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85]

다음 날, 대회장으로 시간 맞춰 가느라 새벽부터 서둘렀다. 우리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곳이다. 남편이 가방에 물과 바나나, 과자류를 담는 사이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복싱 물품을 챙겼다. 때릴 때 내 주먹을 보호해 주는 손목 붕대 한 묶음, 이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마우스피스(착용 순간 입이 튀어나와 버려 한층 못생겨지는 마성의 장비), 암만 뛰어다녀도 발바닥이 안 아픈 복싱화(짧은 다리를 강조해 주는 디자인으로 신자마자 벗고 싶어지는 애증의 신발), 타이츠와 티셔츠, 그밖에 필요한 기타 등등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물론 이것들은 시합을 위해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복장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것이다. 복싱 선수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하다못해 거의 없는 나지만, 이런 나도 대회를 코앞에 두고는 앞날을 걱정한다.

대회장에서 내 상태를 간파한 어떤 실력자가 한번 붙어 보자 하며 도전장을 내밀면 어쩌지? 요 며칠 잘 먹었는데 혹시 몸무게 초과로 실격되지는 않을까? 이름이 호명되어 링 위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다리가 풀려 심사위원 이하 만인들 앞에서 자빠진 채 열 셀 동안 일어나질 못하더라도 과연 금메달은 나의 것일까 하는 걱정들 말이다. 뚜드려 맞을 각오를 하고 대회에 출전하는 참된 선수들이 듣는다면 정말로 웃을 일이다. 하지만 나는 관장님께 문의 전화를 하거나, 실제 경기 중계를 찾아보거나, 체중조절을 하는 대신 무지로 비롯된 망상과 불확실함이 가져다 주는 두려움을 차라리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체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어떻게 될까? 답을 알려면 문제를 풀어 보면 된다. 그러자면 일단 대회장에 가 보는 것 말고는 별 도리가 없겠다.

전날에 새벽 기상을 예고한 덕분인지 아이들은 큰 저항 없이 일어났다. 대지에 덮여 있던 검은 장막이 걷히며 푸르스름한 커튼이 옅은 안개처럼 드리워지는 시각, 잠에서 깬 아이들을 소처럼 밖으로 내몰았다.

“가자, 가. 어서! 신발 신어. 늦으면 엄마 복싱대회 못 나간다.”

아이들은 졸린 가운데서도 ‘엄마 복싱대회’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신발을 신었다. 세수도 안 한 얼굴들이 새벽녘 희미한 빛에 반짝거렸다. 반면 나는 우중충한 얼굴로 아직 어둠에 잠겨 있는 집 안을 돌아보았다.

“엄마, 아빠....”

어제 마침 인근 도시에서 열린 가수 나훈아의 콘서트를 보러 가셨던 부모님이 저녁 늦게 큰딸네 집에 들러서 하룻밤을 주무신 것이다. 그런데 새벽 난리 통에 덩달아 일찍 잠에서 깨신 부모님. 큰딸네가 생각보다 너무 시골에 사는 관계로 오실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시는 부모님. 좌우 울타리 없는 낭떠러지 좁은 논길을 지나오며 차바퀴가 빠질까 봐 늘 진땀을 흘리시는 부모님. 어제는 특히나 가까운 마트 찾아 먼 길을 돌아 운전해 오시느라 콘서트의 여흥마저 다 소진하셨던 가엾은 부모님이셨다. 하지만 나는 이튿날, 그런 부모님을 저버리고 아침 일찍 집을 나가고 있는 것이다. 복싱대회에 굳이 꼭 나가기 위해. 아니, 그놈의 복싱 금메달 때문에.

“엄마, 아빠! 아침밥 (알아서) 드시고, 설거지는.... 절대 하지 마요! 좀 쉬시다가 (알아서) 가세요.”

부모님은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커다란 식량가방과 복싱가방을 차에 싣는 사위와, 세 방향으로 제각각 움직이는 아이들과, 쓸데없이 비장해 보이는 딸을 근심 어린 눈길로 쳐다보셨다. 차가 출발하자 사이드미러 저 안쪽으로 부모님이 점점 멀어져 간다. 부모님은 휘이 휘이 마당을 둘러보고 계셨다. 잡초가 드문드문 올라오는 마당이었다.

자, 이렇게 된 이상 뒤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리자. 복싱 체육관에서는 봉고차가 새벽 다섯 시 출발이라 했는데, 따로 가는 우리는 아침 7시에 출발을 하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대회 시작 한 시간 전까지 혈압과 몸무게 체크를 해야 당일 출전 기회가 주어지는데, 늦게 가서 시합도 못 하고 문 앞에서 돌아 나오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복싱 뒷바라지에 열심인 남편, 잠도 자다 말고 따라와 주는 아이들과 딸네 집에 홀연히 남겨진 부모님의 선한 얼굴이, 대회장으로 가는 내 조급한 마음 위에 얹혀 있었다.

