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11(동영상 강의 및 요약문)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6)

사회교리의 정점에 있는 주제는 ‘평화’입니다. 성경은 평화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는 축복의 결과라고 전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르도록 400년 가까이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마케도니아와 로마의 식민지를 경험한 이스라엘 역사에서 평화는 가장 민감하고 절박한 요청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갈망하던 메시아는 ‘평화의 군왕’(이사 9,5)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날 때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하고 인사하셨습니다. 생전에 제자들을 파견하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5) 산상설교에서도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라고 하시며, 평화의 일꾼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가 강력한 군대를 자랑하는 로마제국이 주는 ‘힘에 의한 평화’라면, 그리스도의 평화는 모든 폭력을 거부하고, 원수조차 사랑하는 마음이 낳는 ‘사랑에 의한 평화’입니다.

Ade Bethune. 성 알마키우스는 5세기의 은수자로서 성 텔레마쿠스로도 불린다. 잔인한 검투사 경기를 중지시키려다 로마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 그 뒤 호노리우스 황제는 검투사 경기를 중단시켰다.

사회교리는 단순히 전쟁이 없다고 해서 평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평화는 먼저 정의의 열매입니다. 빈익빈 부익부 등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평화가 언제나 위협받습니다. 한편 평화는 ‘사랑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정의가 평화로 가는 길에 놓인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라면, 사랑은 평화를 이루라고 촉구합니다.

이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를 추구하면서 “날마다 조금씩 이룩되는 것”이며, 우리 마음의 무장해제를 필요로 합니다. “분쟁과 폭력을 막으려면, 먼저 모든 사람의 마음속 깊이 평화에 대한 갈망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평화는 가정과 사회 안에서 다양한 집단들로 확산되고, 결국 정치공동체 전체의 참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49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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