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2014년 4월 바티칸 성 베드로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요한 23세 교황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시성식을 집전하는 모습. (사진 출처 = Flickr)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시복(beatification)과 시성(canonization)을 통해 신앙의 귀감이 될 사람들을 알려 왔습니다. 시복은 모범적인 신앙인을 복자로 인정하는 것이고, 시성은 복자로 인정된 그를 성인품에 올리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영웅적으로 신앙을 증거한 이의 사후에 진행됩니다. 

절차상 시복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후에 시성 절차를 거쳐 시성이 이루어집니다. 보통 시복을 위해서는 그 시복 대상자에게 기도하여 일어난 기적이 한 가지라도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복자가 되고 난 뒤, 다시 그를 통해 일어난 기적이 한 가지 더 확인되어야 합니다. 단, 순교자는 순교 사실만 확인되면 기적심사 없이 시복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기적이 필수 요소일까요? 원칙적으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기적심사를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즉, 꼭 기적을 확인하지 않아도 성인품에 오를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103위 성인들이 기적심사 없이 시성된 분들입니다. 순교하셨기에 복자품에 올랐고, 기적심사를 면제받고 시성되신 것입니다.

절차상 기적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교회가 신앙의 모범으로 기리고자 하는 사람의 삶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그만큼 공경할 이유가 있기에 복자 그리고 성인으로 추대하고 싶어 하고, 교회도 그만큼 권장할 가치가 있어야 할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성인으로 추대되려면, 1) 순교자이거나 2) 영웅적 덕행을 보여 준 증거자이거나 3) 많은 대중이 공경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2017년 여름에 교황청은 새로운 시복 기준을 덧붙였습니다. 이것은 “벗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요한 복음(15,13)의 내용에 기초합니다. 즉,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놓고 일찍 죽은 이가 이 조건에 부합됩니다.("“사랑으로 죽은 이들” 성인된다” 참조)

이 기준에 의하면, 그 증거자는 그리스도교적 덕행을 실천하며 살아온 이어야 합니다. 그런 그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 놓고 일찍 죽게 되었지만 사랑의 마음에서 그 죽음을 영웅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삶과 죽음은 다른 이들에게 충분히 신앙의 모범을 제공해 줍니다. 어찌 보면 우리 주변에서 평범한 삶을 함께 나누는 이들 중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분들이 누군가를 위해 대신 죽게 된다면, 그리고 그들의 간구로 기적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있다면 시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복, 시성이 되지 않아도 우리의 삶에 깊은 감동과 영향을 주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평범하지만 거룩한 삶을 따르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덕행을 따르는 것이 되겠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