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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족발집에서[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88]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면 그냥 풀리지 않은 채로 두는 것도 좋다. 왜냐하면 아무리 발버둥 치며 답을 구하려 해 봤자 똑같은 벽에 부딪힐 게 뻔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벽에 머리를 꽝꽝 찧다가 내가 왜 그랬나조차 잊어버릴 즈음 어떤 사람이 나타난다. 물론 그 사람은 내 고민을 모르고, 자신조차 어떤 고민으로 머리를 벽에 계속 찧고 있는 지경인데, 그가 하는 말을 입 벌리고 듣다 어느 순간 어, 하고 내 앞의 어떤 벽이 스르륵 허물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가 내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 준 것인데, 그것은 꼭 문제를 푸는 열쇠라고는 할 수 없고, 어떤 때는 문제가 문제 아니었음을 알게 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공부를 잘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간 언니가 있다. 그 언니는 대학교 때 같은 기숙사생이었다. 학교가 방학을 맞으면 많은 학생들이 본가로 내려가고 방학 동안 기숙사는 텅텅 비게 되는데, 그럼 계절학기를 수강하거나 밀린 학과 공부 등의 이유로 기숙사에 남아 있는 학생들과 방학 동안에만 기숙사를 쓰고자 신청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 배정을 새로이 하게 된다. 그때 같은 방을 쓰게 된, 말하자면 우리는 여름방학 한정 룸메이트로 처음 만났다. 새로 배정받은 방으로 내 짐을 옮겨 놓고, 같은 방을 쓰게 된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 하며 책상 앞에 앉아 있자니, 어떤 사람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목례를 하고 일층 침대로 몸을 날리듯 뛰어들었다. 아마도 격렬한 운동을 하고 오는 길인지 그이는 누운 채로 가슴을 들썩이며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그것이 내가 만난 언니의 첫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후로도 그런 언니의 모습을 자주 목격했는데, 언니는 운동중독이었던 것이다. 

저녁이면 언니는 기숙사생도 몇몇을 학교 대운동장으로 이끌었다. 나 포함 예닐곱 명쯤 되는 고정멤버는 언니의 시범에 따라 스트레칭을 하고 운동장을 보통 10바퀴쯤 돌았다. 잡담도 하지 않고 후아후아 규칙적인 들숨날숨에만 집중하며 각자 외롭게 심신을 단련하는 평범한 여대생 무리가 그 당시 세상에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비장한 러너들’도 기숙사 문이 잠기는 이슥한 밤이 되면 개구멍을 통해 야참을 배달시켜 먹곤 했으니 매사 올바르지만은 않던 시절이었다. 너무 옛날이야긴가.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거의 20여 년 전의 일이니까 그 뒤에 흐른 세월도 딱 그만큼이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그때 언니가 나보다 2살이 많았던 까닭에 지금까지 나는 언니보다 늘 2살만큼 어린 삶을 살고 있으니 세월은 공평하게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때 겨우 스물두셋이었던 언니는 내가 동경할 만한 어떤 아우라를 뿜고 있었는데,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어른스러움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 특유의 독립적 감각이 그것이었다. 언니는 기숙사 생활도 예사롭지 않게 가꾸곤 했는데.... 언니의 방이 있는 기숙사 2층의 공용 홀은 수지침 동아리 회원이었던 언니가 놓아 준 침을 맞고 드러누워 있는 어중간하게 아픈 환자들(주로 체한 것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수다소리로 시끌벅적했었고 언니가 침과 병행하여 피우는 뜸 연기로 늘 자욱했었다. 그 모습은 수상한 불법의료행위의 현장이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언니의 아우라와 사감선생님의 묵인으로(가끔은 사감선생님도 공용 홀의 소파에 드러누워 뜸 연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그 당시는 아무 문제없는 기숙사의 평범한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방학 전의 거창한 계획과 포부와 달리 아무것도 이루어 낸 것 없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원래의 방으로 복귀한 뒤에도 나는 종종 언니 방에 놀러 갔다.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는데, 그렇다고 우리 관계는 보통의 친밀한 사이라고 할 때의 떼려야 뗄 수 없는, 매우 끈끈한 사이라고 보기에는 틈이 많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우리는 마치 바람이 부는 것처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다시 만나곤 했고 때에 따라 각자가 부는 방향대로 멀리까지 나갔고 서로에게 자유롭게 머물다 또 흘러갔다. 중앙도서관 옆구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언니의 모습은 참으로 싱그러웠는데, 두 살 아래의 나도 언니 못지않게 싱그러웠을 것이라 짐작하는 그 먼 옛날. 공부 잘하는 사람의 말로가 흔히 그렇듯 언니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의 패션-반바지에 티, 옆구리에 책을 꽂고 다니는 프레피룩-을 즐기더니 급기야 대학원 과정을 마친 뒤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말았다. 그때가 또 10여 년 전 일이다.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우리는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 가끔 연락을 할 뿐이었지만, 언제 또 만날 수 있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할 때마다 우리 사이에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족발 (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랬는데 그 언니가 얼마 전 한국에 잠깐 쉬러 왔다며 얼굴을 보자고 했다. 소고기를 먹어도 시원찮을 판에 언니는 칼국수와 미니족발이 그립다고 했고, 덕분에 우리는 소고기 대신에 칼국수와 족발을 앞에 두고 회포를 풀게 되었다. 미국 어느 연구소에서 백신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언니는 예의 프레피룩을 입고 나타났는데 조금 야위긴 했지만 분위기는 예전 그대로였다. 언니는 거기 있는 못된 미국 애들 욕을 하다가, 그곳의 ‘blue sky’가 얼마나 쨍한 파란 색깔인지 열변을 토했고, 문득 내게 ‘오랜만에 일하니 어때?’ 하고 안부를 물었다. 나는 그저 그런 얼굴로 괜찮다고 말했다. 애 키우는 것보다는 일이 쉬운 것 같다고. 요즘에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에 늘 하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언니도 대뜸 미국에서 하고 있는 일 따위는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하지 않아도 그만이야라고. 어째서인데 하고 따져 묻기도 전에 언니는 말을 이었다. “처음엔 나도 일이 재미있었어, 성취감도 느꼈고. 그런데 이게 계속 하다 보니까 아닌 거야. 어느 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인생 전체에 놓고 보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잖아? 꼭 내가 해야 할 일은 더더욱 아니고. 지금 나는 일에서 대단한 의미를 찾지 않아. 그냥 하는 거지.” 

