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정부와 대학, 시간강사, '시간강사법' 합의

7년 동안 당사자 간 갈등과 정치권 개입으로 유예됐던 ‘시간강사법’이 시행을 위한 합의점을 찾았다.

대학강사 제도개선협의회는 3일, 대학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부여, 최소 1년 임용에 두 차례 재임용 보장(3년 임용 가능), 방학 중 임금 지급 등을 골자로 하는 합의안을 발표했다.

이 외에 “공개 임용, 계약기간 중 의사에 반하는 직원 면직과 권고사직 제한 및 불체포 특권, 교원소청심사권 보장, 주 교수시간 6시간 이하, 대학의 교원 확보율에서 제외, 방학 중 임금 보장과 퇴직금 지급, 4대 보험 적용” 등에도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대학과 한국비정규교수 노동조합, 전국대학강사 노동조합, 교육부, 국회가 추천한 전문가 대표 12명이 참여해, 18번 논의 끝에 이뤄졌다. 

‘시간강사법’은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포함된 것으로 2010년 조선대 강사 서정민 씨가 지도교수의 횡포와 열악한 처우를 유서로 고발하며 목숨을 끊은 뒤, 다시 논의됐다. 그 이전인 2006년 17대 국회 때 이미 여야 의원안이 나왔고 2011년 18대 국회에서 의결했지만 시행은 올해까지 4번 유예됐었다.

‘시간강사법’에는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교원 지위를 주며, 4대 보험 적용, 1년 이상 임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법이 오용돼, 오히려 시간강사 대량해고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시간강사 측의 우려와 재정압박을 이유로 드는 대학 측의 반발 등으로 시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대학과 시간강사, 정부가 함께 입장을 좁히고 최종 합의를 이끌어 낸 것으로 2019년 1월부터 시행하기 위해서는 올해 하반기 내 입법 절차와 입법예고기간을 서둘러 거쳐야 하지만, 교육부는 계획대로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공식 기록으로 목숨을 잃은 시간강사만 11명이다. 현재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지만 시간강사법 논의가 시작됐던 2010년 즈음에는 정규직 교수 6만여 명의 두배가 넘는 13만여 명의 시간강사와 비정규 강사들이 정규직 교수 연봉의 약 10퍼센트 급여를 받으며 그나마 극심한 불안 고용과 부당한 처사 등을 겪었다. 2017년 현재 시간강사 수는 약 4만 5000명, 전임이나 겸초빙, 기타비전임 등 비정규직 교수를 모두 합하면 약 15만 명이다.

이런 시간강사 교원 지위 박탈은 군사독재의 산물이기도 하다. 1977년 박정희 정권은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대학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강사들의 교원자격을 박탈했다. 이들이 잃은 교원 자격‘, 즉 ’교수‘, ’선생‘의 호칭과 지위는 시간강사들의 개인적 형편을 넘어 결국 대학 민주화 붕괴, 대학교육 질 저하와 맞닿았다. 그리고 그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도 받았다.

이번 합의에 참여한 김동애 씨(소화데레사)는 남편 김영곤 씨와 비정규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1999년부터 싸워 왔다. 2011년 5월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한 이들은 시간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싸우며,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한 11년 만에 결실을 볼 것 같다며 희망을 내비쳤다.

김동애 씨에게 이번 합의의 내용과 시간강사 교원지위 회복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들었다.

2012년 8월, 고려대에서 봉헌된 '대학강사 교원 지위 회복을 위한 미사'. ⓒ정현진 기자

“선생도, 노동자도 아니었던 시간강사들.... 권리는커녕 기본권도 없었다”

김동애 씨는 이 합의안이 시행된 뒤에도 각 학교 현장에서 부딪치고 이뤄야 할 구체적인 일들이 많을 것이라면서도, “무엇보다 교원으로서 지위를 회복했다는 것, 그 큰 틀은 얻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시간강사는 학교에서 교육노동자였지만 사실상 ‘선생’이라는 법적 지위를 잃어 단지 노동자였으며, 노동자임에도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교원지위 회복은 이들에게 ‘교육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 준 셈이다.

