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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병원 - 교회와 본당을 뿌리부터 다시 생각하라병들지 않으려면 나가 봉사하라
2014년 8월 16일, 한국에 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여자아이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 (사진 출처 = americamagazine.org)

(블레이즈 수피치 추기경, 시카고 대교구)

호르헤 베르골료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의 지향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는 데 겨우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2013년 2월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사임하고)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앞둔 그 며칠간, 로마에 모인 추기경들은 (정해진 절차대로) 동료 추기경들이 성령께서 교회를 어디로 부르고 계신지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정해진 연설들을 했다. 너무 길게 한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너무 짧았다. 베르골료 추기경은 이 콘클라베에 앞선 그의 담화에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곧 교황이 될 이 사람은 이렇게 설명했다. “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문에 서서 두드린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어, 이 말은 예수님이 문 밖으로부터 두드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베르골료 추기경은 이 이미지를 뒤집고는, 그가 나중에 하이메 오르테가 추기경에게 준 발언 문안에 따르면, “예수님이 안으로부터 문을 두드리고 있어서 우리가 그분을 밖으로 나오게 할 시대”가 아닌가, 동료 추기경과 전체 교회가 생각해 보기를 요청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교회에 묶어 두고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면, 교회는 자기를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는(self-referential) 존재가 되고 그러면 병들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베르골료 추기경에 따르면, 교회는 자신의 밖으로 나가 주변부로 나아가서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섬겨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복음화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교회에 맡겨진 사명이다. 그리고 거의 바로 이때, 베르골료 추기경은 자기가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와 한 뜻밖의 인터뷰에서 밝혔던, 가톨릭 교회를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한 “야전병원”이라는, 심오하고도 참으로 멋진 새 모습으로 만들려는 그의 계획을 내비쳤던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를 “야전병원”이라고 부름으로써 교회 생활을 근본적으로 고쳐 생각하기를 우리에게 촉구한다. 그는 상처 받은 이들에게 우선을 두라고 우리 모두에게 도전하고 있다. 이는 다른 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우리 자신의 필요보다 앞세운다는 뜻이다. “야전병원 교회”는 “자기-기준 교회”와 정반대(antithesis)를 이룬다. 이 용어는 상상력을 촉발하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의 정체성, 사명과 우리의 삶을 함께 묶어 재고하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군의관이 있다 해도 부상자가 그들을 만날 수 없으면 군의관은 쓸모가 없다. 붕대를 가진 사람들이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간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자기에게 오기를 자기 사무실에 앉아서 기다리지 않는다. 야전병원에서는 지금 당장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병원에서 갖추고 있는 모든 자원이 무엇인지 모아 정리한다.

교회가 야전병원이 되면, 우리가 우리의 본당 공동체 생활을 보는 방식을 뿌리부터 바꿀 것이다. 같은 동네에 살며, 공통의 인종적 배경이나 사회적 지위를 공유하고, 미사에 정기적으로 가거나 본당에 교적을 둔 신자인 한 무리의 사람들로 규정되는 대신에, 우리는 다른 이의 고난을 나누고 동참함으로써 치유하는 일을 맡아 하는 이들로서 우리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창조적 방식들을 찾아내는 데 우리의 재능을 이용하고 나누는 공동체다. 예수님이 자신의 직무를 맨 처음에 시작할 때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게 하셨다(루카 4,18)고 선언하면서 이 진리를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는 우리에 관한 이 점을 이미 알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 주시는 그리스도의 도전이다. 즉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위한 야전병원이 되라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런 기쁜 소식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먼저 청하기를 기다리며 뒤로 물러앉아 있지 말라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서, 억압받는 이들이 있는 주변부로 여행해 가라는 것이다. 부상당하여 전장에 쓰러져 있는 이들과 함께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에 맞는 그것이다. 근본적이다. 자비는 늘 존재한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에게 이 진리를 계속해서 되새겨 주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뿌리로 우리를 되돌려 놓아 주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언제나 늘 이 도전이 함께 있어 왔음을 우리가 깨닫도록 도와 주고 있는 것이다.

 

기사 원문: https://www.americamagazine.org/faith/2017/12/29/cardinal-cupich-pope-francis-field-hospital-calls-us-radically-rethink-church-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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