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ㅣ박찬희, 한순구ㅣ경문사(2005)

힘도 세다, 똑똑하다, 게다가 돈도 많고, 든든한 배경, 소위 ‘빽’도 있고, 얼굴도 반반하고, 재주도 많다, 이런 사람은 게임에서 항상 이깁니다. 전략이고 뭐고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죠. 패배를 모르는 완벽한 인간은 싸구려 할리우드 영화 속에나 있는 법입니다. 정맥과 동맥에 피가 도는, 현실의 인간, 저자거리의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조금은 부실할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이렇게 부실한 인간들이라고 해서 항상 게임에 진다고 하면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닐 거예요. 미꾸라지들도 용과 싸워 한 번 이겨 봐야 살 맛 나는 세상 아니겠어요.

싸움의 기술 

그렇다면 어떻게 불리한 게임에서도 이길 수 있을까요. 바로 좋은 전략을 짜면 될 것입니다. 저쪽에서 하나를 생각하면 이쪽에선 둘을 생각하면 되고, 저쪽에서 둘을 생각하면 이쪽에선 열을 생각하면 되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저쪽이 생각하지도 못할 예상외의 수를 두면 됩니다. 그것도 안 되면 소위 ‘무데뽀’로 가보는 거죠. 그것도 안 통하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배수진(背水陣)’을 치면, 저쪽에선 기겁을 하고 꽁지를 내릴 수도 있겠죠. 바로 이런 것이 게임의 이론이고, 싸움의 기술입니다.

확실히 밟아놓아야 될 상황에서 적당히 밟아 놓으면 적은 다시 부활해서 ‘나’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살려 보낸 관우는 덕에 있어서는 영웅일지 몰라도 조조의 끝장을 보고자 했던 제갈량보다는 전략에 있어서는 한수 아래죠. 동정심이나 연민은 윤리학자들에게는 금과옥조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승리를 위해 매진하는 자에게 그것은 금기에 속합니다. 마음을 모질게 먹지 않으면 눈앞의 목표물을 놓칠 수가 있죠. 냉정하라. 이것이 게임의 이론이 가르치는 법칙입니다.  

치킨게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이 말하는 게임이론이란, 나의 의사결정이 상대방에 영향을 주는 전략적인 상황에서 다수의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떻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것인지를 연구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입니다.

나의 의사결정이 상대방에 영향을 주는 상황은 쉽게 말해 ‘홀짝놀이’를 하는 상황이죠. 장기를 두거나 바둑을 두는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수를 두는가에 상관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응수하다가는 내 밑천을 다 까먹고 맙니다. 저쪽에서 어떤 수를 둘지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겠죠. 이렇게 상대방의 수에 따라 나의 수를 결정해야 하는 ‘전략적 상황’이 바로 ‘나의 의사결정이 상대방에 영향을 주는 상황’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볼까요.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이 이른바 ‘치킨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입니다.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치킨으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됩니다. 즉, 어느 한 쪽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게임이 바로 치킨게임입니다.

이 게임에서 확실히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토머스 쎌링이라는 경제학자죠. 그는 말합니다. “상대 운전자가 훤히 볼 수 있는 곳에서 당신의 핸들을 뽑아 창밖으로 던져라.” 이쪽에서 죽음을 각오했다면 상대방은 살기 위해서라면 핸들을 꺾을 수밖에 없겠죠. 이렇게 필승의 전략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게임이론입니다.

사자와 농부

‘게임의 법칙’을 말하는 전략의 고수들은 항상 냉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남의 사정도 봐주다가는 오히려 화를 입는다고 충고합니다. 전략의 고수들은 내가 잡아먹지 않으면, 반대로 잡아먹히고 만다는 ‘밀림의 법칙’을 신봉합니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철저히 계산적입니다. 어설픈 인간적 신뢰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죠. 게임이론의 수읽기에서 어설픈 믿음은 망하는 지름길이며, 냉정하고 처절한 응징과 이에 대한 평판이 나의 생존과 이득을 보장합니다.

이솝우화의 <사자와 농부> 이야기를 게임 이론적으로 분석해볼까요.

인간 아가씨를 사랑했던 수사자가 농부에게 찾아가 딸과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사자의 이빨과 발톱에 딸이 상처 입을 것이 걱정된다고 하였고, 이에 사자는 이빨과 발톱을 모두 뽑았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사자를 몽둥이로 패서 쫓아 버렸다는 줄거리가 바로 <사자와 농부>의 이야기죠.

게임이론가인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의 저자는 이 우화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사자는 이빨을 뽑거나 안 뽑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고, 사자의 선택에 따라 농부도 각각 수락과 거절의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행동을 하기 전에 사자는 먼저 각각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봤어야 한다. 만약 사자가 이빨을 뽑지 않고 계속 위협하여 청혼을 하였다면 농부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딸을 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각각의 상황에서 상대가 정말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미리 예상하여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을 게임이론에서는 ‘백워드 인덕션(Backward Induction)’이라고 한다. 즉, 현재에서 미래의 순으로 생각해나가지 말고, 미래의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한 후 현재의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역순의 사고방법이다.”

‘이기적인 인간’을 넘어서 냉정한 인간이 되라고..

