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고고학 考古學


      이 글의 부제를 ‘죽음의 고고학考古學’이라 붙였다. 푸코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고고학’은 푸코가 그의 초기 저작들에서 관심했던 사항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었던 <광기의 역사>, 그를 세상에 알린 <말과 사물>, 그리고 <지식의 고고학>에서 푸코는 다양한 지식들을 둘러싼 관계들의 역학과 역사를 다룬다. 역사적 주류에 의해 정립된 지식이면에 가리워진, 침묵하는 소리를 발굴하고, 주류 담론학에서는 나오지 않는 잊혀진 과거를 드러내어 당대 지식에 시비를 걸고 흠집을 낸다는 측면에서 푸코의 ‘고고학’은 탈근대적 가치를 지닌다.

      죽음이라는 테마는 다분히 종교적이다. 특별히 기독교에서 죽음은 부활과 한 쌍의 완벽한 조합을 이루어, ‘고난-죽음-부활-승천-재림-새하늘 새땅’으로 이루어지는 기독교 주류 담론의 기틀을 형성한다. 내가 이 글의 부제를 ‘죽음의 고고학’이라 명한 이유는 분명하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죽음 이외의 침묵하는 죽음에 대한 증언들, 예를 들어 미술,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죽음과 결부된 묻혀있는 과거를 발굴한다는 점에서 ‘죽음의 고고학’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죽음이 팽배하고 만연한 우리사회에서 죽음을 이해하는 또 다른 창과 약간의 틈을 낼 수 있다면, 그래서 죽음을 다시 사유하고 물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글의 의미는 족하다. ‘죽음의 시대’에 죽음과 맞서는 구체적 결단과 행위에 대한 부분은 다음 과제로 미룬다.   -필자

살아남은 자의 슬픔, 당혹, 그리고 질문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열리던 시간에 맞춰 시카고와 뉴욕에 거주하며 신학공부하고 있는 한인 유학생들도 추모예배를 드렸다. 뉴져지 드루 대학과 뉴욕 유니언 신학교의 유학생들이 함께 드루대학에 모여 문동환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시카고의 경우는 감리교 신학교인 Garrett 신학교, 장로교 신학교인 McCormick, 시카고 루터란 신학교, 시카고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한인 학생들이 시카고 신학교 채플실에 모여 추모예배를 드리고, 소찬을 나눈 후에 시국토론회도 개최하고, 성명서도 낭독하였다.

두 경우 모두 지역 언론의 보도를 타서 추모예배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려 한인사회에 알려졌는데, 문제는 추모예배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에서 발생하였다. 노무현이 크리스챤이 아니었는데 왜 추모예배를 드리냐? 신학교에서 불교신자의 추모예배를 드렸다고 난리다. 노무현이 불교신자였나? 다른 쪽에서는 빨갱이를 걸고 넘어진다. 미국 이민사회에서 좌파와 빨갱이는 한국 본토에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다.

전체 미국사회에 있는 한인 이민자의 상당수가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이민 온 경우라, 아직도 반공은 그들의 굳건한 실천이성이다. 이런 까닭에 이민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토론중에 좌파와 빨갱이가 뜨면 모든 상황은 종료된다. 노무현은 바로 그 좌파다. 그런데, 어떻게 좌파에 대한 추모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허허 웃으며 넘어갔는데, 죽음과 자살에 대한 물음 앞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신앙인으로 죽음을, 그리고 그 죽음을 스스로 결정한 선택과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미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나는 고국에서 들려온 몇 건의 굵직한 자살소식에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 수정’에 나왔던 영화배우 이은주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소식, 그 전에 현대그룹 회장 정몽헌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투신하여 자살한 사건, 작년에 있었던 대스타 최진실의 자살,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까지....

인기스타와 재벌, 그리고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죽음에 대한 유혹과 압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했던 강압의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 그들의 죽음은 살아남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인식의 범주를 벗어나 존재론적으로 우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죽음의 무도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는 피겨 요정 김연아 선수가 검정색의(빨강이었나?) 드레스를 입고 연기를 펼치다가 급하게 턴을 돌더니 관객들에게 뇌살적인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연기를 마무리 짓는다. 언론에서는 여자 선수 최초로 200점이 넘은 피겨스케이팅 세계신기록이라고 호들갑이다. 김연아 선수가 연기할 때 흘러 나왔던 음악이 바로 생상의 ‘죽음의 무도’이다. 원래 이 곡은 중세말기에 유행했던 ‘죽음의 무도’ (dance macabre)에서 기원한다. 춤을 추고 추다가 죽음에 이른다는 경이적이고 낭만적인 모멘트, 그 안에 깃든 서글픔, 허무를 초극하려는 의지와 공포에 맞서는 몸부림!


