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로마의 자비', 페터 파울 루벤스. (1630년경)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명화(名畵)가 말하기를

- 닐숨 박춘식

 

루벤스(Rubens)의 ‘시몬과 페로’를 처음 만났을 때

여자의 젖가슴은 뽀얗게 탐스럽지만, 저 영감은 누구야

웬 세상에 이런 그림도 있구나 했습니다

연유를 듣고서, 아형(餓刑) 선고를 받은 죄수 아버지에게

자기 젖을 물리는 딸이 도리어 경이롭게 보였습니다

명화(名畵) ‘시몬과 페로’는

‘카리타스 로마나(Caritas Romana)’라는 이름을 받으면서

우리에게 생명은 곧 사랑임을 느끼도록 이끌었습니다

 

모든 눈이 당신께 바라고,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때에 주십니다. (시편145,15)

 

너무넘 외로워 허공을 마시던 초여름

저는 ‘카리타스 로마나’ 그림 안에서

무극 사랑이신 빵과 포도주를 보았습니다

그날, 저는 몹시 허기진 죄수 노인이 되어

감실을 향하여 무겁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6월 4일 월요일)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라는 명화는 가끔 ‘루벤스의 <로마의 자비>’라는 표현으로도 기록됩니다. 옛 로마에 시몬이라는 노인이 큰 죄로 감옥에 갔는데 '밥을 주지 마라'는 처벌로 사경을 헤매는 것을 알고, 면회한다며 찾아간 딸이 젖으로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려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간수가 위에 보고를 하자, 딸의 효심을 갸륵하게 여겨 아버지를 석방시켜 주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여러 화가들이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이 루벤스의 그림에 더 깊은 감동을 느꼈는지, 어느 자료에는 아예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카리타스 로마나’는 라틴어이고, 영어로는 ‘Roman Charity’라고 적습니다. 이 그림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느낄 수 있는 명화입니다. 쇠약한 노인이라도 즉 거의 죽어가는 노인이라도 그 생명은 말할 수 없이 숭고합니다. 감옥의 아버지에게 음식을 가져갈 수 없던 상황에서 딸은 아기를 먹이는 젖으로 아버지를 죽음에서 구하려고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어떤 죄인이든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묘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며, 그리고 주님의 성체 성혈 신비는 곧 생명의 신비이고 신앙의 신비이며 사랑의 신비임을 깊이 묵상할 수 있는, 뜨거운 명화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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