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A 스트리트, 리뮤에라요”

70대 초반의 할머니께서 택시에 오르시며 목적지를 말씀 하신다.

“어느 방향으로 갈까요? 도메인 거쳐 쇼 로드 쪽인지, 아니면 모터웨이 거쳐 그린레인 쪽인지, 둘 중에요.” “내가 내비게이션이 되어 줄게, 출발해요”

처음으로 들어보는 의외의 신선한 응답이다.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터가 되어 주시겠다니……


상큼하기 그지없는 내비게이터

얼굴이 퍽 상기된 모습이다. 스카이 시티 에서 저녁 만찬이 즐거우셨나 보다. 유쾌한 목소리로 자상하게 길 안내를 하시는 할머니는 고마워하는 나의 반응에 신이 나셨다. 이처럼 구수한 맛까지 풍기는 내비게이터가 어디 또 있을까.

‘이 길은 내 50여 년 살며 정이 든 길이고, 저 빨간 지붕 집은 내 친구 딸 집이고,

코너에 높이 치솟은 리무 소나무는 이 거리 대장이고, 저 벽돌집 교회는 이 지역

커뮤니티 센터고…’ 길 안내 외에 거리 특성까지 아주 자연스레 설명도 잘 하신다.

기쁨이 가득 찬 목소리로 내비게이터 역까지 해 주시는 할머니가 참 행복해 보인다.


목적지를 말하면 보통 어느 코스로 갈 거냐고 묻게 마련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코스라 생각해도 손님 입장에서는 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냥 갔다가는 이따금 콤플레인을 제기 하기도 해서다. 같은 질문에 손님들 반응도 가지가지다. 때론 짜증석인 부정적 답변도 나온다. ‘그 걸 왜 물어? 그 길도 몰라? 당신 택시 운전사 맞아?’ 그래도 대부분 손님 대답은 상당히 우호적이다. ‘당신 좋을 대로. 빠른 길로. 요금 적게 나오는 길로. 안 밀리는 길로. A길로. B길로.’ 오늘 태운 할머니 손님 같은 대답은 상큼하기 그지없다.


인생길에도 내비게이터가 있다면

나도 나중에 택시 타면 할머니 대답처럼 말해 볼까.

“내가 내비게이터가 될께 출발해요”.

말 한마디만 들어봐도 매사에 배려가 배어있다.

최대한 편안하게 최상의 서비스로 모실 수밖에. 당연히 VIP 손님으로 대접 받게 마련이다. 가는 말이 좋으니 오늘 말도 좋고 덤까지 따른다. 내비게이터! 예전엔 항공기 자동 항법 장치 (GPS)로 사용 되던 게 아닌가. 최근엔 자동차 운전 길 안내 내비게이터로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바를 안내해주는 첨병이다.

이게 어디 자동차 길 안내 뿐 이겠는가. 우리 인생길에도 우리의 나아갈 바를 안내해주는 내비게이터가 우리 생활 터전에 함께 있다면 행운이고 축복일 듯싶다. 특히나 고국을 떠나 이민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교민 사회에도 내비게이터가 필요하리라 생각 된다. 각 분야에서 먼저 고생하고 노력하여 제대로 된 정착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이 많다. 자기 몫의 역할을 다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참 보기에도 흐뭇하다.

오클랜드내 대학 총 학생회 주관으로 고교 후배들을 위한 학과별 안내 설명회도 좋다. 각 방면의 선배를 모셔놓고 대졸 취업생을 위한 진로 상담, 설명회 역시 바람직한 일 같다. 신앙 공동체에 새로운 변화와 동기 부여의 신바람을 불어 넣는 말씀 전하는 이들 역시 좋은 몫을 나누고 있다. 가정에는 가장에게 국가 사회에는 지도자에게 신앙 공동체에는 사역자에게 나름대로의 내비게이터 역할이 부여되어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편이다. 나에게도 부모님은 어릴 적부터 내 인생의 내비게이터 였고 지금도 그렇게 역할을 하고 계신다. 나 역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로서 부모님의 내비게이터 바톤을 이어 가고 있다.


내 영혼의 내비게이터

나를 이끌어주는 내비게이터! 평생 교육도 그 내비게이터중 하나 일 것 같다. 올해는 중국 문화원 장자 특강을 들어오면서 많이도 자신을 되돌아 본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다. 철학이라기보다는 통쾌한 풍자적 우화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음을 비워내고 여여한 마음으로 한층 더 감사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한 시간들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하게 되고 나아갈 바를 다시금 깨닫게 해줘서 좋다. 우리네 인생, 이 세상일로 만 끝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영원한 세상이 있음을 생각해본다만 내 영혼을 이끌어줄 내비게이터는 누구여야 할까. 하늘과 땅을 내고 우주 운행을 다스리는 분의 손길에 이제 겸허히 맡겨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분의 음성이 나직하게 들려온다, “내가 내비게이터가 되어 줄게”.

/백동흠 200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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