게임 이론가들은 자신의 이빨과 발톱에 딸이 상처 입을 것을 걱정하여, 자신의 이빨과 발톱을 모두 뽑은 사자의 이타주의적 행동을 매우 비전략적인 행동이라고 분석합니다.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계속 으르렁거리면서 협박하라는 주문이죠. 이렇게 게임 이론은 매우 이기적인 인간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유주의 경제학의 출발점입니다. 경제학의 시조라는 아담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업자,양조업자,제빵업자들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 이익추구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서 자신의 이익은 물론 사회나 국가전체의 이익도 증대시킨다는 것이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본 가정이죠. 그러나 게임 이론가들은 ‘이기적인 인간’을 넘어서 냉정한 인간을 요구합니다. 심지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화를 들어, ‘믿어라! 그러면 망할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그 경고의 골자를 요약해볼까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어린 아들인 히데요리를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난공불락의 지형인 오사카성에 재화, 식량, 군대를 마련해 놓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히데요리는 오사카성에서 도쿠가와 측의 공격을 잘 막아냈지만, 식량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도쿠가와는 히데요리에게 난공불락의 주요인이었던 해자(垓字)를 메우는 조건으로 휴전을 제안한다. 히데요리는 앞의 사자처럼 제안을 받아들였고, 도쿠가와는 다시 오사카 성으로 진격하여 해자가 없어 무력해진 성을 함락시키고 히데요리를 죽인다.

상대방이 어떻게 수를 둘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즉 전략이 필요한 상황에서 믿음이라는 ‘인격적 선택’을 했을 때는 철저히 응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충고입니다.

악명(惡名) 효과

경제학의 한 분야인 게임 이론을 전공한 박찬희, 한순구 교수는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일부러 나쁜 평판을 쌓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라고 충고하기까지 합니다. 이른바 ‘악명(惡名) 효과’가 그것이죠. 이 전략은 자신이 객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특히 써 볼만한 전략입니다. 불리한 상황일수록 상대에게 자신이 예측불허이며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필자는 이를 ‘또라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책의 부제도 ‘또라이 게임이론’이다.)라는 인상을 주어야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미국이 북한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도 북한이 ‘또라이’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북한은 예측불허의 행보를 보이는가 하면 여차하면 ‘너 죽고 나 죽자’며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합니다. 미국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실제 상황에서 상대가 악명 효과를 활용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스스로가 상대보다 더한 ‘막가파식’ 악당이 되면 됩니다. 문제는 둘 다 이판사판으로 맞서면 결국엔 한 명이 고개를 숙이거나 둘 다 파국을 맞게 된다는 것이죠. 패배를 불사하는 두 사람이 맞붙는 치킨 게임의 결과를 상상해보세요. 붉은 피만 낭자할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요.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럼 협동은..

책의 저자들은 인간이 협동하는 이유는 배신의 경우에 따르는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보복 또는 복수를 아끼지 말고 마음껏 남발하는 것이 협동을 굳건히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합니다. 보복을 하지 않으면 상대는 이를 나의 약점으로 알고 자주 배반하는 행위를 할 것이므로 결국 담합 또는 협동이 깨지게 된다는 거죠. 철저히 보복하라. 이것이 게임이론이 주는 교훈입니다.

이쯤 되면 게임이론이 ‘피도 눈물도 없는’, 오직 승부에만 집착하는 냉혹한 이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모든 관계가 인간적인 관계로 묶이는 것 또한 위험한 것일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착한 마음’과 ‘서로에 대한 애정’은 ‘상호 이익’이라는 기초 위에 더해져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무턱대고 사람을 좋게만 믿고 행동하다가는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마저도 지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저자들은 경제학자답게 “적어도 사회현실을 분석하고 판단함에 있어서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 혹은 합리적 분석이 골격을 이루고 여기에 인간적․사회관계적 요소가 더해지는 것이 낫다는 것이 필자들의 신념이다.”라고 말합니다.

고속도로를 시공하는 중에 선사시대 유적지가 나타났다고 가정해볼까요. 아마도 공사장 현장감독은 십중팔구 공사강행을 요구하겠죠. 도로개통을 바라는 지역주민들도 절반 이상이 공사강행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자재 확보와 원활한 물류이동을 바라는 자본가들도 도로개통을 바라겠죠. 그러나 도로의 시공을 반대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이나 자본가들은 경제적 이윤의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도로의 강행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오직 이윤의 확보라는 차원에서의 합리성은 합리성에 대한 매우 협소한 해석일 뿐입니다. 효율성, 경제성, 수익성이라는 도구적 차원에서만 합리성을 해석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는 것이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생각입니다. 하버마스라면 이런 경우에 모든 사람들이 도로개통을 두고 서로 의견을 교환해서 가장 적절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으로서 ‘의사소통의 합리성’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합리성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의사소통의 합리성

경제학이 말하는 합리성은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효율성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협소하게 정의된 합리성은 자칫하면 공정해야할 게임에서 반칙을 유도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비롯된 멜라민 사태만 해도 그렇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낼 수 있다는 합리성의 개념에서 보자면 반칙을 써도 무방하다는 것이 비뚤어진 자본가들의 논리일지도 모릅니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인간을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하는 보다 큰 의미로서의 합리성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무엇이 진정한 합리성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사례 하나를 음미해보죠.

백신 개발자 소크(Jonas Edward Salk) 박사가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성공하자 수많은 제약회사들이 특허를 양도해달라고 부추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태양에 특허를 신청할 수 없다.”라고 주위의 권유를 물리쳤습니다. 지구상에서 소아마비를 ‘박멸’시킨 것은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제약회사의 합리성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생각하는 ‘비전략적인 마음’. 바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김보일 -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뒤 모기업 홍보실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온라인 동호회 '시사랑',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 '시네마천국' 등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지금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코드로 보는 영화' '세상의 창' '시로 읽는 세계' 등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한국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선정위원, 리더스가이드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배문고 국어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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