이런 교원 지위 회복과 최소 3년의 고용 보장은 단지 ‘선생’으로 불리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례로 교원으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교원심사소청권’이 있으면 그동안 학교의 일방적 계약과 고용 상태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소신 발언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전에 대학은 시간강사 고용에서 계약서조차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일방적으로 대학의 의사에 고용이 달려 있는 상황에서 강사들은 대학 내 문제에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는 법원에서도 구제받지 못했다.

그러나 ‘교원심사소청권’이 보장되면,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그 잘못의 여부를 공식적으로 가릴 수 있게 되고, 또 교원으로서 각종 회의에 참여함으로써 발언권이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 돈 없다는 건 거짓말.... 정말 우려하는 것은 대학의 봉건적 권력구조 붕괴”

김동애 씨는 그동안 시간강사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던 배경에서 시간강사들이 교원 지위를 회복할 경우 ‘대량해고’와 같은 역효과가 난다거나, 대학 재정이 불안하다는 목소리에도 반박했다.

“지금까지 대학이나 국회, 언론은 대학에 돈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은 대학의 민주화를 가장 우려하는 것이다. 강사들의 교원지위 회복은 이른바 신분해방이다. 현재 대학은 그들만의 카르텔로 절대 권력을 갖고 있다.”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지급, 4대보험 보장 등을 하기 위해서 각 대학이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논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동애 씨는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민주화의 문제이며, 강사들은 임금협상이 아니라 기본권 문제를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이번 합의안이 시행되면 연간 2300억이 필요하다. 2017년 현재 한국의 대학 수는 약 440개. 그렇다면 각 대학이 한 해에 감당해야 할 비용은 평균 5억여 원이다.

또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2016년 국정감사에 낸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전국 154개 사립대학 이월금은 약 7000억 원이다. 이 금액은 전년도 예산안에서 예상한 867억 원보다 약 6000억 많다.

시간강사와 비정규직 교수들의 권리를 위해 1999년부터 싸워 온 김동애 씨. 여의도 국회 앞 오래된 천막에서 그를 만났다. ⓒ정현진 기자

며칠 전 새 교육부장관에 지명된 유은혜 의원은 이 보고서에서, “예산 편성 당시 이월금과 비교해 결산 이월금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사립대학들이 예산 편성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며, “사립대학들이 수년째 등록금을 인상하지 못해 재정압박에 시달린다는 주장은 실제가 아닐 수 있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김동애 씨 역시, “대학 구성원의 추석 상여금 지급분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 때문에 재정압박을 우려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꼭 필요한 돈이라면 예산편성의 구조를 바꿔야 하는 것이지, 기존에 쓰던 돈 위에 강사지급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물론 서울의 대규모 대학과 지역 학교, 전문대학 등의 형편이 다를 수 있지만, 강사비 역시 학교 형편에 따라 편차가 크다”고 설명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대규모 대학의 시간강사 강의료는 시간당 평균 5만 9000원, 전문대학은 약 3만 원이다. 같은 등급의 최소 강의료는 약 4만 4000원과 2만 3000원이다. 이에 반해 중소규모 대학과 전문대학 최소 강의료를 보면, 각각 약 4만 5000원, 2만 원이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시간강사의 “대량해고 가능성”이었다. 교원의 책임시수와 관련되는데, 주 9시간의 책임 강의 시간을 교원이 된 강사 소수에게 몰아주고 나머지를 해고시킬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번 합의안에서는 “강사와 겸임 및 초빙 교수의 강의시간은 매주 6시간 이하를 원칙으로 하되, 초빙교원은 주 9-12시간으로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번 합의는 큰 틀의 선언. 각 대학과 강사 간 구체적 제도 확립 과정 남아”

김동애 씨는 이번 합의를 “큰 틀의 선언이며, 입장 차이를 보이던 시간강사들 사이의 화해이기도 하다”며, 일단은 만족한다고 말했다. 또 교육부까지 참여해 18번의 치열한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정부의 의지도 확인했다고 했다.

그는 현재 대학생과 학부모가 직접 나서 ‘반값 등록금’ 요구를 넘어 “등록금 폐지”운동을 시작했다며, 시간강사법의 올바른 시행,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은 그들만의 고용과 생계문제가 아니며, 앞으로 대학 민주화, 대학 교육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줄 문제라고 다시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하고, 대학민주화,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생들도 나선 만큼 더 빠른 속도로 가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무언가 해 주기를 바라고, 왜 안 해 주느냐고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싸움을 지키고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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