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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의 거북한 상업주의[시사비평 - 박병상]

1993년 출간돼 남도 답사 열풍을 일으킨 어떤 책은 고즈넉했던 강진 무위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책을 쓸 당시 저자는 아늑했던 대밭을 몽땅 베어 낸 “능력 있는 스님”의 호방함에 안타까움을 지우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때와 천양지차다. 증쇄를 거듭하던 책을 들여다보며 극락보전을 찾는 관광객 틈에 끼어 방문한 1990년대의 무위사는 지금 없다. 현재의 무위사(無爲寺)는 차라리 유위사(有爲寺)다. 없는 듯 있지 않다. 요란스런 성형(중창)을 하고 나 여기 있다고 천지 사방에 외친다. 199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이 거만한 호방함이 아닐 수 없다.

기억을 더듬어 작년에도 찾았던 무위사를 다시 방문할 생각은 버렸다. 오히려 찾겠다는 지인을 만류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그건 최근에 변신한 하회 마을도 비슷하다. 1990년대 일단의 대학생들과 조심스레 방문하던 전통마을이 아니다. 입장료 내고 들어가 먹고 마시는 시장판으로 떠들썩하게 변한 5년 전 이후 하회 마을을 찾을 마음이 사라졌다. 무위사나 하회 마을처럼 방문자의 호평이 늘어나 찾는 이가 증가하면 눈살 찌푸리게 변하는 명소는 한두 군데가 아닐 텐데, 전주의 한옥마을마저 그 대열에 포함되는 서글픈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주택업자가 획일적으로 만든 단지가 아니다. 전주시가 자랑하는 자료는 민족적 자긍심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로 형성되었다고 강조한다. 전주읍성 밖에 머물던 일본인들이 강점기 이후 성곽을 철거하며 성 안으로 대거 모여들자 성문 밖의 자존심 높은 양반들이 자존심을 걸고 모였다는 게 아닌가. 그런 한옥마을은 시방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일제는 이미 떠났다. 일제보다 무서운 천박한 상업주의가 100년 넘은 자긍심을 비웃는 게 아닌가. 한옥보존지구에 관광을 도입하자 입소문을 타면서 한옥마을은 급격히 변질되기 시작했다. 한옥의 고즈넉한 여백을 느끼려던 관광객은 떠났다. 먹고 마시며 흐느적거리는 식당 사이에 공기총으로 풍선 터뜨리는 상가들이 번쩍이는데, 개량한복을 걸친 관광객 사이를 비집으며 전동스쿠터들이 속도를 견준다.

전주 한옥마을 (사진 출처 = Pixabay)

한옥마을의 정취와 자긍심을 지키려는 전주시민들은 지친다. 상업주의에 혀를 내두른다. 천만 관광객이 모여들고 유력 외국 언론에서 아시아 10대 명소로 지정하면서 유명세는 돛을 달았다. 그러자 외지 자본이 몰려들었고 한옥 마을은 천박한 상업주의에 휩싸이고 말았다. 변질되는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전주시는 힘이 부친다. 사유재산권을 내세우는 상인들의 저항에 속수무책이다.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훼손하는 상가의 건물주는 대부분 수도권에 산다던데, 그들의 천박한 욕심을 통제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지역 고급화)은 홍대 거리와 가로수 길에서 머물지 않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이 휩쓸고 지나간 거리는 머지않아 명성을 잃고 낙엽만 뒹굴 텐데, 한옥마을의 내일이 걱정스럽다. 건강한 사유재산을 존중하면서도 합리적 대안을 체계적으로 찾을 수 없을까? 건물주와 세입자의 이해에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 그 지역을 흔쾌히 찾았던 방문자들이 충분하게 포함되는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전통문화를 지키려 방문자를 제한하는 국가도 있던데, 현재의 이해당사자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방문객도 납득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한옥마을의 자긍심이 지속 가능하게 지켜질 방법이 거기에 있으리라.

소상공인의 눈물을 닦아 줄 것으로 기대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가치의 지속 가능성을 포함해야 한다. 세입자가 장사할 권리를 10년 이상 보장하는 조항보다 근원적 대책을 사회문화적 합의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유서 깊은 마을과 거리의 정체성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눈앞의 돈벌이보다 다음 세대에 더욱 빛날 명소가 보존된다면, 나는 분명히, 먼 곳에서 스스로 찾아온 친구의 손을 이끌며 찾아가고 싶을 것이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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