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자락 구비구비 넘어도는 아라리 아라리요~~
[상인숙의 여행(女幸), 여행(旅行) 3] 강원도 정선 5일장

새벽 다섯시, 서울을 출발한 봉고 차량에 몸을 맡기고 잠을 청했다. 일어나 보니 어느새 강원도 땅이다. 주변에 늘어선 산능선 주변으로 옅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정표에 표시된 '정선' 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정선 5일장을 촬영하기 위한 출장길이다.

사전 취재를 하면서 정선 5일장터에서 공연되는 '정선아리랑'에 눈길이 갔다. 취재 차 정선은 여러번 갔지만 장터에서 공연되는 '정선아리랑'을 볼 기회는 없었다.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정선 아리랑 공연을 보겠다는 욕심에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간 것 같다.

정선 5일장에 도착하니 오전 아홉시가 채 되지 않았다. 잔뜩 흐린 하늘을 이고 있던 장터 위로 가는 빗줄기가 뿌리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파라솔을 펴기 시작했다. 5일장 장터 한가운데 광장이 설치돼 있었고, 기다란 벤취도 놓여져 있다. 정선 아리랑은 열 한 시와 오후 한 시에 공연된다. 아직 정선 아리랑 공연을 하려면 두시간이나 남았다. 공연장 앞에는 할머니 두 분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두어분이 더 와서 함께 한다. 정선 아리랑 공연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한 듯 싶다.

낯선 이름의 정선 음식 '올챙이 국수'와 '콧등치기'

공연을 기다리면서 우리 일행은 광장 가장자리에 나란히 있는 한 주막의 평상에 앉았다.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하느라 우리 모두는 아침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수부꾸미와 강원도 옥수수 막걸리를 시켜놓고 앞면에 커다랗게 걸어놓은 메뉴판을 보았더니 낯선 음식 이름들이 나온다. '콧등치기'와 '올챙이 국수'.
도대체 올챙이 국수는 무얼까 궁금해 부침개를 뒤집는 주인장에게 물어보았다. 올챙이 국수의 재료는 옥수수인데, 그 모양이 올챙이를 닮았다고 이름을 그리 지었다고 한다. 옥수수로 일반 국수처럼 기다랗게 뽑기가 힘들었나보다. 주인장이 보여주는 올챙이 국수를 보니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걸 보며 꼬물꼬물 움직이는 올챙이를 연상하긴 쉽지 않았지만, 어쨋든 이곳 사람들이 그리 이름을 붙였으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강원도 산중에 자리한 정선에서 벼나 보리 등 곡식을 구하기 쉽지 않았을테고, 어디서든 잘 자라는 메밀과 옥수수가 주식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콧등치기는 뭔가요?"
내 물음에 주인 아주머니는 소리내어 웃으며 또 설명해 준다. 어쩌면 2일과 7일에 서는 정선 5일장을 찾는 외지인들이 자주 묻는 물음인지 모르겠다. 콧등치기는 메밀로 만든 국수인데, 메밀은 거칠기 때문에 국수로 만들어 삶아내서 식으면 딱딱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칼국수처럼 밀어 굵게 썬 메밀국수를 후루룩 먹으면 국수 가락이 콧등을 탁 치고 입으로 들어간다고 '콧등치기'라고 한단다. 메밀을 가늘게 뽑아 국수를 만들면 막국수가 되고, 칼국수처럼 굵게 밀어 만들면 콧등치기가 된다니 음식도 각양각색, 이름 붙여지는 것에도 이유가 있어 재미있다.

궁금증이 풀리니 시장기가 더욱 도는 듯 했다. 일행이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자리로 돌아가 수수 부꾸미 한 점을 떼어 입에 넣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수수떡 안에 팥을 넣어 함께 부쳐 만들어 낸 것이 서울에서 먹던 수수 부꾸미와 맛이 다른듯 하다.

비는 그치고 장터 안엔 어느새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어린 학생들이 현장 체험학습을 왔나보다. 장터에 어린이들이 돌아다니니 생기가 더해지는 듯 했다. 광장 한 켠에는 짚공예장이 있다. 지푸라기를 만지는 어르신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앞 쪽에는 짚신과 망태기, 채반, 멍석, 새총 등이 진열돼 있었다.


전통 짚공예 체험하며 옛문화 즐기기도

짚공예품을 만드는 분들은 정선장에서 8Km 떨어진 마을에 산다고 했다. 장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와서 짚을 재료로 물건을 만들어 팔곤한단다. 악세서리처럼 자그마하게 만들어 걸어놓은 짚신 한켤레를 집어들었다. 앙증맞다. 이것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냐니까 3시간은 족히 소요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짚신 한켤레 만드는데는 그것보다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그리 시간과 공을 들여 짚신을 삼아 신었을 것이다. 짚신을 신고 장에도 가고, 논과 밭에도 나갔을테고, 선비들은 짚신 몇 켤레를 개나리 봇짐에 꿰어차고 과거를 보러 한양에도 갔을 것이다. 문득 예전에 들은 이야기 한토막이 생각난다.

