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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자는 전능하지 않다는 고백으로부터[연중 기획] 야전병원으로서 교회, 가능할까? 2

‘야전병원’의 역할은 무엇보다 각 지역에 보루와 같이, 선교의 최전선에 있는 본당들에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의 본당은 대체로 그 규모가 커지면서 유지와 관리, 성사 중심의 활동, 성직자 부족 등으로 지역사회로 나아가기보다는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한계 지적의 목소리가 크다. 또 본당 내부적으로도 평신도들의 고유한 ‘직분’이 제대로 발휘되도록 양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뼈아프다.

예수회 오세일 신부는 교회가 ‘야전병원’이 되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한계로 성사 중심의 사목, 수직적 교회 구조를 들며, 교회 공동체의 내적 역동성과 사목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신부는 먼저 ‘성사 중심의 본당 사목’에 대해, “성사의 의미,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가 과연 누구인가를 다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한국 교회가 야전병원의 사명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하느님의 속성을 자비가 아니라 절대자, 전지전능으로만 봤을 때, 사목은 ‘업무’에 파묻히든가, 기업가 정신에 따른 성공주의에 매몰될 수 있다는 그는, “영적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것은 내가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주님을 바라보는 죄인’의 마음으로 주님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근본적 개방성과 진정성이 나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이런 맥락에서 ‘친교의 공동체’를 강조하며, “갑과 을의 수직적 공동체가 아니라 수평적 공동체 안에서만 서로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다른 이와 협력할 수 있다”며, “이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두가 지체가 되는 수평적 공동체다. 가장 소박한 자리에서 못하는 것을 청할 때,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통해 성령 안에서 식별하고 적임자를 찾아 맡길 때, 하느님 공동체가 이뤄진다. 단지 문제가 없도록 하는 데 치중한다면 친교와 쇄신의 길은 멀다”고 강조했다.

“고해소에 들어갈 때, 자비로운 마음을 갖지 못한 사제는 고해소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교황 프란치스코

“교회의 자기 인식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점으로 커다란 변화를 이룹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교계와 성사를 강조하는 교계제도가 우선됐지만, 공의회의 '교회 헌장'에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모두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친교 공동체가 강조됐습니다.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도 포함하는 하느님 백성 자체가 교회입니다.”

오 신부는, 공의회 정신으로는 모든 세상이 하느님의 자녀이지만, 제도의 범위 안에만 머물면 본당 신자들만 사목적으로 만나는 것도 버겁고 지치는 것이 당연하다며, “결국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압박을 느끼고 밖으로 나오기는커녕 게토화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와 제도교회의 이미지가 절충되면 좋겠지만, 제도로서 교회가 전통과 관행에 묶여 권위주의적 의사결정 과정, 즉 권력의 핵심 방식이 작동하면 폐쇄적이고 경직되며 외부에 갇힌 구조가 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성사 중심의 교회에서 ‘성사’가 무엇인가, 성사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다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당의 신자들에게 사제 1-2명이 성사를 집행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현실에서, 제도적 성사의 범주에만 머물면 밖으로 눈을 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 신부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가시적 성사이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인간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차원으로 전달하는 매개체”라며, “그런 본원적 의미보다는 제도교회 전통과 관행 안에서 성사를 집행하는 매너리즘에 빠지면 성사의 원래 지향점, 본질적 의미를 살리지 못할 위험이 생긴다”고 걱정했다.

또 “고해소에 들어갈 때, 자비로운 마음을 갖지 못한 사제는 고해소에 들어가지 말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들어, “이는 기계적 전통 관행을 정당화하는 구습에서 벗어나라는 요구”라고 강조했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역동하고 살아 있는 교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 “하느님의 자비”

오 신부는 기계적 전통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황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라며, “교황은 본인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 만큼 그 자비를 어떻게 교회를 통해 전달할까 평생 고민했다. 교황에게 자비는 단지 모호하고 추상적인 수식어가 아니라 모든 문헌, 특히 ‘자비의 얼굴’과 같은 메시지 문맥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자비가 일상에 임하도록 하라고 요청한다”고 말한다.

오 신부는 교황 메시지의 가장 큰 특징이자 핵심은 “하느님 자비의 얼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며, 자비를 빼놓고서는 교황의 메시지, 특히 야전병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회가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 역시, 사목적 현장의 자비, 하느님 백성에게 성사가 접근하는 방식이 자비”라며,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곧 자비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으로 파악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오 신부는 또 ‘자비’의 어원(라하밈)은 ‘자궁’에서 비롯됐고, 하느님의 자비는 바로 모든 것을 자신의 몸 안에 품고 키우는 여성의 자궁스러움을 말한다며, “남성적 권력구조 안에서 힘이 있기 때문에 힘없는 사람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일체화된 자궁 안에서 아이를 키우는 마음이 자비다. 교황은 이런 자비의 얼굴을 당신 사목에서 가장 중요한 첫 명제로 삼았다”고 말한다.

“하느님 자비에 뿌리를 두지 않으면, 무조건적 사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합니다. 정말로 기도할 때, 깨어 있을 때, 내가 아니라 하느님 중심일 때에만 하느님의 자비가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 자비가 필요한 다른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역동성이 야전병원의 사목적 논리가 아닐까요. 그리고 사목이 역동적이려면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오 신부는 야전병원이 이뤄질 수 있는 요건으로 ‘내적, 영적 역동성’ 그리고 ‘사목적 상상력’을 들었다.

그는 “사목적 상상력”에 대해, 새로운 사목의 지평으로 나아갈 문을 열지 않으면 해오던 것만 하기도 바쁘고, 대형화된 교회와 신자들을 돌볼 수도 없다며, “제도교회가 더 느슨하고 유연해져야 한다. 또 사목적 상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역사적 성찰을 통해, 왜 초기 교회와 달리 성직자가 많아진 오늘날 교회가 경직되고 위축되는지 성직주의의 한계와 폐해도 깊이 있게 대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목적 상상력의 전제는 '친교의 공동체' 

“물론 사목자에게 어느 정도 결정권은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집합지성의 시대에는 사목자가 혼자 기도하고 생각하고 만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소리에서 들리는 하느님을 함께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경청이고 그런 내적 긴장이 살아 있을 때, 진정성이 기반되고 성령이 인도하는 상상의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그는 “가부장적 위계가 아니라 성령 중심의 위계와 권위를 가져야 한다. 가부장적 위계 안에서는 확실하고 안전한 것만 지향하게 되고, 그러면 곧 상상력이 빈곤해진다"고 했다.

그는 “사목자들이 기도 안에서 만나는 하느님의 자비, 성령의 이끄심이 본인들의 두려움을 상쇄시키고 더 많이 채워 준다는 위로를 체험해야 하지만, 현실 사목구조에서는 상당히 어렵다”며, “기도하고 위안받고, 성령에게 청하며 상상을 넓히기에는 여유가 너무 없고, 결국 소진되고 상한다. 그리고 이럴 경우, 상처 입은 자신과 동반할 친교의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신부는 “공동체 안에서 심리적, 내면적 성숙과 함께 내맡길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며, “영적 돌봄의 경우, 수도자가 전담하거나 수사 사제들이 고해성사나 신앙상담을 맡고 평신도들이 교리를 가르치는 등 각각 책임을 나눠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권한을 나눠 갖는다는 생각에 길들여져 불편한 일이 됐다. 그럼에도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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