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선교회 수련회에 가다
[애들아! 이제 숨 쉬고 살자]

  

▲ 마리스타 교육관 2층 숙소 이불장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현웅과 영민

서울교구 사회사목부, 서울 가톨릭 사회복지회 소속 지제장애인 모임인 바오로 선교회가 합정동 마리스타 교육관에서 6월 20-21일 1박2일 수련회를 했다. 자녀를 포함해서 30여 명의 회원들이 수련회에 참여하였다.  

▲ 휠체어를 타고 교육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교육관을 들어가자 다른 피정의 집과 구분되는 소수자를 위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지체장애인들을 위해 이동이 편리하게 건물 안팎의 턱을 낮춘 것이었다.

                                                                                  

 

남편 베드로와 선교회의 봉사자로 10년을 함께 활동하면서 나의 주된 관심사는 ‘선교회 회원 부부 자녀들의 성장을 어떻게 동반할 것인가?’였다. 

첫날 저녁에는 ‘장애인의 성’ 이라는 주제로 강의가 있었다. 참가자들은 강의를 들으며 성욕은 인간의 기본 욕구로, 비장애인이 성욕을 해소할 수 없을 때 고통스럽듯이 장애인도 일상 속에서 성적 욕구가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함을 긍정하였다.

강의가 끝나고 한밤의 세레나데-실내악- 연주가 한 창이었다. 장애인으로서 이동의 어려움, 바쁜 일상에 치여 시간을 낼 수 없는 처지라 평상시에 잘 드나들 수 없는 클래스 공연장. 기꺼이 수련회를 찾아준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를 연주한 예술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났다. 

▲ 바오로 선교회 식구들을 위한 현악 삼중주 공연

    주옥같은 연주가 끝나고 열정이 넘치는 연주자들과 한 장 박을 사람은 모이라고 하자 다들 환호성을 부르며 무대 앞으로 나왔다. 몹시 친한 척하며 바싹 붙은 영직 오빠의 밀착에 루시아 자매가 기겁하는 모습이 코믹했다.

 

이어서 ‘영화를 말한다’ 코너로 흑인 맹인 가수 겸 작곡가로 유명한 레이 찰스의 격정적인 일생을 그린 ‘Ray'를 관람하였다. 자신의 잘못으로 동생이 빨래통 물에 질식사했다는 죄책감으로 서서히 실명하고, 눈먼 아들이 좌절하지 않고 세상을 야무지게 살아가도록 훈련시키느라 연민의 눈물조차 삼켜야 했던 어머니의 처절함, 현명함 그리고 강인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둘째 날 아침에는 절두산 성지로 산책 겸 사진 촬영을 위해 아침 일찍 방문하였다. 전날 내린 비와 아침이슬이 방울방울 맺힌 여러 꽃과 잎들이 거미와 함께 자연교향곡을 협연하고 있었다.

오전에는 가족 간의 소통을 위한 강좌가 있었고, 오후에는 ‘도전골든벨’, 작은 형제회 조영기 안드레 수사신부의 ‘바오로 생에’에 대한 강의, 그리고 파견미사가 있었다. 

오전에 있었던 “자녀와 함께 춤을!” - 가족 간의 소통-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이 층 숙소에서 쿵쾅쿵쾅 천장이 무너져라 오도방정을 떠는 아이들 곁으로 갔다.  

이제 사춘기가 막 진입한 현지, 내년에 첫영성체 교리반에 들어갈 현웅,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운 영민. 이 시간에 집에 있으면 컴퓨터 게임, 닌텐도, TV 시청에 몰두하련만. 마리스타 교육관에는 그것들이 없어서 무료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숙소에 올라가 보니 벌써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누군가 방에 놓아둔 우산 1개, 벽장과 그 안에 있는 이불이 훌륭한 놀이 도구였다. 세 명이 신나게 놀고 있는데 뜬금없이 비쩍 마른 아줌마가 나타나자 잠시 멈칫한 표정.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현지에게 다가갔다.

