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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내가 할게. 그러니 너는 ‘예술’을 해-예술과 예수

 

   

일주일간의 무서운 고민을 끝내고 나를 포함한 8명의 졸업준비생들은 각자 계획한 프로젝트에 맞는 장소 결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졸업작품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들은 7주 후에 있을 전시를 앞두고 마지막 프로젝트 작품에 힘을 쏟아야 했다.

지름이 족히 10미터는 됨직한 동그란 땅, 그 위에 세워진 원형 가건물이 내게 주어졌다. 프로젝트의 주제나 재료도 고민해야 할 일이었지만, 설치작품을 하려는 나에게 제일 중요한건 먼저 공간을 제대로 읽어내는 일이었다. 작품이 들어설 공간에 아름다운 작품이 놓여지건 보기 흉한 작품이 놓여지건 어쨌든 공간과 같은 울림을 내는 것이어야 한다.

골치 아픈 작품으로 20세기 미술가들을 울렸던 마르셀 뒤샹이나 화장실에서 남자들의 변기를 떼어다 전혀 다른 공간인 갤러리에 갖다 놓을 일이었다. 한 세기 지난 지금의 나는 다른 입장에서 공간을 이해하고, 공간과 작품을 말 그대로 동등하게 대하리라 부푼 꿈을 꾸며 몇일을 가건물 주변에서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건물 밖을 따라 뱅뱅 돌기를 수십 번, 안팎을 들락날락거리며 안테나를 세워 온갖 소리와 냄새를 감지해보기도 한다. 이 공간에는 어떤 작품이 필요한지, 내가 생각하는 주제와 어느 지점에서 공간이 만나게 될지, 서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진단하고 타협하기를 시도해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몽골리안의 양모 천막집을 닮은 이곳은 안에 서 있으면 어지럼증을 느끼게 할 뿐, 나를 편안히 작업으로 이끌기는커녕 오히려 밀어내는 것이었다. 너무 조용하고 둥글었으며, 한낮 햇빛은 불투명 플라스틱 지붕을 뚫고 한없이 쏟아져 내렸고, 땅바닥은 콩크리트 마냥 단단히 말라붙어 있었다.

어느 작가처럼 통째로 건물을 포장해버리지 않고선 수가 없겠다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다.
일주일 후, 이 공간은 학교와 마을 재활용 센터, 인근 농장에서 모아들인 작품 재료들로 넘쳐났다. 산더미 같은 헌옷과 쓰던 천들, 100그루가 넘는 긴 나무 더미들. 넓은 공간에 대한 부담감과 작업할 수 있는 날이 몇 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에 좋은 작품을 하겠다는 욕심까지 보태져 밖에서 모아들이는 재료는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어쨌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섰고 도와줄 수 있는 친구들도 불러 모았다. 공장 작업장같이 되어버린 둥근 건물은 날이 갈수록 사람과 재료와 작업에서 나오는 쓰레기로 뒤덮혀 갔다. 이전에 공간을 채웠던 부담스런 정적은 수다소리에 쫒겨 났고, 말라붙은 땅은 나뭇가지로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루하루를 보내며 내 머리 속과 마음도 수많은 아이디어와 걱정, 피곤으로 범벅이 되었다. 어떻게든 생각의 가지를 쳐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모든 일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판이었다.

   

결국 이런 게 예술이었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문가에 힘 빠진 몸을 기대고 초점 없는 눈으로 헝클어진 작업장 안을 내려다보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결국 이런 게 예술이었단 말인가?’. 4년간 문학을 공부하고, 석사과정으로 현대미술사를 전공했고, 그걸로도 모자라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돌아다녔었다. 예술이 뭔지 그래도 모르겠어서 영국까지 와서 3년을 또 고생했는데 이 놈의 질문은 끝날 줄을 모른다.

