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86]

- 육아일기 시즌 1을 마무리하며

누구나 잘하는 게 하나는 있다고 하는 말을 위안처럼 여기고 살았다.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잘하십니까? 하는 질문에 답하고자 나름대로 애썼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때로는 웃으면서, ‘정말 하나도 없네!’라고 애써 명랑하게 답했는데, 그러고 나면 어느덧 슬퍼졌다. 겸손해서가 아니고 진심으로 잘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잘하는 게 있을까. 그런데 이번 생은 이미 너무 지나쳐 왔잖아.’ 하며 한탄하다가 ‘예전에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었더라? 왜 그걸 찾아내고 꽃피우지 못했을까? 내 능력은 언제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 하고 고심해 보다가 ‘아니면 혹시 처음부터 내게는 능력이 없었던 걸까. 이익! 누구나 잘 하는 것 한 가지는 있다는 그 말은 틀렸어! 다른 사람은 그렇다 해도(뛰어난 사람은 분명 있고, 그들은 당당하게 여기서 빠진다) 나는 아니잖아.’ 하고 삐쳤다. 

누구한테 삐칠 것인가. 과거의 나한테 삐치고 신(GOD)한테 삐치고 괜한 가족들한테 삐치지. ‘지금 여기 있는 나 때문이야.’ 라고 하면 비참해질 것 같아서 ‘너 때문이겠지.’ 하고 잘도 둘러댔다. 나는 늘 진짜 잘난 사람들과 또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잘난 거, 그거 잘 안 됐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가 되고부터는 죽어도 안 됐다. 아이들 곁에 더 가까이 있을수록, 아이들과 더 자주 부대낄수록 ‘난 좋은 엄마가 아니야.’ ‘나, 너무 못났어.’ 하고 느꼈다. 아이들과 잠깐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어땠을까?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거 덜 느끼고 살았을 텐데.... 현실은 그럴 수 없었고, 솔직히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매일매일 무작정 ‘좀 잘해 보자!’고 다짐하는 것뿐 매일이 반복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얼마나 잘 못한 게 많았을까. 얼마나 엉망진창일 때가 많았을까. 얼마나 화를 내고 후회할 때가 많았을까. 그리고 얼마나 포기하고 싶은 때가 많았을까. 

딱 잘라 말하면 메리를 낳은 뒤부터 욜라, 로를 낳고 키워 오는 오늘날까지 쭉 그래 오고 있다. 그렇게 어딘가 모자란 채로 살고 있다. 우리 메리한테 이런 말을 하면 “뭐야? 엄마! 엄마는 너무 비관적이야!”라고 톡 쏠 것이다. 나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라고 둘러대겠지만, 천하의 메리가 나 보고 뭐라고 한들 어쩔 수 없다. 이미 지난날들은 차치하고, 현재마저 아름답기만 한 경우가 있기는 있는지? 아, 사랑할 때?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런데 그 사랑도 깊어지면 아름답다고만 하기에는 사랑이 너무 크다.

메리가 따지면 나도 변명하겠다. ‘정말 모르는 거 아니지? 너희들이 싫다는 말이 아니고’, 또 ‘너희들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고’ 단지 ‘엄마가 가끔씩 반성하며 살았다는 말이야. 엄마 모습을 자주 부끄러워했다는 말이야. 너희들 덕분에 그랬어. 그래서 참 고맙지.’ 라고 말이다. 떠올려 보면 일부러 잘 못하려고 한 적은 없었는데.... 그래도 잘 못했다면 몰라서 그랬다. 아니, 사실 알고도 잘 못한 것이 더 많다. 그건 아이들에게 계속 사과하고 싶은 부분이다. 왜 그렇게 흥분하고 조급해 하고 아이에게 감정을 쏟아냈는지. 똑같은 잔소리, 독촉, 윽박지르기, 등판 때리기, 머리 쥐어 박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들, 상처 입은 얼굴로 서럽게 우는 아이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아이들, 의기소침해지는 아이들, 구석으로 가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려는 아이들.... (물론 메리는 이 와중에도 따박따박 반항했다. 그런데 그만큼 더 큰 상처를 안고 있었을지도.) 

욜라, 메리, 로의 한때. ⓒ김혜율

그런데 다시 한 번 내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전날과 똑같은 잘못 말고 다른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잘못된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는 것이지 이제 와서 그때의 잘못을 탓하고 심지어 말끔하게 잘못을 건너뛰겠다는 건 허황된 꿈과 다르지 않다. 방학의 끝 무렵, 밀린 방학숙제를 앞에 두고 한숨을 쉬며,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방학 첫날로 돌아간다면, 방학숙제부터 하고 놀게요. 다시 방학 첫날이 되게 해 주세요.’ 하고 비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는 말이지.