‘죽음의 무도’는 중세 말과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서구 종교와 예술 전반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위에 걸린 그림 Bernt Notke (1435-1508)의 <죽음의 춤>을 비롯한 많은 ‘죽음의 무도’를 그려내는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일반 백성, 귀족, 사제, 심지어는 교황까지 해골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마치 온 유럽이 죽음과 한판 대동의 춤판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문화사적 영향에서일까, 기독교에서 춤은 중요한 상징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자라난 교회에서 즐겨 불렀던 노래 한 곡이 기억난다. 1960년대 미국 사회운동 전성기에 불리웠던 노래를 번역한 곡이라고 하는데 “춤의 왕”이라는 제목의 노래다. 예수의 일생을 짧게 요약하여 각 절의 가사를 만들고, 후렴구를 반복하는 형식이었는데, 그 후렴구 가사가 이렇다: “춤춰라 어디서든지, 신나게 멋있게 춤춰라. 나는 춤의 왕,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 속에 너 인도하련다.” 예수의 춤을 통해 (예수의 기억 속에) 우리가 새겨진다는 것, 우리의 춤을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 예수가 저장된다는 이 가사의 내용은 사춘기 시절 나에게 예수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한없는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몇 해전 Karen Baker-Fletcher가 <Dancing with God>를 출판했다. 책 제목을 처음 접하는 순간 중.고등부 시절 자주 불렀던 ‘춤의 왕’이 생각났다. 이 책의 부제가 The Trinity from a Womanist Perspective 인 것으로 보아 삼위일체 교리를 흑인 신학, 특별히 흑인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Baker-Fletcher는 Dance를 중요한 메타포로 사용한다. ‘그녀에게 있어 Dance는 폭력과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용기와 치유’라고 이 책의 서평에 참여한 GTU의 Archie Smiths는 말한다. 결국, Baker-Fletcher가 이 책에서 끌어온 Dance라는 상징도 중세 말 ‘죽음의 무도’이후 서구정신 깊숙이 저장된 춤에 대한 모티브에서 영감을 가져와 그녀 자신의 해석학으로 발전시킨 경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뿐 아니라 중세 말 유럽을 강타한 이슬람 신비주의 계열의 수피교도들에게도 춤은 신에 이르는 중요한 모티브이다. 시카고는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 사회이다. 이런 까닭에 신학교들마다 유대교와 이슬람에 대한 관심과 대화의 일환으로 이슬람권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이슬람과 신학의 대화를 도모하기도 하고, 유대교 랍비를 교수로 초빙하여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다리를 놓는 강의를 열기도 한다.

'이 춤을 추고 추다가 죽어도 괜찮겠다’라는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모스크와 유대교 회당을 방문하여 그들의 예전에 참여하고 이슬람 이맘(이슬람 종교 지도자)이나 유대교 랍비들과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궁금증에 대해 묻고 답을 할 기회가 종종 있다. 몇 해전 터키에서 온 이슬람 친구 덕분에 수피교도들이 신과의 만남을 갈망하면서 원색의 양탄자위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면서 입신(?)의 경지에 이르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이 춤을 추다가 이 춤을 추고 추다가 죽어도 괜찮겠다’라는 위험한(혹은 황홀한) 프로이트적 상상에 빠진 적이 있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삶을 생동케하는 에너지를 언급하며 에로스(삶의 본능)와 타나토스(죽음 본능)를 거론한다. 프로이트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계기가 된다는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는 바로 이 삶과 죽음의 욕동을 해부하는 책이다. 궂이 프로이트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어쩌면 모든 종교는 삶과 죽음이 매양 하나임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각 종교의 제도화된 종파에서는 교리적 잣대로 어느 정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엄격성을 유지하겠지만, 모든 종교의 신비주의 계열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무화된다. 물론, 역사는 그들을 변방에 머물러 있었던 이단아로 적고 있지만 말이다.

이렇듯, 중세 이후 서구사회 깊숙히 각인된 ‘죽음의 무도’라는 상징은 죽음의 일상성, 죽음의 편재라는 절망적 상황을 춤판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와 결합시켜 그 비극미를 극대화시킴과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비록 대단한 권력과 인기를 가진 왕이나 교황, 혹은 유명한 슈퍼스타라 할지라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로 표현하였다.(다음에 계속됩니다 ⓒ 웹진 <제3시대> 기사제공 )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이상철(시카고 신학교 / 윤리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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