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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키우는 것이 사회의 역량이 된다면[오늘은 여기까지 - 박유형]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을 봤다. 어떤 사람이 "원래 우리 동네에 이렇게 꽃이 많았나?"라며 꽃 사진을 올렸는데, 다른 사람이 "꽃이 많은 게 아니라 꽃이 많이 보이는 나이가 된 거다." 라고 답한 것이다. 왠지 내 이야기 같아서 뜨끔했다. 예전에는 엄마가 왜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꽃밭을 해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얼마 전에 동생이 보내 준 꽃 사진을 프로필로 해 둔 나를 발견했다. 나이 먹을수록 꽃이 좋아지는 것은 인생의 순리인가? 알 수 없다.

그러나 꽃을 좋아한다고 꽃과 좋은 사이로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나는 소위 말하는 '그린 핑거'는 아니다. 나는 키우는 족족 식물들을 죽이고 말았던 슬픈 과거가 여럿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같은 사무실을 쓰는 수녀님에게서 식물들을 또 받아 버렸다. 이번에는 꼭 잘 키워 보리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물론 식물들이 죽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두 번쯤은 키우는 고양이들이 내가 없는 사이 잎을 다 뜯어 먹었고, 한 번은 넘치는 사랑으로 물을 너무 많이 주어 뿌리가 상했다. 어떤 때는 부주의로, 어떤 때는 지나친 관심으로 일을 그르친 셈이다. 그래서 매번 앞으로는 절대 키우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면 또 무언가를 키우고 있었다. 예전에는 난초를 기르는 사람의 마음을 잘 몰랐는데 이제는 무언가에 정성을 쏟는 기쁨을 알 것도 같다. 상대가 말이 통하지 않는 식물이더라도 나에게 풍성한 감정을 되돌려 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걸 받아 왔을까. 아침마다 창가에 서서 화분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매일 꽃이 시들지는 않았는지 체크하고 들여다보는 순간에는 내가 누구보다도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별것 아니지만 나를 나로서 있게 하는 순간들. 사람이 삶을 사는 데는 역시 작지만 중요한 것들이 존재한다. 내가 바라는 좋은 삶에 필요한 것은 주변에 산책할 길이 있는 것, 방문을 열었을 때 꽃이나 화분이 보이는 것, 친구들과 보낼 시간이 있는 것, 맛있고 정성 담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 등이 포함된다. 아마 사람마다 중요한 것은 다를 것이다.

이번에는 꼭 잘 키워 보리라. (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런데 난 가끔 내 인생에 중요한 것들을 자신 있게 주장하기에 곤란한 순간을 마주한다. 나에게는 중요한 산책, 꽃과 고양이를 돌보는 시간, 나를 나로 있게 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사사로이 여겨지기 쉬운 것이다. 사람들 모두에게 마음을 지탱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일 텐데도 말이다. 소위 국민의 행복이 1인당 GDP로 매겨지거나, 돈이 되거나 경제적으로 가치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은 불필요하거나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미국의 법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책 "역량의 창조"에서 GDP 접근법으로는 인간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1인당 GDP가 늘어났다는 것은 부가 증가해서 그 나라 어딘가에는 멋진 그림이 생겼지만 볼 수 없고, 맛있는 음식이 차려졌지만 맛볼 수 없다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늘어난 부가 한 개인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그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 현실은 이미 뉴스가 된 지 오래다.

누스바움은 인간존엄성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물으면서 적어도 '10대 핵심역량'이 최저 수준으로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으로 누스바움이 제안하는 것은 생명/신체건강/신체보전/감각, 상상, 사고/감정/실천이성/관계/인간 이외의 종/놀이/환경 통제다. 사람을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원칙을 옹호하는 이 역량접근법은 집단이 발전해야 개인의 역량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개인의 역량에서 집단의 역량이 나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감각 기관을 활용해 즐거운 활동을 하는 것, 주변 사람이나 사물에 애착을 느끼는 것, 정당하게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 자존감의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는 것, 동물이나 식물 등 자연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 그 속에서 인간답게 일하는 것 등 모두가 사회 정의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돈벌이'와 상관없어 부차적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실은 정말로 가치가 있고 사회 정의를 이루는 데도 필요하다니, 왜인지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든다. 왜인지 내일부터는 창가에 서서 식물들을 바라보면서, 산책하면서, 친구들과 맘껏 웃으면서도 등이 쭉 펴질 것 같지 않은가.

박유형
기본소득 청‘소’년네트워크에서 기본소득 운동을 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좋아한다.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장래에는 잘 훈련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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