아버지와 아들이 짚신을 삼아 장에 내다 팔았는데, 아들의 짚신은 모양도
예쁘고 뒷손질도 잘해 깔끔했다. 사람들은 아들이 삼은 짚신을 보고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했다. 그런데 장날에 잘 팔리는 것은 깨끗하고 모양 좋게
만든 아들 짚신 보다 아버지가 만든 투박한 것이 더 잘 팔렸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이유를 물었으나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들은 아무리
아버지의 짚신을 보고 자기 것과 비교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기력이 다해 돌아가시게 됐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겨우 "털!" 이란 말을 한마디 하고 눈을 감았다.
그제서야 아들은 아버지 짚신의 비밀을 알게 됐다.
아버지는 짚신을 삼을 때 바닥에 빠져나오는 지푸라기의 털조차 깍아내지
않았기에, 비록 모양은 아들 것보다 못해도 오래 신을 수 있었다.
장터에 나온 사람들은 미적인 아름다움 보다 바닥에 깔린 털 때문에
더 푹신하고 오래 신을 수 있었던 아버지의 짚신을 샀던 것이다.


아버지는 요즘 말로 소비자들의 심리까지 읽고, 또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품을 생산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무엇이든 정성으로 만들면 인정받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쪼르르 들어가 짚공예 체험을 한다. 저마다 어르신 한사람 옆에 붙어 앉아 짚을 들고 가르쳐 달라고 한다. 어르신들은 성가시게 생각지 않고 물을 묻혀 짚을 꼬는 것을 가르쳐준다. 아이들은 신기해 하면서 따라하지만 쉽게 꼬여지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바닥을 한번 쓰윽 문지르면 낱가닥으로 있던 짚이 꼬여지는데 왜 안되는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계속 손 위의 짚을 부빈다.

권희현 어린이(화동초등학교 3학년)는 어느새 새끼를 꼬아 손에 들고 쪼르르 엿장수에게 달려간다. 이미 방송에도 여러번 출연해 유명세를 탄 엿장수들의 가윗소리가 흥겹다. 아이들은 엿을 입에 넣고 즐겁게 웃어댄다. 장터 분위기가 흥겹게 무르익는다. 엿장수의 공연은 2시에 있다고 했다.

드디어 아리랑 공연이 시작됐다. 이미 객석은 꽉찼고, 자리 차지를 못한 관객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표정이 진지하면서도 기대에 차 있는듯 했다. 살아오면서 숱하게 불렀던 아리랑 곡조가 아니었을까?


공연이 시작되고 연주자들이 구슬프게 곡조를 읊조리기 시작하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물레를 돌리고 길쌈을 하면서, 또는 맷돌을 돌리면서 아낙들이 부르는 아리랑 노래가 천둥처럼 내 귀를 쳤고, 눈에선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아무도 나를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눈시울 붉히는게 민망하고 가슴이 벅차 한참을 평상 위에 앉아 눈을 감고 노래를 들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물한동이를 여다 놓고서 물그림자를 보며는
촌살림 하기는 정말 원통하구나"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토담이 붉어 좋고요
앞 남산 철쭉꽃은 강산이 붉어 좋다

밥 한 냄비를 달달 볶아서 간난이 아버지 드리고
간난이하고 나하고는 저녁 굶어자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사발그릇이 깨어지면은 두 세 쪽이 나는데
삼팔선이 깨어지면은 한 덩어리로 뭉친다"


아라랑 가락과 북과 장구가 잘 어우러져 신명을 더해준다. 또다른 반주를 넣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밥상과 장독, 바가지 등이었다. 이 땅의 아낙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노동의 도구들이 그대로 악기가 되었다. 물동이에 물의 양을 다르게 받아 바가지를 엎어 막대기로 두드린다. 밥상이든 찻상이든 상을 앞에 놓고 장단을 맞추면서 노래를 부르며 여인네은 삶에서 오는 서러움을 벗어던졌을까.

슬픔도 잠시, 어깨 장단으로 삶의 고단함 털어내는 힘-아리랑

때로는 구슬프게, 때로는 신나는 장단에 맞춰 경쾌하게 소리를 내는 여인네들의 연주.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고, 서러움과 서러움이 부딪혀 하늘로 날아오르고 그 위로 잦아드는 구슬프고도 아름다운 아리랑 가락. 어찌 고달프고 서러운 삶이 옛날에만 있었겠는가. 현실에 발딛고 서 있는 우리네 삶도 아리랑 가락 속에 녹아 절절히 흐르는 듯하다.

참 신기하다. 서럽고 서러운 가락과 뒤섞여 흥겨운 가락이 쏟아지고 또다시 슬픔으로 잦아드는 곡조가 되풀이 될수록 어깨가 들썩거린다. 발끝은 나도 모르게 장단을 맞추며 가슴 속으로 열기가 치솟는다. 슬픔도 잠시, 이내 어깨 장단으로 삶의 고단함을 털어내는 힘, 그것이 민족의 가락, 아리랑의 힘이 아닐까.

산골 강원도의 척박한 삶 때문에 구슬프지만, 그 척박함을 이기고 삶의 터전에 뿌리 내리기 위해 노동요로 시작된 정선 아리랑. 그 곡조 속에는 이 지역 민생의 한이 담기고, 정이 담겨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선선 열차 안에서도 아리랑을 부르며 서로 일상을 나누었고, 돌이나 회갑 등 동네 잔치가 있어도 삼삼오오 모여 아리랑 곡조로 안부와 일상을 나누었다니 정선 아리랑이 가진 힘은 어쩌면 민초들의 삶의 뿌리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나는 놀이판에서 한바탕 놀고난듯 상쾌하다. 때마침 흐린 하늘이 걷히고 햇살이 장터 안 공연장으로 쏟아진다. 정선 아리랑 공연이 끝나자 곧이어 떡매치기 행사가 벌어진다. 떡매치기를 하면 인절미를 준다기에 일행 중 한명이 떡매를 친다. 동료의 땀으로 얻은 고소한 인절미를 먹으며 우리는 다음 촬영지, 경상도 춘양 5일장으로 또 일정을 잡아 떠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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