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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빵, 시간빵, 마음빵[예수, 가장 연대적인 사람 - 맹주형]

수년 전 겨울, 월성 핵발전소 인근 나아리 주민들이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상경 투쟁을 한 적이 있었다. 종교환경회의에서 연대하며 천주교는 주민들 점심밥을 맡아 명동에 있는 닭한마리 집에서 따뜻한 국물과 소주 한잔 대접하였다. 추운 겨울날 새벽부터 추위에 떨던 주민들이 맛나게 드시던 점심밥을 기억한다.

얼마 전 서울교구 신학생들의 방학 프로그램으로 정의, 평화, 환경, 농촌 현장을 다녀오는 사회사목 현장 실습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루 신학생들은 나아리 주민들과 경주 시내 탈핵 순례를 함께 했다. 경주역 광장에서 잠시 쉬며 참가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월성 원전 인접 지역 이주대책위원회 황분희 회장님이 신학생들에게 수년 전 천주교에서 밥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다고, 지금도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다. 기억하고 계셨고, 부끄럽지만 고마운 인사였다.

다음 날 신학생들 숙소는 왜관에 있는 분도수도원이었다. 수도원 신부님께 신학생들과 4대강 낙동강 녹조 현장을 가기 위해 하루 묶을 수 있는지 문의하니 흔쾌히 손님의 집을 내주셨다. 그날 밤 신부님과 우리는 수도원에서 만든 소시지와 햄, 포도주를 나눠 먹으며 수도원에 묵어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밀양 송전탑 싸움 때 밀양 할매들,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농민들의 이야기였다. 수사님들은 밀양 할매들의 송전탑 싸움에, 가톨릭농민회 농민운동 현장에 늘 함께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도로 함께하며 할매들과 농민들이 교육이나 행사를 하게 되면 흔쾌히 장소를 빌려주고 정성껏 밥과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경주역 나아리 주민들과 탈핵순례. ⓒ맹주형

예전에는 수도원 숙소와 장소를 이용하려면 수도원에 공문을 보내라고 했다. 어찌 보면 필요한 절차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수사님이 “예수님이 묶으실 때도 공문을 보내라 하겠냐”며 그 절차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후 수도원은 공문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수님과 공문에 대한 수사님 이야기는 형식에 대한 우려였으리라. 당장 아프고 힘들고 당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형식은 필요 없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순 밥 한 끼와 위로의 쉬운 말들, 하루 묵을 잠자리가 다이기 때문이다. 수사님들은 그 마음으로 밀양 할매들과 농민회원들에게 정성껏 잠자리와 밥을 대접하였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지만 쌍용자동차 30번째 희생자 김주중 노동자,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 KTX 해고 승무원들, 홈리스 주거권 문제, 소성리, 강정 주민들, 생산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농민들, 4대강 사업으로 죽어간 뭇 생명 등등 해결되어야 할 일들은 아직 너무 많다. 

세상의 정의와 평화, 창조질서를 지키는 일들은 현장에서의 연대가 중요하다. 하지만 늘 현장에서 연대할 수는 없다. 함께하지 못해도 수사님들처럼 내 삶의 자리에서 세상과 연대할 수 있는 일들은 생각보다 많다. 기도와 기억과 관심, SNS상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들, 공유와 서명 동참, 필요한 물품의 나눔, 가능하다면 잠시의 짬을 낸 지지방문, 퇴근 후 거리 미사 참여 등등. 

나 스스로 연대는 ‘몸빵’, ‘시간빵’이라 말한다. 현장에서 몸과 시간으로 때우는 몸빵, 시간빵도 중요하지만, 그중의 제일은 ‘마음빵’이다. 마음의 나눔이다.

월성핵발전소 현장. ⓒ맹주형
나아리 이주대책위 천막에서. ⓒ맹주형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연대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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