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헤케 섬에 다녀오는 손님을 시내 페리 선착장에서 태우고서야 숨통이 좀 트이는 듯하다. 목적지 세인트 헬리어스로 가는 길목 미션베이 바다 바람이 답답한 마음을 깨끗이 날려 보내 버린다. 늦게라도 고마운 일이다. 조금 전 알버트 스트리트 지방법원에서 태워 바로 근처 쇼트랜드 스트리트 비즈니스 빌딩가에 내려준 손님에게서 느낀 실망감에서 벗어난 느낌이랄까. 바쁜 오후 3시 시간대를 평상시처럼 기대했던 게 내 욕심이고 잘못이라면 내려 놓아야지… 택시 콜을 받고 보니 15분 뒤에 출발할 거란다.

지방법원 옆 도로 주차가 복잡해 다른 곳에서 10여분 대기 하다 2-3분 전에 도착해 7-8분을 기다려도 손님이 안 보인다. 그 때 따라 웬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지. 툭툭 누군가 차 뒷 유리를 두드리기에 손님인가 싶어 보니 주차 단속원이다. 더블 파킹이 안되니 어서 움직이란다. 곧 손님이 나올 거라 얘기하니 주차스티커 발부 계기를 들어 보인다. 떠나갈 수밖에 없는 일. 그래서 그 지역 도로를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법원 옆에 당도하니 그제서야 입구로 나오는 손님들이 손짓을 해온다. 트롤리 같은 밀 것 두 대에 서류 박스를 가득 실은 채 네 사람이 차로 다가온다. 웬,짐이 저리도 많나. 봉고차를 불러야 할 짐들이다. 공간이 넓디 넓은 웨건인데도 뒷 트렁크에 가득 싣고 또 남는다.

각자 무릎 위에도 박스 하나씩을 올려놓고서야 겨우 출발이 가능한 상황이다. 애꿎게 안경알에 빗방울이 흘러내리기까지 한다. 택시 미터는 그제사 눌러지고. 택시 콜을 받은 뒤 거의 반시간만에 출발한 셈이다. 목적지가 두 블록 지나 보이는 근처 빌딩이다.


안경에 흐르는 빗물

원하는 곳에 차를 세우자니 주차공간이 없어 또 더블 파킹을 하게 된다. 차를 세우자 기본 요금 $3을 포함해 $4.80 메터 요금이다. 짐을 내리는 동안 뒷차들 통행에 지장이 되어 두어 번 경적 컴플레인까지 받으니 마음마저 부산해 진다. 그치지 않고 비까지 내려 함께 박스를 꺼내 건물입구까지 몇 번 날라 주고서야 운전대를 잡으니 안경에 흐르는 빗물이 시야까지 가린다. 콘솔박스 위에 남겨두고 간 $4.80 이 적힌 택시 바우처… 그게 무슨 죄일까 마는 그리 반갑지가 않다. 괜스레 우직해 보이는 택시 웨건에게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든다. 택시도 제 딴에는 꽤나 기다리기도 하고 많은 짐도 실어 날랐는데 주인이 제대로 품삯 값도 못 받아서일까. 말없이 속상해 하는 것만 같아 보인다.

운전을 하면서 그럴 때 느끼는 마음, 사무적으로야 뭐 문제냐 싶은 일이지만 그게 다가 아닌 걸… 왠지 씁쓰레한 뒷맛이다. 기대를 내려놓자 해도 그게 잘 안된다. 왜 그게 인색함으로 느껴지나. 이런 일 뒤면 이리 마음이 좁혀드는 걸까. 어디 시원스레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진다.가슴을 쫙 펴고 싶은 마음이 본능되어 꿈틀거린다.


인간적인 여운 남기는 손님

그런 뒤 만난 페리 터미널 손님이 마침 바닷가를 달리게 해주니 무척 고마운 일이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밖에 햇살 따라 불어오는 미션 베이의 바닷가 바람이 참 싱그럽다. 손님과 얘기하다 보니 20여 년을 변호사 생활하다 3년 전부터 무역업을 하는 사업가란다. 여러 나라에 걸쳐 넓게 일을 하며 밴 습관인지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마음으로 관심을 보여오니 닫혀있던 내 마음도 서서히 열릴 수밖에.

자기 말을 또박또박 천천히 쉽게 해 주니 친근감 있게 느껴진다. 조금 전 지방법원 손님 이야기를 하니 내 어깨를 만지며 진정하란다. 자기도 옛날 그런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며 오히려 자신이 내게 양해를 구하려 한다. 혹시 그 변호사 팀이 재판에서 지거나 불리한 입장이 되어 다운된 상태라 남에게 신경 쓸 여지가 없었는지도 모른다고. 우리말로 하자면 자기 코가 석자인데 남이 눈에 보이겠냐는 말이다. ‘그런가?’ 해야 하나. ‘그랬군!’ 하고 수긍해야 하나. 쎄인트 헬리어스 목적지에서 내리며 메타 요금에 $20을 더 얹어 주며 어깨를 툭 친다. 힘 내라면서. 내린 옆 자리에 인간적인 여운이랄까 향기나는 흔적이 맴돈다. 살다 보면 참 별 별 사람이 다 있다. 남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자기 보기도 바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를 볼 줄도 알고 남까지 헤아릴 줄 아는 사람도 있다.

택시에 오르며 마주하는 손님들마다 다양한 취향과 각기 다른 성격만큼 내리면서 남겨놓고 가는 흔적도 각양각색이다. 택시에 오르면서 가끔씩 코를 쥐어 잡게 하는 냄새를 풍기는 경우들도 가지가지다. 담배에 쩔은 냄새, 역하게 느껴지는 특이한 음식 향냄새, 축축하고 음산한 곰팡이 냄새, 땀에 배인 퀴퀴한 냄새, 이가 썩는 듯한 입냄새, 독한 술 냄새, 특이한 약 냄새…. 100명에 1명이나 있을까 말까 한 경우들이다.


마음이 맑으면 눈빛부터 맑아진다

반면에 좋은 향기를 지니고 탔다가 고이 내려놓고 가는 이들도 있다. 샤워후 덜 마른 머리 결에서 나는 풋풋하고 맑은 오이 샴푸 같은 냄새, 은은하게 풍겨오는 감미로운 향수 냄새, 깨끗하게 세탁한 듯한 옷에서 나오는 개운한 냄새. 꽃다발이라도 들고 탈 때면 온통 차안이 꽃향기로 가득찬다. 이러한 모든 냄새와 향이 오감에 의한 것으로 좋고 나쁜 영향을 주기도하지만 정말 중요한 향은 육감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왜 ‘마음이 맑으면 눈빛부터 맑아진다’고 하지 않은가. 당연히 ‘표정도 맑아지고 말씨도 달라진다’고. 그러기에 남에게 배려하는 마음이 가장 귀한 인간적 향기가 되어 주위를 훈훈하게 해준다. 그런 손님을 만나면 꼭 그런 사람을 닮고 싶다는 다짐이 일곤 한다.

경험상 육감으로 느끼기에 가장 고약한 냄새는 ‘인색함’ 과 ‘교만함’이라 여겨진다.

일상의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참 기쁨과 평화’로 이끌어주는 ‘은총의 수로’이다. ‘감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향기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박이준 시인의 ‘하늘 냄새’를 늘상 맡으며 향기를 주는 감사에 젖어 살고 싶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 하늘 냄새를 맡는다.”

/백동흠 200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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