바쁜 와중에 별 도움 안 되는 생각이라며, 그리고 원래 답도 없는 것이라며 혼자 속삭이고는 당장 급하게 작업을 해야 할 넓은 지붕으로 다시 눈을 돌린다. 저 지붕을 어느 세월에 검은 비닐로 다 덮어 씌워 이 공간을 어둡게 만든단 말인가. 너무 밝은 내부를 어둡게 만들고 싶었던 나는 지붕 전체에 검은 비닐을 씌우겠다는 만만치 않은 일거리를 두고 다시 힘이 빠진다.

새가 날아 들어왔는지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뭐하니?”... 할아버지 선생님이 나타나 묻는다. 나는 지붕을 다 덮어 버릴 거라며 검은 비닐 얘기를 꺼내고는 그런데 이 공간을 어둡게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하겠느냐며 그간 쌓인 피로를 그에게 풀어낸다. 그러나 작품 때문에 복잡한 내 심경은 안중에도 없는지 그는 대형 비닐은 이러저러하게 구하면 되겠고, 지붕 밑둥은 이렇게 마감하고, 바람과 비가 자주 오니 그건 저렇게 처리하자는 둥 온통 비닐 얘기 뿐이다. 아, 예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 알아주는 이가 이렇게 없을까. 나는 속으로 한탄을 한다.

그새 말을 다 마친 할아버지는 뒤돌아 서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지막 말을 던지고 사라진다. “언제든 필요하면 부르기만 해. ‘일’은 내가 할게. 그러니 너는 ‘예술’을 해.”

   

‘일’은 내가 할게. 그러니 너는 ‘예술’을 해

사실이 그랬다. 3년간 그에게 수업을 받아왔지만 한 번도 그가 작품하는 모습을 본 일이 없었다. 굽은 등으로 항상 돌을 나르거나 나무를 패고 있었고, 물건을 실어 나르느라 운전을 하거나 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었다. “왜 예술을 하시지 않나요?”

사람들이 내게 물어왔다. 어떤 작품을 만들 건지, 왜 이런 재료를 선택한 것인지. 그러나 대답하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작품에 대한 선명한 구상이 있었지만, 그렇게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그건 이 공간이 정해진 시간부터 계속 변했고, 나는 도통 그 끝이 어떻게 끝날지 예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몇 주가 지나면 끝나리란 것만 알뿐, 난 이 공간과 함께 어디로 가는 건지, 작품을 하는 건지 놀이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고 그저 뭔가를 따라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플라스틱 지붕에 잔 나뭇가지와 잎들이 떨어져 우박소리를 냈고, 열린 문 사이로는 새들이 걸어 들어와 조용히 몇 분을 산책하다 돌아나가곤 했다. 어지럽게 동그랗던 원형 바닥과 벽은 묘한 기운을 내뿜으며 오브제를 위한 완벽한 무대가 되어갔다.

   

이상한 숲

5주 후, 발에 치여 넘어질 정도로 쌓였던 나뭇가지들의 반은 버려졌다. 모아온 옷가지들 대부분은 다시 재활용센터에 넘겨졌고, 땅바닥에 누워있던 나무들은 헌옷과 천으로 옷을 해 입고 딱딱한 땅에 새로운 나무로 심겨졌다. 그리고 밖에서 날아 들어오는 새들이 이상한 나무들과 어울리며 이상한 숲을 만들어냈다. 불투명한 지붕에선 바닥 구석구석까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두 주 지나면 있을 졸업식 때 졸업생들 각자가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를 말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두 주가 지나기 전에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웹진에 신학이 아닌 예술에 대한 글을 올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예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운 좋게도 하나의 대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예술과 예수. 이 둘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가.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인내로 자기를 침묵시키고, 대신 그 공간에 타자를 초대하여, 타자가 자기 목소리를 찾아 스스로 말하도록 하게 하는 일. 자신을 뒤로 물리고, 죽음에 가까운 침묵으로 소리를 낮추어 타자가 타자되도록 놓아버리는 일. 그렇게 해서 끝내는 자신이 타자가 되어버리는 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

나는 이제 예수를 빼고 예술을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기사제공: ⓒ 웹진 '제3시대'>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김현화 (영국에서 미술치료 공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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