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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은 예의의 변수[시사비평 - 박병상]

오후 들어서니 몸을 움직이지 못하겠다. 낮잠이 필요한 걸까? 한여름 낮 무더위를 시에스타(낮잠)로 피하는 스페인이 부럽다. 장마전선이 만주 쪽으로 올라가자마자 불볕더위가 이어지니 마감이 눈앞인 원고의 실마리가 아리송해진다. 이럴 때 원고 쓰기는 무리다. 원고가 들어오지 않으면 잡지는 출간을 멈춰야겠지만, 그럴 리 없으니 독촉받기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한다. 에어컨 없으니 눅눅한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며.

뉴스는 대통령의 싱가포르 방문소식을 전한다. 만찬장에 모인 우리 대통령과 싱가포르 총리를 비롯해 모든 남성은 넥타이를 단단히 맸는데 더운 기색이 없다. 에어컨이 빵빵한가 보다. 적도 근처의 작은 국가 싱가포르는 국민들이 근면하다는데, 에어컨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콴유 초대 총리는 에어컨을 인류의 최고 발명품으로 추켜세웠다는데, 영국이 지배하기 전 싱가포르는 느긋하고 한적한 어촌이 아니었을까? 더운 지방에서 근면한 일상은 예외일 수 있지만 예의는 아니었을 거 같다.

문화는 ‘삶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삶의 방식은 환경에 따라 다르다. 어촌의 삶은 농촌과 다르고 온대 지방은 극지방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 방식이 다른 삶에 우열은 없다.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에서 제이 그리피스는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삶을 ‘송 라인'(song line)이라고 했다. 송 라인은 다채롭기에 아름답다. 그리고 가장 건강하다. 극지방에서 눈을 이야기하는 단어가 70가지라고 한다. 어떤 눈이 내리면 무엇을 챙겨 어디로 사냥을 가야 하는지 그들은 잘 안다고 한다. 우리도 비슷하다. 진눈깨비 내릴 때 짚신은 피하겠지. 눈을 의미하는 단어를 스노우(snow) 하나로 통일한다면? 극지방은 참상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돼지고기는 피한다. 종교적 신념이라지만, 종교의 기원도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슬람 문화권은 사막지방에서 흥했고 지금도 그렇다.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사막에서 사람과 비슷한 식성을 가진 돼지를 기르는 건 아무래도 무례한 일이다. 사막의 종교 지도자는 돼지고기 먹는 걸 죄악시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나라는 달랐다. 삶의 방식에 우열이 없듯, 종교에 우열은 없다. 내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고 피하려는 이를 백안시할 이유는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풍기와 넥타이.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 더위에 서울광장에서 성소수자들의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렸을 텐데, 대단하다. 축제가 한창인 광장을 바라보는 대한문에서 일부 종교인이 주도하는 동성애 반대 집회도 있었다. 그들은 개신교인이라던데, 뉴스 화면에 얼핏 이스라엘 국기도 보였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박해를 받을 때 생존과 저항을 위해 다산을 종용했던 지도자는 동성애를 혐오했다고 한다. 당시 로마에 미소년을 대상으로 동성애를 즐기는 문화가 기득권층에 있었다는데, 지금은 21세기이고 여기는 로마도 이스라엘도 아니다. 출산이 줄어드는 현상은 동성애가 아니라 아이 기르기 어려운 환경이 만든다.

장마가 한창일 때 만원 지하철에 올랐다. 젖은 우산과 가방을 들고 흔들리자니 불편한데, 좌석의 어떤 승객도 가방을 받아주지 않는다. 예전 만원 버스는 달랐다. 좌석의 승객은 거의 의무적으로 서 있는 승객의 가방을 받아주었다. 학생 가방을 여럿 받다 도시락의 김칫국물이 흘러 낭패를 본 적도 있지만 버스와 지하철에 선반이 생긴 이후 그런 미덕은 서서히 사라졌다. 인천 지하철에 선반이 없다. 선반 없애는 게 추세라지만, 환경변화는 관습을 바꾸고 미덕도 바꿨다. 요즘 지하철에 앉아 모르는 이의 가방을 받으려하면 눈총을 받겠지.

혼자 중얼거리며 거리를 걷는 이의 정신 상태는 정상일까? 제정신이 아닐거라 짐작하던 시절이 얼마 전인데, 요즘은 그러려니 하고 지나친다. 휴대폰과 이어폰 사이의 근거리 이동통신 ’블루투스‘ 기술이 보편화된 이후의 일이다. 손에 칼을 쥐지 않았다는 걸 보이려고 악수하는 이, 술잔에 독을 섞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고 잔을 부딪치는 이는 요즘 없다. 예전의 어떤 목적이 있던 관습이 요즘은 그냥 의례적인 예절이 되었다. 술이 섞이도록 세게 부딪치면 요즘 잔은 깨지고 그런 짓하면 눈총을 받는다.

환경이 만드는 관습은 예의로 바뀌기도 한다. 여름이 덥지 않은 지역에서 생겼을 넥타이 매는 예의가 그렇다. 한데 넥타이는 더운 환경에서 불편한 존재다. 싱가포르의 실내는 에어컨이 식히는데, 화석연료가 부족해지면 넥타이 예의는 사라지지 않을까? 무더위에 원고가 쉽게 써지지 않아도 내일 강의에 입을 와이셔츠와 양복바지를 준비해야 한다. 반바지면 좋겠지만 내공이 없어 아직 꺼림칙하다. 넥타이를 마다하는 정도인데, 여름이니 눈총 없겠지.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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