“아줌마, 별명이 있는데...”
“뭔데요?”
“드라큘라”
나를 다시 한 번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드라큘라가 뭔지 알아요?”
“사람 잡아 먹는 ....”
“맞았어. 근데, 이 드라큘라 아줌마는 사람 안 잡아 먹어. 대신 이 덧니 보이지.
친구가 방심하고 있으면 덧니가 삐쭉 나와서 목에 피를 빨아먹는데...”
“친구는 방심이 뭔지 알아요?”
“몰라요”
“방심이란 ‘다른데 신경 쓰느라 멍하고 있는 거예요.”
현지는 슬그머니 목에 손을 가져갔다.
“아참, 친구 이름은 뭐예요?”
“현지 로즈마리”
“로즈 마리, 로즈가 무슨 뜻인지 알아요?”
“몰라요”
“장미라는 뜻이야”
“음...”
“아줌마가 현지에게 문자 보내고 싶은데 전화번호 알려 줄래”
“나 지금 알이 없어서 문자 못해요,”
“괜찮아, 아줌마는 현지에게 문자 보낼 테니깐, 현지는 다음 달에 알 많이 생기면 전화하면 되지”
나는 현지에게 그 자리에서 문자를 날렸다.
‘현지 로즈마리 안녕 만나서 방가방가♡♡ 가끔 전화기다릴께용 ㅋㅋ’
문자를 열어본 현지는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현웅과 영민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세 명의 아이들과 동심의 세계로 직행했다. 우리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숨바꼭질’, ‘기차놀이’를 했다. 숨바꼭질 놀이를 할 때 이불장에 들어가서 숨었는데, 아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장이 내게는 너무 작아서 몸을 기억 자로 꺾어야 겨우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술래인 현웅 손이 문고리를 잡았을 때 내가 “야!” 하고 선수를 치자, 놀란 술래가 오히려 멈칫하였다. 놀이를 바꿔 ‘기차놀이’를 할 때 현웅이 매표원이 되어 ‘KTX 표 9만 원이요!’ 하며 외쳤다. 나는 얼른 종이에 ‘KTX 기차표값 90.000원’이라고 써서 현웅에게 주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변했는지 안 받는다고 했다. 그러자 영민을 태우고 다니던 기관사 현지가 얼른 타라고 한다. 영민과 나를 태우고 기차가 떠나려고 했는데 힘이 부친 현지가 영민에게 내리라고 하며 나만 태우더니 “어디 갈 거예요.”하고 물었다. “이태리요!”

순간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현지는 기차를 운전하기 시작하였다. 두 바퀴 방을 돌아 ‘집에 다 왔다’며 내리라고 했다. 1시간 정도 세 명과 놀고 나니 나는 진이 다 빠져서 아래층으로 내려와 휴식을 취했다. 아직도 기운이 펄펄한 세 명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바깥으로 나가 살이 발갛게 익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웃집 옥상에 있는 개들과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 별명으로 통성명하고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그들의 눈높이에서 신나게 놀았던 것이 현지, 현웅 그리고 영민과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노는 사진을 찍으려고 베드로가 위층 숙소를 올라갔는데 현지가 죽어도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해서 현웅과 영민만 숨바꼭질 놀이하는 장면에 박혔다.

수련회를 마친 바로 다음 날 월요일에 현지에게, "‘로즈 마리 안녕^^ 드라큘라 아줌마야 학교재미? 어제 무지 즐거웠어. 7월에 알 받으면 바로 ☎해" 하며 문자를 날렸다. 현지 부모에게는 앞으로 현지의 멘토가 될 테니 알고 있으라고 문자를 보냈다. 현지 엄마인 루시아님은, "ㅎㅎ 울 딸이 자매님께서 넘 재미나셔서 즐거웠다며 싱글벙글했습니다 감사해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어제 일요일 현지에게서 문자나 날아왔다. "ㅋㅋㅋ저현지예요 바오로선교회회장 딸ㅋ알들어와서전화했는데 통화중이시네요" 나는 얼른 전화를 했다. 드디어 알을 받았다며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현지가 전화해주니 기쁘다고 했다. 짧은 통화 후에, 현지에게 문자를 날렸다. "로즈마리 드라큘라예요 방가방가^^ 문자와 목소리들려줘서 고마고마♥♥ 자주문자주샴 큘라~행복 로즈땜시" 

현지와의 만남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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