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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승천 : 정의로운 사랑의 약속[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주님을 향하여', 폴란드 어느 전시회에서. (이미지 제공 = 박유미)

끝난 듯 보이는 곳에서 더더욱 확장되는 사랑으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부활시기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부활하신 후 40일 주님 승천에 이어 승천으로 이별한 후의 여운,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하신 말씀에 머물러 오신다는 말씀을 믿고 있는 "들으소서"(Exaudi) 주일이다. 부활 40일 후인 주님 승천 대축일은 원래 목요일이지만 그리스도교 문화가 아닌 한국 교회에서는 일요일로 이동해서 주님 승천을 경축한다. 그래서 부활 제7주일, "들으소서 주일"이자 "홍보 주일"을 함께 기념한다.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승천하시기에 앞서 세상 끝까지 복음선포의 사명을 주신 주님 말씀을 새기며, 오늘날 특별히 현대의 다양한 홍보매체들을 복음선포에 적극 활용하며 홍보매체들이 올바로 사용되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날로 주님 승천 대축일 후 첫 주일(부활 제7주일)을 홍보 주일로 제정했다. 

구원사의 맥락에서 '부활 승천'.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신 부활 예수는 바로 천상 아버지 곁으로 가지 않으시고 40일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당신이 전하신 복음을 이해하도록 하시고 당신이 떠나고 조력자가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며 그들의 소명을 당부하시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셨다.(사도 1장) 40일간 제자들과 늘 머무셨던 것도 아니다. 오직 사랑으로 당신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슬픔과 절망과 좌절로 용기를 잃고 비통하게 걸어가는 제자들에게, 박해자들 가득한 예루살렘 가운데에서도 제자들과 함께 모이고 식탁을 나눌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곳에 함께 모여 두려움으로 모든 문을 닫아 걸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다시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일깨우셨다.

선택한 삶을 살아가도록 놓아 주면서도 당신과 함께했던 주요한 순간들을 다시금 일깨우고 깨우치는 시간,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소명을 전하며 그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 구원의 완성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자 맏이의 성전 봉헌처럼 하느님께 봉헌되는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 40. 새 땅에 들어오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보낸 이스라엘 백성의 시간, 40일간 걷고 단식했던 엘리야와 요나의 외침에 따라 40일간 단식하고 회개했던 니네베, 그리고 공생활 시작 전 예수의 40일 광야 단식이라는 성서 전통에 따라, 인간이 되어 함께하시며 우리의 부족함과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던 주님이 보여 주신 사랑의 시간. 이제 인간으로서 머물렀던 땅을 떠나 천상에 오르시는 것을 제자들이 직접 보고 체험함으로써 보내 주신다는 도우심의 힘으로 자신들도 이렇게 천상에 오를 수 있음을 새길 수 있도록 하셨다.      

성서의 기록은 있지만 원래 초대교회부터 승천 축일을 기념했던 것은 아니다. 유대인의 전통대로 오순절이 고유한 축일이었다. 성령 강림이 있기까지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그 약속을 되새겼던 그 시간의 의미를 돌아보며 4세기부터 그리스도 승천을 경축하였다.

'모든 이가 네게 오게 될 것이다' 라는 글씨가 있는 예수 승천 강론대. 리베 대성당. (1597) (사진 제공 = 박유미)

하지만 그 모든 의미를 되새긴다고 하여도 사랑을 위해 떠나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약속을 믿고 이해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 자신을 보아도 아직도 해마다 새롭게.... 늘 함께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신 주님, 게다가 금년의 복음이 아니고 요한 복음의 말씀이기는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떠나가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라고까지 가르치시며 떠나신 분의 마음을 대한다.

어느 해엔 "당신이 떠나심으로써 성령을 보내 주신다"는 말씀에서 우리의 부족함을 넘어 온전한 사랑으로 성장하도록 성장으로 이끄는 사랑을 묵상하기도 하고, 어느 해엔 부활하시어 승천하시기까지, 특별한 준비의 기간을 뜻하는 40일이라는 숫자로 그 시간을 대하고 기록했던 루카 복음사가의 기록처럼, 아직도 그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마음에 담아 두고 후에 다시 새겨 보며 깨우칠 수 있도록 준비했던 제자들의 경험을 그려 보기도 하고....

'주님 승천', 가장 오래된 표현 중 하나인 상아판. 밀라노 또는 로마. 뮌헨 바이에른 박물관 소장. (400년경) (이미지 제공 = 박유미)

그런데도 아직 늘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인간적으로 '떠남에 담긴 사랑'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떠나시며 전하신 '정의, 사랑의 정의'라는 의미가 늘 새롭고 신선하게 마음에 울려 오며 새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요한 16,7-8)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사랑의 정의로써 제자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까지 누구에게나 함께하시며 이어오는 같은 기쁨을 전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시는 예수님,  모든 것 안에 사랑으로 살아 움직이는 협조자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며 떠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느끼게 해 주는 구절이다. 시간과 공간을 떠남으로써 오늘, 모든 순간에 함께하시는 존재로서 그리고 인간으로 오시어 첫 번째로 하늘에 오르심으로써 우리의 오늘 안에 언젠가 이를 영원함을 담아 주는 그 사랑의 뜻이 '하느님의 정의'에 담겨 있음을 함께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천사들이 받치고 있는 만돌라 안의 그리스도', 안드레아 만테나. (1461년경)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성령을 보내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도록 제자들을 이끄신 주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세엔 하늘에 천정을 내고 예수님의 모습이 오르면 모든 이에게 은총이 내리는 비가 오도록 하기도 하고 악마의 형상이 쓰러지기도 하며 자연에 나가 주님 승천을 기리는 행렬을 하기도 하고 주님 승천부터 성령 강림까지 성령이 오시기를 청하는 9일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육화되어 오신 주님의 인성이 몸 그대로 천상에 오르시어 온전히 당신의 신성으로 되돌아가심을 기념하는 날, 그리고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우리 하나하나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심을 기념하는 날!“

어느 해 마음에 남았던 주님 승천일의 의미에 이제 하나 더 보태서 '이제 성령이 오시면 땅 끝까지 당신을 전하는 증인이 되리라'고 떠나시며 하신 약속을, 당신이 오르신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지 말고 확실하게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리며 각자 자신들의 삶 안에서 그분을 증거하라 하심을 되새겨 보는 날!

그렇게 저 하늘 위가 아니라 하늘 넘어 더 높이 더 넓게 우리 모두의 삶을 덮어 주시는 사랑으로 제자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확장된 날로 주님의 승천일을 담게 된다.

"사랑이 끝난 (듯 보이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사랑이 피어나는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봄길', 정호승)

'주님 승천'.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우리가 그렇게 걸어가도록 앞서 걸어가셨던 분!
계절엔 늦은 감이 있지만 주님 승천하시며 약속하고 가르치신 말씀대로 당신의 사랑을 확장해 하는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앞서 가셨던 그분의 모습을 느낀다. 

시는 계절에 늦은 감이 있지만,
"주님을 향하여!" 그림처럼 눈은 맑고 싱그럽게 그분의 사랑을 펼쳐 가는 5월을 바라보며, 담겨진 사랑만큼 확장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확장해 가는 느낌으로 오늘에도 보이지 않지만 당신 사랑과 평화의 힘이 멀리 널리 높이높이 마음 나누어 전해지고 펼쳐지기를 바라며 오늘을 맞는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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