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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하게 깊어 가는 밤인데[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89]

호젓하게 깊어 가는 밤인데, 집 뒤편 산 쪽 창문 밖으로 수상한 소리가 들린다. 투둑, 파사사. 툭, 투루루. 경사진 산길에 무엇이 떨어져 구르는 소리. 불규칙하게 계속되는 소리. 아, 밤이 떨어지는구나. 밤아, 안녕? 안녕! 그리고.... 잘 가. 나는 밤을 만나는 동시에 밤과 이별을 한다. 왜냐면 나는 그 밤을 찾아 두꺼운 장화를 신고 집게를 들고 굳이 풀숲을 헤치지 않을 작정이므로. 밤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이므로. 우리 집 뒷동산 밤은 그래서 뭇 밤들과 다른 삶을 산다. 끓는 물에 폭 삶겨 사람 뱃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포대자루에 담겨 킬로그램당 얼마에 팔려 가지도 않고, 김치냉장고 안에서 새파랗게 떨지도 않고, 술이 되거나, 잼이 되거나, 제과점의 당 절임이 되지도 않는다. 

나는 떨어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최후를 맞는 밤을 상상한다. 폭신한 풀숲에 떨어진 밤은 다양한 진로의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운 좋은 것들이다. 밤은 짐승들의 풍성한 먹이가 될 것이다. 밤송이에서 밤을 쏙 빼내는 방법을 그들은 알고 있겠지. 또 밤은 밤벌레들의 아늑한 집이기도 하다. 야금야금 먹을 수도 있는 밤 집. 밤을 갉아먹은 벌레는 몸집이 커질 테고.... 결국 껍데기만 남은 밤을 뒤로하고 제 갈 길 가겠지만. 개중 몇몇 용감하고 튼튼한 밤은 또 다른 계획이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밤나무를 키워 올리는 꿈을 꾼다든가, 다람쥐가 자기를 어디론가 멀리 데리고 가 주길 바라든가, 이도 저도 아니고 푹푹 잘 썩어서 엄마나무의 거름이 되고자 하든가. 난 밤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집 뒷동산 밤이 어찌 되는지 일일이 알지는 못하나, 되는 대로 잘 살고 잘 죽을 것이라는 건 짐작한다. 

나는 그렇게 밤과 깨끗이 이별하고, 옆집 할머니가 주시는, 팔기에는 좀 모자란 밤을 한두 솥쯤 삶아 먹으며 올가을을 날 것이다. 나는 밤에 대해 소극적인 것 같기도 하고, 쏘 쿨한 것 같기도 하고, 인간으로서 할 짓인가, 아주 배가 불렀구나 싶기도 한데, 그게 밤을 대할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례로 시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참나물이니 머윗잎이니 씀바귀니 하는 것들을 사서 반찬을 해 주시며 내게, “에그.... ㅇㅇㅇ라면 너네 집에도 지천일 텐데....” 하고 말끝을 흐리시거나, “너네 집에 나는 ㅇㅇ을 모아 보면 못해도 한 끼 반찬거리는 될 거다.” 하고 추궁을 하실 때도 나는 모른 척한다. “우리 집에 ㅇㅇ이 있다고요? 아, 있구나.... 에헤헤헤....” 하고 머리를 긁적이고 만다.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듯 그것이 나서 자라고 시드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앵두나무에 열린 앵두는 몇 알만 따 먹어도 좋았다. 그러면 나중에 앵두 무게로 인해 나뭇가지가 휘영청 휘어지며 ‘나뭇가지 살려’ 하고 난리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얼마나 장관인지 모른다. 겨우 자라 주었는데, 힘들게 열매 맺었는데, 왜 먹질 못하니, 왜. 하고 누군가가 내 멱살을 잡고 흔들지도 모르지만, 그럴 땐 손을 뿌리치고 도망을 가겠다. 그런 열매들이, 먹어도 되는 것들이 나를 위해서 자랐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와 별개로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냥 내버려 두어도 좋지 않을까. 사실 내가 그들을 위해 뭔가 해 준 것이 없기도 하고. 

그들이 얼마나 위대하냐 하면 내가 따로 돌보지 않았지만 변덕스러운 햇빛과 비와 바람과 각종 생명체들과 더불어 스스로 큰 아이들이다. 심지어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 '죽은 게 확실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보았다. 결단코 그 자신의 힘으로. 어쩌면 나같이 게으른 친구를 만난 덕분에 그들은 충분히 제 방식대로 우연과 필연이 조화된 생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인데 사람도 알밤이니, 앵두니, 머윗잎처럼 그렇게 놔두면 안 되는 걸까. 가만 놔둬도 괜찮다는 걸, 그것이 나를 포함해 상대를 대할 때 가장 좋은 태도라는 것을 지금까지 생을 통과해 오며 문득 알게 되었다.