그동안 가끔이나마 육아일기로 기록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흘러가는 시간들을 의무적으로라도 곱씹게끔 해 주어서 감사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불충분한 전업맘의 삶도 대전환을 맞게 되었으니! 육아휴직을 끝내고 직장에 복귀를 하면서 이제 나는 그동안 감히 상상조차 어려웠던 워킹맘이 된 것이다. 그러자 전업맘으로 살 때는 못 느꼈던 행복이 곁에 도사리고 있다가 내 손을 와락 잡아 주던가? 그럴 리가! 어떤 삶이든 예외 없이 불평할 거리는 넘쳐나고 우린 종종 다른 삶을 부러워한다. 설령 그 삶이 직전까지 자신이 아등바등 벗어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더라도! 그래서 말인데 정말로 이전이 좋았다. 직장에 나가지 않고 내 시간을 쓰던 날들이. 비록 아이들과 씨름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이들은 나와 함께 자라지 않았던가. 나는 가만히 있었어도 뭔가를 해내지 않았던가. 전업맘으로 살았던 그 시간들은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온전한 엄마였던 그날이 좋았다.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도 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다. 다시 나갈 직장이 있는 입장에서 배불러서 하는 소리가 맞다. 그 가운데 살고 있을 때는 암만 발버둥을 친들 이렇게 쉽게, 진심을 다해 ‘이건 이렇고, 그건 그러하니라.’ 라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와서야 내가 온전히 엄마로 집중하면서 산 6, 7년여에 이르는 날들이 그간 농담인 듯 자조하며 말했던 ‘잃어버린 날들’이 아니었다고 고개 숙여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과거를 더듬으며 내게 닥친 현재의 의미는 차마 깨닫지 못하고 지나간다. 지금도. 참으로 어리석지만 그마저도 나에게는 쉽지가 않다. 지금의 내가 직전의 나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감히, 나와 비슷한 뭇 엄마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그네들이 모르신대도, 어쩌면 동의하지 않으신대도, 저는 그렇더라구요, 그런 거 같았어요. 하고 조심스럽게, 애원의 눈빛을 담아,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려 본다.

‘엄마! 엄마라는 자리에 서 있는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바로 거기 서 있네요.’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당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부끄러워하셔도, 아니라고 도리질을 하셔도, 그렇습니다. 당신은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어떠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라서 당연히 그런 것도 있습니다.’ ‘틀리지 않았어요. 당신은 아마도 옳았습니다.’ ‘설령 틀려도 너무 슬퍼하지 맙시다. 어떤 면에선 우리 모두 틀리며 사니까요. 누구도 예외 없이.’ 그리고 하나만 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당신, 그것 하나만큼은 잘해내고 계시잖아요. 놀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 애 많이 쓰셨습니다. 정말로 잘했어요.’

거참, 웃기지도 않다. 이런 말을 나한테, 그리고 누가 들으라고 한다니. 낯간지럽긴 해도 내가 이곳 ‘육아일기’라는 지면에서 엄마로서 울고 웃었던 시간들을 통해 진심을 다해 느낀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기도 하다.

가수 이상은의 ‘언젠가는’ 라는 노래가 참 좋았다. 리듬만, 가락만 좋은 게 아니라, 그 노랫말이 좋았다. 인생이 그러하다는 것을 귀띔해 주는 그 노래.

이상은은 짧은 커트머리에 청멜빵바지나 오버핏으로 떨어지는 보이시한 옷을 입고 긴 다리를 건들건들하면서 무심하면서도 짙은 감성이 묻어나는 음색으로 이렇게 노래했다.

 

"안녕~ 또 만나요!" ⓒ김혜율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로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이하 생략)

 

나는 이 노래에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살았다. 하긴 뭐, 노래를 부른 장본인인 이상은도 그렇게 살았다고 하면 할 말 없다. 암만 조심해도 막상 ‘뒤돌아보’았을 때 꼭 흘린 것들, 놓친 것들은 있게 마련일 테니까. 그런데 앞으로 더 이상 농땡이가 통하지 않는 워킹맘이 되고서는 나도 예전과 좀 달라지려나. 하지만 안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었지. (아마도 나는 그 전처럼 살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래서 또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무릎을 치겠지만, 그래도 브라보! 건배를 하자. 이 지긋지긋한 날들에게. 언젠가는 축복이고 언젠가는 그리움 될 오늘들에게.

P.S: 지금까지 시즌1 육아일기 읽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육아일기 시즌2라고 해도 별거 없고 그저 그렇겠지만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끝내 굴하지 않고 써 보겠습니다. 이번엔 특히 부지런을 가미할 생각이에요.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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