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회원국 중 한국, 일본, 미국, 이스라엘만 가입 안 해

10월 10일 제16회 ‘세계사형폐지의 날’을 맞아 각계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과 사형제 대체 형벌 마련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 30일로 사형집행이 중단된 지 20년째인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다. 현재 61명의 사형수가 있지만, 정치권과 종교계, 시민사회계, 법조계는 사형제 폐지를 확실히 명문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1999년 첫 사형제 폐지법안이 발의된 뒤 여러 차례 다시 발의됐지만, 19년째, 본회의에도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사형폐지 범종교인연합 집행위원장인 김형태 변호사는 경과보고를 통해 사형제가 인권침해 등에 따른 위헌이며, 올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며, 국회 폐지법안 상정과 함께 법조계도 헌재 판결 등을 통해 사형제 폐지를 위한 구체적 활동을 벌인다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에는 각 정당 대표와 유럽연합을 비롯한 유럽 각국 대사, 종교계와 시민사회대표들이 참석했다.

10월 10일 16회 세계 사형폐지의 날 기념식에 배기현 주교와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유럽 각국 대사 등이 참석했다. ⓒ정현진 기자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배기현 주교는 축사를 통해 국회와 헌재 등에서 폐지 쪽으로 입장을 바꾸고 있지만 여전히 실현되지 않는 현실은 아직 우리 사회가 사형제 폐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보여 준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를 용서하기 어렵고 생명으로 되갚는 응징으로 억울함을 풀려는 마음을 이해하지만, “참으로 조심스러우나 귀한 생명을 잃은 결과로 또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게 하는 업보같은 윤회를 벗어나 자비와 용서라는 대승의 길을 걸어 주길 간절히 빈다”고 말했다.

배 주교는 “사형폐지에 반대하는 이들의 심정도 헤아리며, 엄청난 범죄와 속수무책의 만행에 불안해 하는 이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이 걸어가야 할 더 귀한 길, 곧 생명의 길에 더 큰 마음으로 다가서야 한다. 인간의 일이지만 인간의 것을 넘어서야 이뤄질 사형폐지 운동에 하늘의 감도가 있기를 빈다”고 말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도 기념사를 통해, 사형폐지 이후의 대체형벌에 대한 논의, 범죄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제도적 배려와 지원, 생명 존엄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최 위원장은 “올해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사형제를 둘러싼 논쟁을 끝내고 사형을 어떤 형벌로 대신할 것인지 본격 논의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유럽연합대사는 주한 유럽연합 28개 회원국 대사들과 함께 낸 성명을 통해 한국의 ‘자유권 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을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라이터러 대사는 “한국이 비공식적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유예) 상태를 공식적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으로 변경하는 것과 유엔 총회 사형집행 모라토리엄 결의안에 찬성함으로써 사형제 폐지로 나아갈 것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희망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9월 10일 전원회의에서 ‘사형폐지를 위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을 정부에 권고하기로 한 바 있다. 

제2선택의정서는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것으로, 가입국은 사형집행 금지와 사형제 폐지를 위해 조처할 의무가 있다. 현재 85개국이 가입했으며,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 일본, 이스라엘, 미국이다.

사형제폐지를 위한 종교, 시민사회 연석회의가 선언문을 발표하고 정부와 국회에 사형의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정현진 기자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인혁당재건위 조작사건 사형수 하재완 씨의 가족 이영교 씨도 “날조된 수사와 엉터리 재판으로 사형수가 되자마자 형장의 이슬로 떠나 버린 하재완 씨와 그 동료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어떤 위로나 배상도 지난 40년의 세월을 보상할 수 없다”며, 사법적 실수의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 집행되면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바로 사형이라고 사형제 폐지를 촉구했다.

기념식에서 ‘사형제폐지 종교, 인권, 시민단체 연석회의’와 참가자들은 선언문을 발표하고, 모든 법률에서 사형을 폐지할 것을 국회에 권고했다.

이들은 2007년 유엔이 ‘사형에 범죄억제력이 있다는 결정적 증거없음’을 공식 입장으로 채택했으며, 2017년 말 기준 법률상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106개국, 사실상 사형폐지국은 36개국이라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들어, 한국 정부가 사형 폐지라는 전 세계적 부름에 답해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또 이들은 “범죄에 대한 처벌은 사형처럼 강력한 복수의 방법으로 행해서는 안 되며, 참혹한 범죄에 참혹한 형벌로 응징하는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며, “범죄발생의 근본 원인을 해소하고 사회구조적 모순을 풀어나가며 범죄 발생을 줄여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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