오전 8시 40분. 다행히 시간 안에 도착했다. 비가 곧 쏟아질 듯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이었지만 제2회 충남생활복싱대회가 열리는 T고등학교 체육관 주변만큼은 아마추어 복싱인들이 내뿜는 열기로 달달 달구어져 있었다. 선수들은 무리 지어 섀도 복싱을 하거나 줄넘기를 하면서 몸을 풀고 있었다. 분명 이 중에는 일등도 있고 꼴등도 있을 테지만 시합 전에는 모두 다 일등 후보처럼 보인다. 그런데 시합에 따라온 엄마나 이모, 여자친구는 있는데 시합하러 온 여성은 어디에 있는가. 대진표랄 것도 없었던 삽십대 중후반 여성-원더부 50킬로 체급의 위상이 떠올랐다. 대진표에 따르면 충남지역 해당 체급 유일한 출전자인 ‘그녀’는 뛰어난 복싱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와 대적할 이가 없는 관계로 부득이 시합을 하지 않고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어 있다. 그렇다. ‘그녀’가 바로 나 아닌가. 나는 부쩍 용기를 내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체육관 안 수많은 인파 가운데서 관장님이 튀어나오셨다. 보통 때 체육관에서 뵙던 따분하고 권태로운 얼굴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온몸 가득 활기에 차 있었다.

“오셨어요? 아침 일찍부터 고생하셨죠? 아하, 아이들도 같이 왔네요? 안녕? 안녕! 하하핫. 막내가 몇 살이죠? (네 살이요.) 와아, 많이 컸다. 어허허. 어디 보자.... 애들이 앉아 있을 데가.... 저기 저 앞자리로 가세요. 그리고 이거. 여기에 이름 쓰시고 저 앞에 혈압 체크부터 하세요.”

관장님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 보니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 두 명이 좁은 책상 위에 수동 혈압측정기 두 대를 놓고 무료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하얀 가운 중 한 명이 내 혈압을 재더니 통과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이럴 때 이의를 제기하는 버릇이 있다.

“저, 선생님. 제 최고혈압이 지금 000라 하셨는데 이 정도면 저혈압 아닌가요? 저혈압이 더 위험하다던데...”

그러자 하얀 가운 둘이 동시에 ‘아뇨, 정상입니다.’하고 복창했다. 이런, 내가 너무 정상인가 보구나. 하긴 여기서 이런 상담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 다음 관문인 체중측정실로 향했다. 체중 측정은 밀실에서 이루어졌는데, 여차하면 입고 있는 옷을 벗어서라도 무게를 맞출 수 있게 1차 체중계와 2차 체중계, 그리고 옷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 등이 눈에 띄었다. 혈압보다 더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체중도 통과란다. 끼얏호.

‘이제 됐어. 다 됐다고! 금메달까지는 탄탄대로야!’

하지만 실제 난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대회 시간이 임박해 오자 대회장은 체육관별 선수진과 그들의 코치, 가족들로 북적댔다. 충남 각지에서 난다 뛴다 하는 복싱체육관이 다 모인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이번 대회는 개인별 실력을 가리는 시합인 동시에 체육관의 이름을 건 단체전이기도 했다. 나는 운동하면서 관원들과 내외를 하고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에 매진했기 때문에 우리 체육관 소속 선수가 누군지 잘 몰랐다. 하지만 상대는 나를 알아보는 데다(남자 관원들이 다수인 체육관에 몇 없는 여성 관원이라 그렇겠지) 다행히 체육관별로 색깔과 재질과 광택이 조금씩 다른 선수복을 입은 덕분에 선수들과 무리 없이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촬영용 선수복을 갈아 입고 나자 문제가 생겼다. 어쩐지 사람들이 ‘오늘 시합에 출전하는구만. 어디 얼마나 실력이 좋은지 볼까?’하고 쳐다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복 위에 웃옷을 걸치고 재빨리 걸어 다녔지만 옷 아래로 드러난 빨간색 선수용 반바지는 감출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시합이 끝날 때까지 최대한 움직임을 적게 하면서 남편과 아이들 옆에 앉아 있기로 했다. 나중에 이름 부르면 잠깐 나가면 되겠지. 사진 찍을 때까지는 참자. 나는 금메달을 따러 온 게 아니라 ‘가지러’ 온 사람이니까.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링 위에 양측 선수가 올라가면 사각 링 양쪽으로 소속 체육관의 지도자가 자리 잡는다. 그들은 시합을 조용히 관전하는 것이 아니라 고함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면서 시합 중인 선수를 코치하고 독려한다. 그리고 한 라운드와 다음 라운드 사이에 링 위로 뛰어 올라가서 선수를 돌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선수 땀도 닦아 주고 물도 먹여 주고 반바지에 숨도 불어넣어 준다. 한 손으로는 선수의 어깨를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반바지 허리춤을 잡고 고무줄을 늘이듯 당겼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반복하는 이 ‘반바지 숨’은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진정시키는 데 사용하는 것 같았다. 복싱 시합을 처음 보는 나와 아이들, 그리고 남편은 경기장의 모든 광경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예상했지만 약간의 부작용도 나타났다. 아이들이 갑자기 주먹질을 시작한 것이다. 상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울고, 성내다가 앉은 자리에서 자빠지고 난리가 났다. 그러면서 틈틈이 내게 물어 댔다.

