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기획] 야전병원으로서 교회, 가능할까? 3

“야전병원으로서 교회 정체성의 실현”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제도 교회와 사목의 총체적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상통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안타깝게도 긍정적이지 않다.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 박문수 소장은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면 사제, 신자들의 의식이 획기적으로 변해야 하는데 둘 다 가능성이 적고, 변화해도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박 소장은 그 원인에 대해 국가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시민사회가 성숙하는 가운데 교회의 역할이 축소된 것은 물론, 진보성도 시민사회에 뒤떨어지게 됐다면서, “그 결과 교회에 남아 있는 이들은 개인의 구원, 공동체적 욕구, 사회적 영향력 확대 정도를 욕구로 갖고 자선이나 구제활동 이상의 구조적 문제에는 관심을 갖기 어려워졌다”고 짚었다.

그는 이미 본당의 사회복지 활동조차 사회사목, 카리타스 등 일부 전문적 영역에 넘겨준 구조에서 개혁은 사실상 어렵다는 생각이라며, “또 사제나 신자들 모두 새로운 것을 시도할 의지나 현실적 여력이 떨어져, 어떤 변화를 두려워할 정도"라며, "야전병원의 역할은 본당 바깥의 사회사목에서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냉정하게 판단했다.

박동호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은 성직자 중심주의에 대한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제도로서 주교직이 아니라, 주교가 곧 교회라고 동일시한다고 지적했다. (사진 출처 = vaticannews.va)

교회의 개혁은 ‘평신도 사도직’의 회복으로부터

서울대교구 박동호 신부(이문동성당 주임)도 "야전병원"의 전망을 그리 밝게 보지 않는다.

그는 교회에는 사제직뿐 아니라 ‘평신도 사도직’이 있으며, 특히 세상으로 문을 열고 나아가야 하는 교회는 양성된 평신도의 파견과 평신도의 다양한 역할과 직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교계제도와 사제, 주교의 역할이 폐쇄적으로 굳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교계제도의 직분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교회의 개혁은 바로 성직자 중심주의를 바꾸라는 주문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헌장”에 비춰 교회론의 전환, 교계 제도가 아닌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의 회복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주교직’이 있다.

박 신부는 “‘복음의 기쁨’에서 언급되는 주교직은 제도, 직제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교직과 주교라는 사람을 동일시한다. 주교가 곧 교회인 것”이라며, “그 가치관을 뒤집어놓은 것이 ”교회헌장“이다. 교황은 직제를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바꾸겠다는 것이고, 하느님 백성은 곧 교회 안에 있는 이들뿐 아니라 세상 곳곳에 있는 부상당한 이들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유럽교회다. 2015년 11월 가톨릭대학교 사목연구소 심포지엄에서 페터 노이어 신부(독일 뮌헨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는 유럽교회 상황에서 “평신도와 직무의 다양성”을 언급하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하느님 백성’이라는 개념으로 시작했던 것은 새로운 접근이었고, 이 출발점은 그에 맞갖은 결과를 낳았다”며, “유럽교회에서 평신도들의 다양한 역할을 배제한다면 오늘날 교회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유럽에서는 각 본당의 다양한 사목 협의체에서 평신도들이 다양한 책임을 나누어 지며, 첫영성체와 견진성사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 신학을 공부한 이들이 ‘평신도 사목자’로 실질적 본당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종신부제’직을 얻어 사회와 가정에서 활동하며 교회의 복음 선포를 보다 다양하고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동호 신부는 이와 관련해, “성직자는 ‘직’이 있지만 평신도는 아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성직’과 ‘평신도 사도직’이라고 해석해야 한다”며, “평신도들에게 각각의 ‘직’을 인정해야 머리인 그리스도와 그 지체로서 교회를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그는 “그러나 한국 교회는 평신도를 양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 울타리 안에 평신도가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제도의 가장 아래에 있게 되기 때문”이라며, “제도의 아래에 있는 평신도는 세상으로 나갔을 때, 교회로부터 권위를 받지 못한다. 교회가 해야 하는 것은 평신도 양성이고, 교회론 자체를 성직자 중심에서 바꿔, 각 지체로서 교회를 인정하고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물론 평신도의 자각도 필요하다며, “스스로 세상 성화의 소명을 가진 존재로 자각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것을 하지 않았고, 지금 구조에서도 할 수 없다. 사제들이 권한을 내려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진단했다.

