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대 위기 속의 미국 교회

워싱턴 대교구 도널드 우얼 추기경. (사진 출처 = NCR)

(마이클 숀 윈터스)

“우리 주교 도널드.”(Antistite nostro Donaldo.) 10여 년 동안, 도널드 우얼 대주교가 2006년에 워싱턴 대교구장으로 착좌할 때부터 내가 2017년에 워싱턴 대교구를 떠날 때까지, 주일 미사에 갈 때마다 나는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이 구절을 말할 때마다 조용히 따라서 말하곤 했다. “우리 주교 도널드를 위하여.” 주교좌대성당에서 있는 미사에 갈 차를 빌릴 수 없어서 교외인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성당에 걸어가야만 했을 때도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은 뭔가 기계적이고 의무적인 것에서 뭔가 인격적이고 힘 있는 것으로 변해 갔다. 여전히 의무이긴 했지만.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우리의 교황과 주교를 위해 기도한다. 제대의 성체(Communion)는 사람들의 일치(communion)와 본질상 연결돼 있으며, 이렇게 일치된 사람들이 교회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의 실체이지만 두 가지 얼굴을 지닌다.

지금, 미국의 그리스도의 몸(교회)은 멍들고 피 흘리고 있다. 전 추기경인 시어도어 매캐릭이 끼친 피해들,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주 대배심 보고서에서 자세히 드러난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라는 무섭고 섬뜩한 사실은 서로 합쳐져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학대 문제를 다시금 교회의 양심과 공적 이미지의 한가운데에 놓았다. 도널드 우얼 추기경은 이 두 추문을 이어 주는 고리였다. 2006년에 매캐릭의 후임자로 워싱턴 대교구장이 되었고, 펜실베이니아의 한 주교로서 18년을 보냈다.

(편집자 주- 펜실베이니아에는 교구가 8개 있고, 우얼은 피츠버그 주교(1988-2006)였다. 펜실베이니아 대배심 보고서에서 약 70년간 301명의 성직자가 성학대를 저지른 혐의가 있다고 밝힌 뒤, 우얼은 피츠버그 주교일 당시 (교구 안의) 사건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이를 부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12일 우얼 추기경의 사퇴를 수락하고, 후임 대주교가 정해질 때까지 그가 대교구장 서리로서 교구 일을 계속 보도록 했다. 또한 그는 추기경 지위를 잃은 매캐릭과 달리 계속 추기경으로 남는다.)

변호사들이 반대했음에도 (성직자 성학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직접 만난 여러 주교 가운데 하나가 우얼이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 주교회의가 2002년에 댈러스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아동보호헌장을 만들어 모든 주교는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학대를 경찰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법률화하기 10년 전에 우얼이 (자기 교구에서) 그런 정책을 도입했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참 많고 많은 사제들이 그 “절대 불관용” 원칙이 모욕적이고 불공정하다고 봤고, 그래서 그 댈러스 총회에서 그 정책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때 그에 반격한 교회지도자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얼이었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펜실베이니아 대배심의 보고서의 내용이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허수룩한 칼럼니스트들과 논평자들이 (그 보고서에 관한) 이야기들을 뒤섞고 세부사항들을 싹둑 잘라내 버려서, 그들 모두가 그 보고서의 핵심 쟁점에 대답할 수 없었던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핵심은, 만약 우얼 추기경이 자신의 출세길에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소아성애자인 앤서니 키폴라 신부를 면직시키려고 강력한 바티칸 세력과 싸우고 있었다면, 왜 그는 같은 시기에 아동 피해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다는 뉴스 평가를 받고 있는가라는 점이었다. <처치 밀리턴트>(Church Militant, 투쟁교회, 미국의 극우적 가톨릭 매체)와 같은 과격하고 위험한 집단들이 대배심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에 우얼 추기경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위의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미국 교회가 성직자 성학대 문제로 부딪히고 있는 위기의 대표가 되었기에 대주교 자리에서 몰려났다.

나는 그가 두 명의 나쁜 행위자– 아동 강간범은 아니다-를 복직시키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 직후 면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질 나쁜 짓을 했고, 정신과 의사들이 (그들에 대해) 뭐라고 하든 간에 그들은 절대 복직되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우얼 추기경이 대배심 보고서에 대한 반응에 잘 대응하지 못했고, 오히려 안 좋은 방식으로 그랬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회개하는 대신에 방어하는 것으로 비쳤고, 보고서에 나온 성학대에 화가 난다고 말하면서도 TV카메라 앞에서 실제 화난 표정을 보여 줄 능력이 없었다. 그는 PR을 서툴게 한 죄인인가? 그렇다. 그는 그 죄인이다.