“엄마는 언제 (시합)해?” 하고 욜라가 묻고, 메리가 묻고, 로도 따라 물었다. 그때마다 “좀 있음 할 거야. 기다려 보자.”하거나 “몰라. 엄마도 몰라.”하고 대답해 주면서 눈을 부릅뜨고 복싱시합을 관람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그렇게 오전 10시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20분간 있는 점심시간도 건너뛰고(점심시간 마치고 바로 내 순서일지 몰라서 점심 먹으러도 못 가고) 그대로 기다리기를 장장 5시간. 분명히 관장님은 일찍 끝난다고 했는데... 링 위에 올라가는 진짜 선수들 챙기느라 바쁜 관장님한테 어찌된 일인지 묻는 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언젠간 끝나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도무지 끝이 안 난다. 우리 체육관 헤비급 선수가 아직도 시합을 안 하고 기다리고 있는 걸 보니 몸무게 상으로도 대회가 끝나려면 한참 더 남은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T시 시내관광이라도 하고 올 걸, 이제 와서 놀러 나가면 이름 부르는데 자리에 없다고 금메달 안 주면 어떡할 건데. 먹을 거라고는 과자뿐인 식량가방에만 의지해서 자리에 앉은 채 아이들을 달래 가며 몇 시간이고 복싱시합을 보는 우리 가족은 누가 보면 복싱에 한 맺힌 사람들인 줄 알거다.

얼마나 집중적으로 관람했는지 나중엔 경기 흐름이 훤하게 보이고, 선수들의 맷집력을 간파하였으며, 각 체육관별 관장님의 코칭 스타일과 관객들의 응원 점수에 대해 남편과 토론을 할 정도였다. 남편은 ‘나 이젠 생활체육 복싱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고 점잖게 말했지만 나는 복싱이라면 신물이 날 것 같았다. 어디 한 군데 얻어맞지도 않았으면서 정신이 점차 혼미해지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속으로 자꾸만 되뇌었던 말. ‘집에 가고 싶다.... 배 고프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기다린 보람도 주고 싶고, 모처럼 오셨는데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헤어진 부모님 얼굴도 생각났다.

시간이 어느 정도 더 흘렀을까. 남자부 시합이 모두 끝나고 여자부 시합이 진행되어 가는 중에 코치님이 무언가를 한 아름 가지고 와서는 내게 주고 가셨다. 얼떨결에 받아 보니 아니, 이건! 내 이름이 적힌 상장과 그토록 바라던 금메달이 아닌가! 코치님은 다른 관원들에게도 경기 성적에 맞는 메달과 상장을 나누어 주고 계셨다. 아직 대회가 안 끝났지만 대회가 너무 늦어지는 관계로 상장 수여식은 약식으로 갈음한다고 하는 것 같았다. 마치 개업식을 한 가게에서 수건을 나눠 주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고 사적으로 전해지는 상장과 메달이라니. 아, 복싱 금메달에 이르는 길은 그토록 험난했으나 그 끝은 이토록 산뜻하구나. 나는 링 위로 올라갈 필요도 없었고, 선수복도 입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뭐, 어쨌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왜 시합도 하지 않고 상을 받냐고 의아해 하는 아이들에게는 ‘대진표의 그녀’ 이야기를 들려 주며 엄마의 강함을 주지시켜 주었다. 목에 메달을 걸고 사진도 몇 장 찍은 나는 금메달리스트로 복싱대회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이후 금메달의 행방을 아는 이는 없다. 욜라가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린 것으로 안다. 운이 좋으면 아마도 어느 서랍장 구석에서 홀로 빛나고 있을 것이다.

P⦁S: 내가 이 글을 왜 썼냐면 금메달 사진만 보시고 오해하여 감격해 주시는 분들께 진실을 밝히고 싶어서였다.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 만신창이가 된 나를 보아 주신다면 이게 금메달이지 별게 금메달인가 하고 생각하실 것도 같다.

충남지역 복싱대회 금메달리스트. ⓒ김혜율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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