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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백주년의 성찰과 과제’종교개혁연대 첫 세미나 시작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종교인들이 각 종교와 3.1운동의 연관을 살펴보며 맨 처음에 천주교를 주제로 다뤘다.

3.1운동 백주년 종교개혁연대는 23일 서울 정동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3.1운동 백주년의 성찰과 과제’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열었다. 총 5차례로 기획된 세미나는 이날 천주교를 시작으로 9월에 불교, 10월 유교, 11월 천도교, 12월에는 개신교에서 발제를 맡아 진행된다.

이날, 최우혁 서강대 강사가 ‘3.1만세운동과 한국천주교의 여성들’,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이 “한국천주교회와 공론장의 변동-3.1운동 시기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종교학과 신학 연구자인 최우혁 씨는 “묻혀 있던 여성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활동을 발굴하는 것은 역사의 한 축을 복원하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발제 취지를 밝혔다.

그는 “조선 천주교의 시작은 성인 남성들이 주도했지만, 여성들과 평민, 천민의 개종자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인간 누구나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인간관계 역시 평등하다는 교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천주교는 이승훈이 중국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1784년에 다른 한국인들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는 이 시기 여성들이 천주교의 사상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실천한 것은 “개화기 이전에 싹튼 근대성”이라고 봤다.

그는 또한 “국가 앞에는 종교도 없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안중근의 집안을 소개하면서 천주교 신앙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여성들의 사례를 말했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 마리아는 당시 한국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아내 김 베로니카는 시어머니와 함께 활동했다. 그의 딸 안성녀는 비밀리에 독립활동을 했고, 동생의 부인 이정서는 친정의 자금으로 군인을 양성했다.

최 씨는 안중근 집안 여성들의 신앙에 기반한 독립활동이 매우 독보적인 사례이지만 수많은 천주교의 여성이 이름을 묻고 살아왔기 때문에 여성 독립운동가를 역사적으로 발굴해야 하고, 신학적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독립운동 당시에 여성들이 의지한 성모신심과 신앙의 성격을 밝히는 것이 앞으로 백년을 위한 중요한 반성의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은 발제에 앞서 공공성의 개념을 “오늘날 시민들이 어떠한 협박이나 위협에서 벗어나 서로 비판적인 논의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적인 삶이자 이론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도출되는 그 무엇”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천주교가 일제 강점기 때 대다수 민중의 요구였던 반봉건, 반제국주의 운동의 공론장에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은, 조선천주교회가 독립운동을 포함한 정치적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취한 때문인데, 당시 조선 천주교를 주도했던 파리외방전교회의 보수적 선교정책에 “주교를 정점으로 조직된 천주교의 중앙집권적 위계구조의 특성이 결합된 데 원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안중근(토마스, 1879-1910) (사진 출처 = wikipedia)

그에 따르면 3.1운동에 평신도들이 적지 않게 참여했는데도 파리외방전교회의 뮈텔 주교와 드망즈 주교는 만세운동 참가를 일체 금지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3.1운동에 적극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이 공소신자들이었는데 이는 성직자들의 영향력이 본당보다 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교회가 마땅히 민족을 위해 봉사를 다해야 했음에도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권 강탈 이후 10년간 교회의 신자비율이 2.1퍼센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1974년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결성되어, 이러한 방향 전환의 움직임을 고무하고 적절한 신학적 자원을 제공”하면서 “유기적 지식인의 기능”을 수행한 사제들의 역할이 천주교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한국천주교회는 해방 뒤에도 민족문제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남북이 대치하게 만드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다가 이승만 독재정권에 후반에 이르러 정권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제단 결성 이후 천주교 사회운동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였고, 본격적인 천주교의 사회참여”가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천주교의 사회적 공신력과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1970년대 중반 이후 신자가 급격히 늘었고, 이 과정에서 천주교회의 사회적 힘도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공공성을 잃었던 시기에 다른 목소리를 냈던 이들은 바로 하위 성직자와 평신도였다고 강조했다.

발제를 마무리하며 경동현 연구실장은 종교개혁연대의 실천 방향으로 “3.1운동 100주년의 현재적 의미는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이고 평화체제로 가기 위한 종교계의 협력과 공동실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종교계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회복에 앞서 종교적폐청산을 위한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는 자본주의에 맞서지 못하고 포섭되어 부유함을 선택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종교개혁 없이는 사회개혁은 불가능”하므로 평신도를 중심으로 깨어 있는 사제들과 함께 종교의 공공성 회복 운동에 전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세미나는 9월 20일에 불교의 옥봉연(종교와젠더 연구소),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씨가 발제를 맡아 진행될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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