선생님이 내게 귀띔해 주시기도 했다.

이렇게 메리는 메리대로 고충이 있겠지만 내 입장도 욜라가 집에서 하도 이해 안 되는 행동들을 하고, 머리 박치기를 하는 걸 보면서 ‘진짜 애 머리가 이상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태산이다. 한번 날 잡아서 뇌 MRI를 찍으러 가야 하는지, 소아청소년정신과 상담을 받아 봐야 하는지 매번 고민하며 지낸다. 여기까지의 욜라를 문학작품에 비유하자면 "지킬 앤 하이드"가 될 것이다. 유치원에서의 욜라는 지킬일 테고, 집에서 욜라는 하이드가 되겠지. 꽤나 상반된 면모를 가진 욜라다. 그런데 이에 더해 욜라는 한 가지 더 색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는데, 제3의 욜라는 ‘금욕주의자’ 혹은 ‘수도승’으로 불린다. 그럼 금욕주의자 욜라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자.

집과 유치원을 제외한 그 밖의 장소에서 욜라는 잘 웃지 않는다. 누군가가 “욜라야 안녕?” 하고 아는 체를 해도 묵묵부답. 꾸벅,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일 뿐이다. 다만 한 템포 늦게. 욜라를 지켜본 아이들이 나를 붙잡고 하나같이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욜라는 왜 말을 안 해요? 원래 말이 없어요?” 하고. 그럼 나는 애써 웃으며 “글쎄. 왜 말을 안 할까.... 아줌마도 잘 모르겠네. 하지만 집에서는 잘 한단다. 아마 낯설어서 그럴 거야.”라고 답하곤 했다. 그런데 그 말은 틀렸다. 낯설어서 말을 안 하는 게 아닌 게, 태권도를 다닌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어느 날, 나와 대화를 하는 욜라를 본 태권도장 아이 하나가 “앗, 욜라, 말할 줄 알아요? 전 말 못하는 줄 알았어요. 욜라 말하는 거 처음 봐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일 년이 다 되도록 입을 뻥긋 안 할 수 있는 묵언수행자 욜라이기에 가능했다. 

지킬 욜라. ⓒ김혜율

세 번째 욜라는 유독 잘 먹지 않는다. 집에서라면 환장하고 달려드는 요구르트나 과자, 빵을 눈앞에 들이밀어도 사양한다. 그 모습이 또 얼마나 정중하고 진중한지 옆에서 보기에 기가 막힐 정도다. ‘왜 안 먹어? 너 그거 잘 먹잖아.’ 하고 조용히 따로 물으면 늘 한다는 소리가 자기는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단다. 마치 세상만사 기쁠 것도, 슬플 것도, 화날 것도, 또 배고플 것도 없는 듯 초연한 자태의 욜라다. 희노애락의 감정표현을 극도로 배제하고 세상을 신중하고 차분한 눈길로 응시하는 욜라를 보면 ‘쟤 커서 수도회에 들어가려나. 난 말리지 않을 거야. 아, 상상이 된다. 수도승 욜라도!’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어찌 됐건 제3의 욜라는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 특히 아줌마들한테 인기 만점이다. 겨우 입을 열어 하는 말이라고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가 다인 이 아이가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남자답다, 시크하다, 무게감 있다.’는 평이 쏟아진다. 

이런 면을 좋아하는 뭇 여성들은 욜라의 팬임을 자청했고, 자신의 이상형을 새로 썼다. 나는 그럴 때마다 코웃음을 치며 ‘흥. 이건 사기야! 다들 욜라의 본 모습(하이드 쪽)을 알아야 되는데!’ 하고 혼자 씩씩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욜라는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호의, 그리고 불신의 눈초리를 초지일관 시크하고 무심하게 갚고 있다. 나는 ‘이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타인에 대한 관용을 욜라를 통해서 배우는 중이다. 내가 눈물로 호소하며 어딘가에 계실 신에게 ‘신이시여, 왜 당신은 제게 이런 아이를 주셨나요?’ 하고 물으면, 아마도 ‘그건 다 네 탓이니라.’ 하는 말을 들을 것이다. 신이여! 하고 불러 놓고 그건 당신 때문!이라는 말은 나도 못하겠지만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난 뒤 남편한테는 말할 수 있다.

나 : 욜라 때문에 정말 미치겠어!
남편 : 왜?
나 : 그냥 모든 게 이해가 안 돼. 애가 미쳤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와. 분명 나는 제정신이었는데 욜라를 만난 지 단 5분 만에 이성을 잃게 되네.
남편 : ....
나 : 왜 말이 없어? 설마.... 욜라가 이해돼?
남편 : 으응. 그렇지. (더듬더듬 부끄러운 얼굴로) 나는 욜라가.... 이해....되는 경향....이 있어.
나 : 뭐?!!

세상엔 이렇게 도저히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이해해 주는 사람도 분명 있는 것이다. 비록 내가 욜라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괜찮은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를 뿐이지(비록 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이해할 수 없음이 꼭 내 탓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꼭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이해되지 않는 채로 내버려 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면죄부를 받는 느낌이다. 아이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으니, 그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보이지 않던 그 다음 단계-더 소중한 무엇이 보이는-로 넘어간다.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과 우리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것. 사랑 말이다. 인생을 대자연 속의 플라잉 낚시와 오버랩 해서 보여 주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보았는가. 거기에서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한 말을 떠올려 본다.

“필요할 때 사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돕지 못합니다. 무엇을 도와야 할지 모르고 있으며, 때로는 그들이 원치 않는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서로 이해 못하는 사람과 산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 해도 우린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완전한 이해 없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동감이다. 나 또한 욜라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내가 욜라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영원히 변함이 없을 것이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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