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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덕을 갖추어야 합니다[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 김용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요한 타울러, 사회와연대, 2017, 229-231쪽.

그분께서 사냥꾼들의 덫에서 노기 띤 말에서 너를 구하여 주시리라.”(시편 91,3)

이 말은 위대한 예언자이자 왕이었던 다윗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하느님의 보호를 받으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한 말입니다. ‘덫’은 ‘마귀의 집요한 유혹’으로 이해해야 하며 ‘노기 띤 말’ ‘마지막 심판 날에 죄인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태 25,41)

이 무서운 말씀에 대하여 자주 묵상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영혼의 사냥꾼인 덫으로부터 도망쳐야만 불행한 운명을 맞지 아니하고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은총을 주셔야만 합니다.
나는 감히 여러분이 완전하게 되려면 반드시 따라야 할 방법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하느님과 같은 사랑을 하려면
모든 죄를 버리고 회개하고 완전하게 되기 위하여
하느님의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특히 거룩한 다섯 상처에 대하여 묵상해야 합니다.

두 번째, 뉘우치는 수행을 통하여
끊임없이 강한 성욕을 억누르고 극복해야 합니다.

세 번째, 지나치게 인간을 사랑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처럼 되기 위해서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끊어야 합니다.
더 빨리 이렇게 되려면
하느님께서는 살아 있을 때 죄에 대하여 벌하시려고 고통을 주시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시어 죄 때문에 슬퍼하거나 울도록 하시고
진심으로 속죄하도록 하신다는 것과 이를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처음부터 열심히 수행하도록 하시어
거룩한 교회의 계율에 순종하면서 살도록 하신다는 것을 알고
초심을 잃지 않고 수행해야 합니다.

네 번째, 고통과 역경을 각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덕을 쌓도록 하시고 당신을 기쁘게 하도록 하시기 위해,
내적 외적인 일로 많은 슬픔을 주시고,
수행을 중단하려고 하는 충동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면서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이 편하기만 바라면 수행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므로
이를 악물고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려고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계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상급을 받을 욕심으로 일하지 말아야 하며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이기심을 성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려고 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상급을 기대하지 않고 하느님을 섬기게 됩니다. 내적인 위로를 생각하지 않고 상급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도 생각하지 않고 덕만 쌓으려고 하며, 하느님의 뜻에만 따르려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도 이렇게 하게 하시어 영혼 사냥꾼의 덫을 피하게 해 주시고, 마지막 심판 때 저희에게 노기 띤 말씀을 하셔도 알아듣게 해 주소서.

아멘.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Pxhere)

‘완덕'은 신망애(信望愛) 곧 ‘믿음을 갖고 부활을 바라며 사랑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먼저 회개하지 않으면 완덕을 갖출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기심을 버리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평신도 신학자였던 예브도키모프(Paul Evdokimov, 1901-70)가 말했습니다.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구원’은 법적으로 구제되는 것이 아니어서 법정의 선고와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히브리어 동사 ‘yacha’는 '구하다'(to save) 라는 뜻으로 '해방하다'(to set free), ‘짐을 들어주다'(to unburden)는 것을 의미하며 ‘위험에서 구하다, 병에서 구하다, 죽음에서 구하다’는 뜻으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마음의 절대적인 안정을 되찾다'(to reestablish the essential equilibrium) 즉 ‘치유하다'(to heal)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하느님을 믿어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부활로 생각하며 신자들을 인도하고 있지만 프랑수아 페넬롱 대주교(1651-1715)는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죽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이 매우 고통스런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 안에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부분이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죽음은 자신이 죽음에 대해 저항할 때만 고통스럽게 합니다. 당신은 상상 속에서 죽음이 무척 끔찍한 일인 것처럼 과장하고 있습니다. 이기심은 온 힘을 다해 살려고 몸부림칩니다. 외적으로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죽으십시오.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은 모든 것들이 자신 안에서 죽도록 하십시오. 자신의 십자가를 지십시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기꺼이 치유해주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당신의 목표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해서도 참는 것입니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매일 조금씩 죽는다면 당신의 마지막 날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기심 때문에 자신을 걱정하게 됩니다.
당신이 미래에 대해 그렇게 많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신에 대해 참고 또 다른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을 돕도록 허락하십시오.
당신은 매일 죽음으로써 결국 마지막 죽음을 이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육의 죽음은 잠을 자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평화스럽게 잘 수 있는 당신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자신의 내면 깊이 들어가서 자신을 알고 그리하여 하느님을 새로운 눈으로 보지 않는 사람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신학입니다. 신학은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신학에 대하여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한 자매님이 남편을 두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의 남편은 신앙에는 무척 관심이 많으나 믿음이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신학은 모르지만 믿음이 아주 깊은 사람이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74) 성인이 말했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한 할머니가 신학의 대가보다 믿음이 더 깊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시인 오든은 그의 시집 '당분간은'(For the Time Being)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죽어야만 기적을 바랄 수 있다
(We who must die demand a miracle)

 

악만 알고 길을 잃은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을 하느님께서 아실까 봐 두려워하면서

혼자서 외로이 무서운 숲속을 헤매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 무서운 숲속을 혼자서 외로이 헤매고 있다.

 

하느님의 율법을 택하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 없애버린 인간의 율법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뜻이 절대적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시면서

수난을 받고 우리에게 물려주신 의로움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모두 다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율법을 스스로 버리고 택한 하느님의 율법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순례자의 길은 지옥의 심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기껏 그런 냉소를 지으려고 그 더러운 무시당함도 감수했는가?

승리의 보답이 고작 이것이었나?

순례자의 길은 지옥의 심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들은 죽어야만 기적을 바랄 수 있다.

영원한 하느님께서 어떻게 잠시만 활동하시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하느님께서

어떻게 유한한 일만 하실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죽어야만 구원의 기적을 바랄 수 있다.

 

김용대(후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
본명은 후고입니다만 호도 후고(後考)입니다. 항상 뒷북을 친다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컴퓨터 전공 서적을 여러 권, 묵상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징검다리"를 쓰고, 요한 타울러 신부의 강론집을 번역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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