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
그렇게 아름다운 아침에, 그토록 참혹한 일이[인터뷰] 변연식 천주교인권위원회 운영위원장

   
▲변연식 위원장, 분향소에 가면 늘 그를 볼 수 있다.

지난 21일 용산에서 아침 9시에 경찰들이 사제들의 단식천막에 들이닥쳐 현수막을 뜯고, 이에 항의하던 이강서 신부가 봉변을 당했다. 경찰은 이 신부의 팔을 강압적으로 뒤로 젖히고, 허리춤을 쥐고서 연행했다. 이 신부의 옷은 어깨죽지가 찢어지고, 재봉선이 뜯어졌다. 다음날 월요일 저녁은 전국의 가톨릭 사제들이 용산에 모여서 시국기도회를 열기로 한 날이다. 22일 오후, 일찌감치 용산을 찾아 온 천주교인권위원회의 변연식(레지나)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내 자신이, 천주교 전체가, 온 국민이 모욕당한 것 같았다

며칠 째 부친의 병고로 병원에서 병간호를 하느라 용산에 들르지 못한 변연식 위원장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해당 기사를 읽고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웃 단추도 풀어제친 한 경찰이 이강서 신부의 허리춤을 거머쥐고 연행하는 사진을 본 것이다. 지난 23년 동안 천주교회 안에서 정의평화활동을 하면서도 처음 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천막 안에 이강서 신부가 사건당일 입었던 웃옷이 걸려 있다. 그 흰옷이 찢겨나갔다.
"내 자신이, 천주교 전체가, 온 국민이 모욕당한 것 같았다. 개 끌듯이 신부를 잡아가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정신없이 용산에 달려와 보니, 문정현 신부는 지쳐서 쓰러져 있고, 이강서 신부는 옷이 다 찢어진 상태로 평상에 앉아 있었다. 이강서 신부는 평소에 항상 옷을 단정하게 입고 다니는데, 그 하얀 옷이 박박 찢어져 있는 것이다. 가슴이 따라서 찢어지는 듯 했다. 그분을 지켜보면 항상 중재자로서, 교회 어르신들과 젊은 사제들, 교회와 세상 사이에 다리를 놓으시는 분으로 느껴졌다. 성격도 진중해서 존경하고 있었는데, 찢어진 옷을 보니..."(변 위원장은 잠시 말을 잊었다)

이 시대 최고의 강론, 용산에서 듣다

변연식 위원장은 지난 23년 동안 동지처럼 함께 일해 왔던 문정현 신부 이야기를 잠시 했다. 한국에서는 문정현 신부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아시아 최고의 인권평화운동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최근에도 세계의 신학적 흐름을 공부하는데 게으르지 안하고 한다. 

"문정현 신부가 그동안 한 사람의 사제로서, 평화운동가로서 터득한 역량과 통찰력이 이곳 용산에서 드러나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지난번 성주간 미사를 용산에서 지내면서 이 시대 최고의 강론을 들었다. 그분이 용역의 무릎아래 억눌리고, 경찰에게 떠밀려 땅바닥에 엎어진 것이다."

그날 변연식 위원장은 목이 다 쉬어버린 문정현 신부에게 맥주를 한 잔 사드렸다. 경찰에게 받은 그 깊은 모욕감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 신부를 평생 동지로 삼아 온 "내가 사람 잘 봤다"고 변 위원장은 말한다.  

   
▲ 이 누추한 땅에도 여지없이 꽃은 피어난다.  아름답다.

그렇게 아름다운 아침에, 그토록 참혹한 일이

지난 6월 20일 대학에 갓 들어간 아들이 방학이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아들에게 "벌써 방학이야?"하고 물으며 깜짝 놀랐다. 아들은 5달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용산의 시신들은 이 여름이 오도록 냉동고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머리에 스쳤기 때문이다. 

1월 20일 용산참사 사건 당일, 아들이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가야해서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아직 날이 밝지 않는 아침, 자동차로 달리는데, 운전석 너머 하늘엔 뜬 달이 너무 예뻤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한참 교정을 돌아보았다.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그런데 그 시각에 이미 5명의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랐다가 참극을 겪은 것이다. 자신이 그 아름다운 아침을 만끽하는 동안에 어떤 사람들은 그 추운 겨울날 화염에 휩싸여 죽어간 것이다. 그게 너무 가슴이 아프고, 유족들에게 죄송해서 사건 초기에는 용산현장에 오지도 못했다.

   
▲ 유족들의 상복이 곱다. 고인들이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용산에 가면 시대가 보인다 

변연식 위원장은 지난 5개월 동안 시신이 안치된 순천향병원에 들락거렸다.