나는 또한 그간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지해 온 우얼 추기경을 비롯한 여러 추기경과 주교들이 근래 몇 년간 자기네 교구 한복판에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암에 제대로 대처하는 데 소홀했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 어디든 <라이프사이트뉴스>나 <처치 밀리턴트>같은 정신나간 것 같은 집단이 있게 마련이지만, 우얼 추기경 등은 그래도 <내셔널 가톨릭 레지스터>나 <EWTN>같은 (교회 공인) 매체는 논조와 내용에서 이들과 거리를 두라고 강하게 말했어야 했다.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전 주미 교황대사)의 공개편지가 <내셔널 가톨릭 레지스터>에 실렸을 때, <라이프사이트뉴스>에는 누군가의 번역문이 실렸으며, 이로써 두 매체 간의 연계관계는 누구의 눈에나 뻔하게 보였다.(편집자 주- 비가노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매캐릭의 추문을 전부터 알고도 처벌하지 않았다며 자신이 천명한 절대불관용 원칙에 따라 스스로 사퇴하라고 공개 요구하는, 근현대 교회사상 없던 사건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EWTN> 사장이자 <레지스터>의 발행인인 마이클 워소가 여전히 교황청 홍보 관련 부서의 공식 자문위원 명단에 있는 것을 보고 입이 딱 벌어진다. 그가 맡은 미디어들은 캐머룬 두디가 <디지털 종교>에서 설명했듯이, “더러운 돈”(dinero sucio)이 모두 조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겨냥한 잘 조직된 공격의 일부로 참여하고 있다.

나는 이들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지하는) 주교들이 운영하는 대학들이 이달에 보수 가톨릭 신자로 엄청난 부자인 팀 부쉬의 나파연구소와 함께 한 회의를 주최한 것을 보고 어이가 없다. 부쉬가 비가노가 그 편지를 공개하기 2주 전에 그와 이야기했다고 스스로 밝혔음에도 말이다. 부쉬는 그때 비가노가 오랜 세월 쌓아 온 신뢰의 가치를 허물지 말라고 설득하려 했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우얼 추기경 자신의 주교좌대성당이 그 회의와 연관된 미사들을 주최한 것을 보고 크게 놀란다. 우얼 추기경을 포함해 우리 주교들은 이미 칼싸움에 휘말린 것을 알면서도 소매단추에 피가 묻을까 걱정하고 있다. 싸움에 대응하기에는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이들은 빨리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우얼 추기경이 사퇴함으로써 교회 안의 이 극악한 세력들은 더욱 대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처치 밀리턴트> 패거리들과 나파연구소 패거리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자신들이 거둔 승리에 건배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상상만 해도 토 나온다.

우얼 추기경이 2006년에 (매캐릭 추기경의 후임자로) 워싱턴 대주교로 왔을 때 그는 내가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미국 주교회의 안에서 그나마 제 정신을 가지고 얘기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람이 주교회의 안에 얼마나 드문지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주 형식에 잘 따라서 심지어 너무 딱딱했고 늘 풀 먹여 칼처럼 다린 옷만 입은 사람 같았다. 그가 대주교로 와서 하는 강론은 꼼꼼하고 명확했지만 열정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피츠버그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이런 농담을 들었을 정도였다. “잊지 마. 그 사람 독일인이야. 그가 식판에 담은 고기와 채소는 절대 서로 닿는 법이 없다고.” 하지만 그는 전임자인 매캐릭과 달리 입이 줄줄 열리거나 세속적인 것은 전혀 없었다. 그는 진지하고 성실했으며 직접 실무에 참여하는 관리자라는 평판을 받았고, 내가 나중에 깨닫게 되었듯이 그가 보여 주는 격식 안에는 사목자의 마음이 있었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주교의 역할에 관해 말한 바를 철저히 받아들인 모습이 있었다.

우얼 추기경은 자신이 매 주말마다 본당을 방문하는 (주교 사목방문) 것을 자기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는 사무실 일과 대비되는 “사목적” 일로 보지 않았다. 그가 사무실에서 내리는 결정들, 이것들도 또한 사목적 직무 안의 실행이었다.

우얼 추기경은 그와 같은 타입의 세대의 막내였다. 그는 1966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래서 그가 신학교에서 교육받은 것은 모두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 전이거나 도중이었다. 그는 교회사람이었지 이데올로그가 아니었다. 그는 신사였지 폭탄이 아니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인 요즘 워싱턴과는 무지 안 맞는 사람 같다. 우얼은 천 번 부당한 모욕을 받아도 자기는 단 한 번도 남에게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30년간 미국 가톨릭교회에서 자연처럼 강력한 존재였으며 미국 주교회의와 교황청, 그리고 자신이 맡은 교구를 위해 소처럼 일했다. 나는 그를 점차 알게 되면서, 물론 아주 잘 알지는 않지만 서로 솔직하게 말하기에는 충분할 정도이고, 그를 친구로 여기기에 충분할 정도이며, 그가 사퇴했다는 뉴스를 듣고 내가 울었을 정도는 되는데, 나는 도널드 우얼이 또한 초자연 수준의 사람이며, 어느 모로 보나 진정한 은총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금은 워싱턴 대교구에 살지 않는다. 곧 워싱턴 대교구에는 새 대주교가 임명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미사 중에 “우리 주교 도널드”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그가 그토록 명민하고 참으로 충실하게 이 교회와 이 나라에 바쳤던 봉사에 감사할 것이다.

(마이클 숀 윈터스는 <NCR>의 종교와 정치 분야를 맡고 있다.)

기사 원문: https://www.ncronline.org/news/accountability/distinctly-catholic/wuerl-hounded-office-becoming-face-abuse-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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