나는 언니가 오랜 외국생활에 지쳐 이제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려나 보다 싶어 순간 긴장했다. 하지만 언니는 여유로이 미니족발을 뜯으며 ‘이 족발 맛 그대로구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는다. 그제야 나는 원래 언니가 나랑 이런 식의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였다는 것이 생각났다. 세월이 흘러 변한 건 언니가 아니라 일상의 편견들과 타인의 시선에 맞춰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나였던 것이다.

“맞아, 언니. 나도 동감이야. 일이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그저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서 하루하루 살기 바쁘지. 삶의 의미 따위는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고. 궁금해 할 만한 시간도 없어요. 그러니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어디 관심이나 있겠어? 다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살아가는 거야, 그냥. 저기 봐, 지금 칼국수랑 족발 먹고 우루루 나가는 사람들도 다들 그러지 않겠어.” 캬. 얼마든지 시니컬해질 수 있지. 제멋대로 남을 비판하면서 나는 아닌 것처럼 굴기는 무척 쉽지.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결국 우리는 모두 늙고 죽을 것이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지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이 허무해지고 만다는 점에서는 너무나 공평해서 신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세상이 결국엔 허무하다 해서 현재 우리 삶도 의미 없다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나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자신을 단련시켜 나가는 언니 인생이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때 족발 뼈에 붙은 꼬들꼬들한 살점을 야무지게 뜯던 언니도 무슨 생각이 났는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런데, 혜율아, 일이야 안 해도 그만이라지만, 아이 키우는 건 중요한 것 같다. 너는 그래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내 생각은 그렇네.” 언니는 아이 셋을 낳고 고군분투하는 나를 충분히 위로해 주었다.

“으응, 그런가. 아이 키우는 건 중요하지.... 그런데 참 힘들어. 그냥 걱정이 돼. 이런저런 구체적인 걱정뿐 아니라,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는 걱정, 정체 모를 걱정을 늘 하고 사는 것 같아서.” 나는 언니 얼굴을 쳐다보았다. 언니가 뭐라고 말할까. 언니는 단번에 그러지 말라고 했다. 걱정은 아무래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 않냐고.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상대에 따라 그 말이 절절해진다. 말에 힘이 실린다. 걱정, 이제 하지 말아야지. 언니 말대로 걱정이란 거의 모두 정말 쓸데가 없어. 

“그런데 언니는 거기서 주말에 뭘 해? 여전히 운동 중독이야?”하고 물으니
“주말에는 그냥 연구소 나가서 일하지. 운동은 전혀 안 하고. 대신 건강은 영양제로 챙긴다.”
“아, 그래? 근데 무슨 주말에도 일이야? 일 쓸데없다 해 놓고선.”
“할 일이 없으니까.”
“아....”

그리고 언니는 고민이 있는지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근데, 나 예전에는 참 잘 잤는데, 요새는 잠을 잘 못 자. 불면증이야.”
“아니, 왜? 잠을 왜 못 자?”
“걱정 때문에....”
“걱정? ....나 보곤 걱정하지 말라며?”
“그러게. 늘 걱정이 문제야. 걱정을 안 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게 참 안 돼. 후후.”
“크큭.... 크하하하.”
“푸하하하하.”

우리는 동시에 웃고 말았다. 비록 아무 결론 없고 해결책 없어도 괜찮았다. 우리는 일을 싫어하며 일을 하고, 걱정을 경계하면서도 걱정을 하고 산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배가 부른 우리는 남들처럼 우루루 칼국수 집을 나서면서 앞으로는 좀 더 연락을 자주하며 지내자고 말했다. 그리고 언니는 얼마 뒤 미국으로 떠났는데 우리는 그때 헤어지고 한 달이 다 되도록 지금껏 서로 아무 말이 없는 중이다. 

후식 ⓒ김혜율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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