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로봇 (이미지 출처 = Pixnio)

기도하라는 로봇

- 닐숨 박춘식

 

머지않아 - 명동성당 입구 신앙 로봇 전시 - 기도 로봇이 가득하다 - 할머니 엄마 강아지 천사 비둘기 교종 수녀 신부 주교 등등 - 만만한 강아지를 안고 오는데 - 아침기도는 일어나기 전부터 시작해야 하고 - 하루 빛살기도는 3000번 이상 바쳐야지 - 내내 잔소리 - 집에 도착 - 거실에 들어서자 - 벽의 십자고상을 조금 더 높이고 - 잔소리가 많아 옷장 안에 가두니까 - 본당 신부에게 일러준다며 고함친다 - 어떻게 일러주느냐고 하니 - 자기 머리 안에는 신부 주교 수녀 이름 성격 친구 전화 취미 자동차 번호 등등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 두 팔 번쩍 들어 - 항복이라 하니 - 하느님께서 내려보고 계시는데 항복이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

 

스위치를 끄고 구석으로 밀치며, 후유 하니까

신앙에는 스위치가 없다고 종알종알 앞으로 걸어온다

기도 로봇 제조 규정을 새로 만들어야지 중얼거리니까

신부 주교가 만든 것을 함부로 고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강아지가 큰 소리로 기도한다

주님, 이 교우를 용서해 주십시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아이고 골치야, 머리를 흔드니까

강아지가 미리 알고 놀랍게 두통약을 들고 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8월 6일 월요일)

 

무더위가 비정상으로 기록되는 이때, 한번 웃으시라고 이런 엉뚱한 글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앞날 준비를 잘하시라고 적은 글입니다. 온갖 로봇이 가득해지는 날, 신앙인은 각종 최첨단 기계에 대하여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지 준비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자동차에 도착지를 입력해 놓고, 차 안에서 고스톱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성경을 읽는 시간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가상 세계를 여러 분야로 체험시키며 사람의 정신을 자연 세계와 초자연세계 구분이나 한계를 혼돈시킬 때, 신앙의 영역을 어떻게 지키며 가르쳐야 할는지 걱정입니다. 성경의 많은 내용들을 그냥 흥미 위주의 오락물로 편집할 경우, 교회 입장에서, 본래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될 위험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미리 연구하여, 신앙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는 방법 등등 많이 생각하고 있으리라 여깁니다. 벌써 준비하고 계시리라 여깁니다만, 세상이 이만큼 편리해지면 그만큼 어려움도 있다는 것을 예측하여, 잔소리하거나 간섭하는 로봇이 아니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걱정하면서 노력하는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