"그곳에서 유족들과 인권활동가들을 만났다. 그들은 5달 째 죽음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그곳에 존경하는 후배들이 있다. 수배당한 박래군, 이종회와 전철연 의장인 남경남 씨가 곱징역을 살고 있다"

"이강서 신부가 미사 때 이런 말을 한다. 그동안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이곳에 오면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철연 소속으로 연대활동을 나온 안암동 할머니는 나를 만나면 친환경 수세미를 주시곤 한다."

변연식 위원장은 용산참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라 안이 온통 개발바람이 불어, 영등포 시장을 가도, 소공동 지하상가를 걸어도, 심지어 여의도 천변의 대림아파 담벼락에도 "용산참사 따로 없다. 우리도 그꼴 난다"는 위기의식에 젖어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서울시장과 삼성이 우리집 빼앗아간다"고 현수막을 걸었다. 

그래서 변 위원장은 "용산에 가면 시대가 보인다"는 말이 맞다고 말한다. 그동안 30-40년 동안 개발 위주로 살아온 우리네 삶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철연(전국철거인연합)은 그 이름 때문에 무슨 범법단체처럼, 폭력단체처럼 잘못 인식되어 있지만, 대만에서 열린 동아시아 인권회의(포럼 아시아)에서는 이런 철거민들을 "주거권과 생권을 위해 싸우다 희생당한 인권옹호자들"이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전철연은 자기 지역 문제만 위해 싸우지 않고, 같은 문제로 고생하고 있는 지역에 가서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 고통에는 네것과 내것이 따로 없다. 모두 자기 일처럼 기꺼이 나눈다. 용산에도 사람이 산다.  

사람사는 세상은 이곳에.. 이미 이루어졌다

이를 두고 변연식 위원장은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는 성경구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용산현장 부엌방에 들어가 보면, 여러 회원들이 돌아가며 규찰을 서고 밥을 짓는다. 벽에는 예전에 운영하던 상가 이름이 벽에 붙어 있다. ..포차 등. 이들은 예전에 하던 그 솜씨로 가족의 생계를 돕다가 이제는 세상을 위해 밥을 짓고 반찬을 마련한다.

"가슴 아픈 것은 이런 평범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망루에 올라가면서 당연히 내려오리라고 믿었을 텐데, 그들 대신 우리가 그 땅바닥에서 미사를 드린다고 생각하니 더 기가 막힌다."

변연식 위원장에 따르면, 평소 성당에 나가지도 않던 신자들이 여기 용산미사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온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용산에 오면서 삶의 큰 전환점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문정현 신부나 이강서 신부에게 울면서 고해성사를 보고, 고맙다면서 또 울음을 터트린다고 했다.  

먼저 와서 보고 울어야...

한편 공권력에 대해서, 경찰에 대해서 변연식 위원장은 한 명의 엄마로서 마음이 아프다.  

"나도 아들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전경들도 다 내 아들 같다. 그런 특공대 한 명도 이번 참사로 죽었다. 그들이 뭔 죄가 있냐? 다 시켜서 하는 짓인데... 이명박과 경찰 명령권자들이 문제다. 용산현장에는 여기저기에 경찰들이 교대로 지키고 섰다. 어린 청년들을 뙤약볕 속에 세워놓았는데, 이따금 이쪽 그늘로 가서 서 있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형사들 중에 얄미운 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

변연식 위원장은 신자들이 이곳에 많이 와 보았으면 하고 바란다. "일단 이곳에 와서 보면 울지 않는 사람이 없다."

"우리의 역할응 많은 이들이 감추어진 진실을 여기 와서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곳에 와 보지 않고서 사랑이며 자비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교회지도자들도 이곳에 많이 와봐야 한다. 와서 보고 느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6월 3일 김운회 주교 한 사람이라도 현장에 와 준것은 다행이라고 말한다. 한편 변 위원장은 이곳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은 사람의 몸에서그렇게 많은 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5개월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툭하면 눈물바다를 이룬다는 것이다. 주교가 왔을 때도 고마와서 눈물을 흘리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날 와서 보니, 유가족들이 여름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때 변 위원장은 하마터면 "어머, 예뻐졌네요!"하고 말할 뻔 했다는데, 상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 정갈했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옷이 '상복(喪服)'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기가 막혔다. 그리고 겨울에 시작한 싸움이 벌서 여름이 되었다. 언제 끝날 싸움인지 아무도 모른다.

   
▲ 분향소 앞에서 늘 볼 수 있는 이분들은 틈틈이 새새이 성경을 읽고 마음을 다독인다.

한편 이 지리한 싸움 속에서 이곳 용산에 쌀이며 찬거리를 보내준 천주교 신자들과 성심회 등 수녀들 때문에 같은 천주교 신자로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그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한상봉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