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신부] 10월 7일(연중 제27주일) 창세 2,18-24, 히브 2,9-11, 마르 10,2-16

이번 주일 1독서로 제시된 본문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남자의 ‘협력자’에 대한 창조이야기입니다. 홀로 있지 않고 함께 있음은 선함의 차원을 가집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Non est ‘bonum’ esse hominem solum -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선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과 함께해 줄 짐승과 새를 만드십니다. 하느님의 배려에 따라 사람은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며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찾지는 못합니다. 이것들이 사람의 진정한 협력자가 될 수 없음을 하느님께서는 발견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남자에게 ‘알맞은 협력자’(창세 2,18)로 여자를 창조하십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단어는 ‘알맞은 협력자’라고 번역되는 말입니다. 협력이라고 하면 서로 힘을 합친다는 뜻이지요. 개신교 성경을 보면 ‘돕는 배필’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에제르 크네그도’라고 되어 있는 이 단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에제르’는 ‘도움, 돕는 자, 구원자’의 의미를 지니고 크네그도의 원형인 네게드는 ‘상대방, 맞서 있는, 대등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에제르’라고 쓰인 단어는 성경에서 주로 하느님의 도움을 표현하는 데 쓰입니다. 예를 들어 사무엘기 상권 4장에서 이스라엘이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갈 때 진을 친 곳이 ‘에벤 에제르’인데 이것이 ‘하느님의 도움’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편 33편 20절 ‘우리의 영혼은 주님을 기다리니 그분은 우리의 도움, 우리의 방패이시다’에 등장하는 도움도 바로 ‘에제르’입니다.

이렇게 단어의 원래 뜻에 가깝게 살펴보면 여자의 창조 의미는 남성에 대한 단순한 협력이라는 의미보다는 동등한 위치에서 서서 도움을 주는 것에 더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발 더 다가선다면 도움이 필요한 것은 한 쪽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먼저 창조된 남자에게 무엇인가가 부족한 것이 있고 하느님께서는 그 부족함을 ‘서로 마주하고’ 도와주라고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네게드’라는 말이 의미하듯 남자와 여자 사이의 우열관계는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남자에게 베풀어진 이 도움은 하느님에게서 온 도움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독서를 보고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해서는 곤란하겠습니다. 남자의 뼈에서 여자가 나왔으니 남자가 더 우월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속한 존재라는, 정말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들으시면 놀라 자빠질 이야기는 안 하는 것이 좋겠지요.

알맞은 협력자. (이미지 출처 = Pixnio)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러한 정신을 잘 표현해 주십니다. 그리고 남녀의 혼인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계시지요. 주님께서는 기존의 율법의 가르침을 넘어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보여 주고 계십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가정이 개인과 사회에 지니는 중요성과 중심성은 성경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창세 2,18) 인간의 창조를 이야기하는 성경 본문에서 남자와 여자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어떻게 “인간 사회의 최초 형태를 이루게” 되었는지가 드러난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함께 자녀를 출산함으로써 창조주의 협력자가 된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창세 1,28) 창조주의 계획에 따라 가정은 “개인과 사회를 위한  ‘인간화’의 첫 자리”이며 “생명과 사랑의 요람”이다. 이렇게 가톨릭교회의 가르침들은 가정을 통해서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그 속에서 가장 근원적인 사랑을 알아 간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의 모든 이유 그 근저에는 오늘 복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9)

우리는 서로가 조금씩 부족한 것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은 다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첫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그를 도울 배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창조 첫 순간에서부터 볼 수 있듯이 인간적 완벽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도우라고 주신 이웃들 속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거기에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히브 2,11)

더불어 오늘은 군인 주일이기도 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군인들과 이들을 위해 헌신하시는 군종신부님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다가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전쟁 무기의 균형으로 평화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상호 신뢰에 의해서 참된 평화가 확립된다’(교황 요한 23세, 회칙 '지상의 평화', 113항)라는 교회의 신념이 이 땅에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청합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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