또 박 신부는 야전병원으로서 교회/본당 실현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로 “교회론과 복음화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교회는 복음화를 본당, 교구라는 관할구역 안에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야전병원으로서 교회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성당에 와서 신앙을 고백하고 전례에 참여하고 그것을 따라 사는 삶만 생각하는 복음화는 사회적 차원이 배제되어 성당과 복음화를 동일시하고 세상과 복음화를 동일시할 수 없게 만든다. 복음화는 세속주의와 다른 세속화, 사회화이며, 이 세속화를 첫째 임무로 받은 것이 평신도다. 교회와 제도는 평신도를 격려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세계 성화 임무”라는 것이다. 

지난 겨울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리 더 나은 세상' 평신도 회원들. (사진 출처 = '더 나은 세상' 홈페이지)

“죽어야 하는 교회, 그러나 살아남은 교회가 되었다”

김용태 신부(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도 박동호 신부와 의견이 비슷하다. 

김 신부는 “(야전병원으로서 교회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사제들의 인식, 특히 교회 안에서 거의 전권을 행사하는 주교들의 인식”이라며, “여전히 세상과 괴리되어 무풍지대의 교회를 생각하고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 신자 수 증가를 복음화와 동일시하며, 사제들도 이러한 지향에 순응하고 신학교나 본당 교육도 그것에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에 관해 “선교와 사목, 신앙생활에 대한 각각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평신도 직분과 역할도 강조했다.

김 신부는, 사목이란 사제가 세례받는 신자들을 관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각 교구와 본당이 위치한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을 대리해 관리하는 것이며, “따라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속에서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수행하는 작은 교회로 살아감으로써 그 지역사회를 복음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목적 패러다임을 위해 김 신부는 “세상 안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다양한 사도직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한다”며, “정의평화, 민족화해, 생태환경, 농민회, 노동사목, 사회복지 등 교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도직을 통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서 역할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러한 사목활동을 통해 사목은 사제의 것만이 아니며, 성당 신자들을 위한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의식의 변화와 패러다임의 전환이 서서히, 그러나 실질적으로 구체화될 것이라고 희망을 드러냈다.

“박해시대 우리 교회는 세상 속에서 ‘죽어야 하는 교회’였습니다. 죽어야 하는 교회는 세상 속의 신자들에게 도피처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죽음을 각오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신자들에게 위로와 용기, 힘과 격려를 주는 곳이었습니다. 교회와 세상은 분리된 다른 세상이 아니었고,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이란 성당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전적인 투신이었습니다.”

김 신부는 “초기 교회의 이러한 모습과 달리, 시대가 변하면서 ‘죽어야 하는 교회’는 이제 ‘살아남은 교회’가 되었고, ‘살아남은 교회’는 ‘죽지 않아도 되는 교회’, 나아가 ‘죽으면 안 되는 교회’가 됐다”며, “‘죽어야 하는 교회’에서 선교란 사람들에게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참으로 올바르게 사는 법을 알려 주는 것이었고, 사목이란 죽음을 감수하는 그 삶을 독려하고 위로하는 것, 신앙생활이란 교회 안에서 위로와 격려와 힘과 용기를 얻고 다시 그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죽지 않아도 되는 교회, 죽으면 안 되는 교회”는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세상을 꺼리게 만들고 그 세상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며 담을 높게 쌓고,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며, 교회를 위험한 세상의 피난처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김 신부는 “교회의 지도자라 할 사제들, 특히 주교는 교회의 보호자 혹은 신자들의 보호자요, 관리, 감독자라는 의식 속에서, 신자들을 세상 위험에서 보호하고 교회를 발전시킨다는 사명감으로 더욱 안전하고 튼튼하고 힘센 교회를 만드는 데 주력해 왔다”고 말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 혹은 전쟁 중의 지하벙커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복음화해 하느님나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위험한 세상에서 피신할 수 있는 구원의 방주 혹은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 혹은 신앙생활이란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비추고 살맛 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때 묻지 않고 고고한 모습을 간직하고 살다가 죽어 천당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 1항.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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