밤 떨어지는 가을. (이미지 출처 = Pixabay)

예전에 나는 울보였다. 그냥 울보라고 말하기엔 아쉬운, 앞에 ‘동네’ 자를 붙여야 될 만큼 대단한 울보였다. 동네 울보란, 우는 것 하나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는 울보라는 뜻이다. 그런 울보는 타고나야 되는 게 내 지론이다. 나는 싹수부터 아주 새파랐다. 우리 엄마는 젖먹이 나를 재우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나를 업고 집 근처 학교 운동장 수십 바퀴를 돌았고, 나는 밤늦도록 잠을 안 자고 울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가도록 나를 등에서 내려 놓지 못하는 엄마는 이불 더미로 쌓아 올려 만든 임시 베개에 머리를 기대고 앉은 채로 잠을 주무셨다 하는데, 엄마 말로는 아기였을 때 나는 우느라고 항상 입을 벌리고 있었단다. 그것이 과장이 아니고 신빙성 있는 묘사라는 건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유치원에 가서도 좀 운다 하는 애들이 제법 있었지만, 그런 울보들도 내 앞에서는 울 의지를 상실하지 않았나 한다. 나는 남들보다 먼저 울고, 남들보다 오래 울었기 때문에 다른 애들이 우는 걸 본 적도 거의 없다. 어쩌면 그때 내 친구들은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깨닫는 바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선생님이 다정하게 말만 걸어도 우는 지경이었는데, 우리 엄마는 얼마나 걱정을 하셨겠는가. 우는 딸 때문에 근심 잘 날 없는 엄마에게 동네 어른들이 위안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셨지만 매번 실망만 거듭하게 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어른들이 “(우는 거) 백일만 되면 괜찮을 거다.” 했지만 백일이 되어도 여전하고, “돌이 되면 좀 나을 거다” 했는데 돌에는 더 울고, “세 살만 되도 낫다.” 했는데 내내 울면서 세 살도 보내고, “유치원 들어가면 바뀐다.” 했는데 유치원에 가서도 줄기차게 울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어른들은 이번에야말로 틀림없다는 듯이 자신 있게 말씀하시길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달라질 거다. 확실히 덜 운다.”라고. 우리 엄마는 그 말에 의지하여 다시 힘을 내서 나를 초등학교에 보냈는데, 과연 나의 초등학교 생활은 어땠을까? 공부면 공부, 부반장이면 부반장, 선생님의 신임이면 신임까지 매사 타의 모범인 학생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전교 울보였다. 잘 우는 건 기본이요, 한 번 울었다 하면 끝을 보았다. 예를 들어 오전 10시 간식 시간에 삼각형 모양 우유 파우치가 새는 것 때문에 울기 시작했다면, 11시를 거쳐 (울면서 수업을 듣고) 12시 점심시간을 지나 (울면서 밥을 먹는다), 교실 청소를 하고 (여전히 울면서) 학교를 마칠 때까지 운다. 집에 가는 길이 하이라이트인데 밝은 햇살을 받으며 친구들의 재잘거림 속에서도 울었던 것이다. 그쯤 되면 사실 나도 우는 게 지겨워서 그만 울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이왕 운 거, 집에 갈 때까지만 울기로 한다. 그런데 집에 와서 그만 울기로 한 내 계획은 틀어지곤 했는데, 밤송이만큼 부은 내 눈을 본 엄마가 “오늘도 울고 들어오냐!”며 쿠션을 던지면 그걸 맞고 또 울었기 때문이다. 

실로 엄마는 내 울음을 그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쓰셨다. 타일러도 보고, 애원도 해 보고, 화도 내고, 같이 울어도 보고, 집에서 쫓아내기도 하고, 웅변 학원도 보내보고, 장어며 인삼이며 녹용 같은 것도 수차례 먹여도 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하려고 우는 게 아닌데 엄마는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셨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엔 울 일이 넘쳐 나고 우는 사람에겐 계속 울 일만 생기는 게 세상 이치였던 시절이었다. 어느새 동네 어른들은 “(하여튼 간에) 크면 나아진다.”라는 말을 흐릿하게 남기며 더 이상의 위로와 조언을 멈추었다. 나 말고 또 다른 울보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엄마마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태어난 동생을 돌보시느라고 내가 울건 말건 소홀해지셨다. 그렇게 왕년의 동네울보는 서서히 사람들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개인적으로도 마냥 울기에만은 바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내가 변했는지, 세상이 변했는지, 아마 둘 다 변했겠지만, 나는 점차 조금만 우는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울음은 여전히 참기 힘들지만, 그래도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울진 않는다. 아주 가끔 우는 걸 들키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멀리서만 보면 나는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는 강단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하니, 동네 울보의 변모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가만 놔두면 저절로 그 성질이 변하고, 대개는 좋은 쪽으로 방향을 틀어, 각자의 역량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이와 같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아까 알밤이니, 앵두니, 머윗잎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또 말하고 싶은 것은 한 동네 울보의 삶이나, 그 울보가 키우는 아이들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아주아주 대단한 울보였는데 지금은 아닌 것처럼, 메리나, 욜라, 로,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맞닥뜨리는, 당시에는 핫한 이슈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진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로, 욜라, 메리. ⓒ김혜율

돌아보면 다 지난 일이지만, 일희일비하는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든 게 문제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딱히 애쓰지 않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밤이 툭 떨어졌다고 콕 집어 망태기에 집어 넣는 대신 그냥 그렇게 소리만 듣고 말아도, 죽은 앵두나무가 다시 살아나 가지가 휘도록 번창하는 것을 지켜만 보아도 좋은 것처럼. 물론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사는 중엔 나름 할 일이 많아서 아이들이라는 나무에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비뚤어진 것 바로잡고, 쓰러진 거 일으켜 세우고, 가지치기에, 지지대에, 벌레까지 잡아 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때때로 이렇게 밤 떨어지는 밤, 가을이 한창인 날에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나는 내가 하는 그 어떤 것도, 그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응원하고, 기도하며, 감격하고, 감사하는 일보다는 앞서질 않기를 바라게 된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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