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4월 29일(부활 제5주일) 요한 15,1-8

부활시기는 우리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은 곧 생명을 주는 일이라고 알려 준다.

연대와 결실

성서에서, 포도밭은 이스라엘 백성을 일컫는 이미지다. 포도밭의 이미지는 그들의 일상경험과 부합된다; 그래서 포도밭과 포도나무는 예수의 동포들을 표현하는 직접적이고 분명한 언급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포도밭은 하느님의 참다운 백성에 관한 것이다.(요한 15,1) 예수와의 연대는 열매를 맺는 조건이며,(15,2) 이 결속은 하느님의 백성을 정의해 준다. 포도나무 없이, 가지들은 말라 죽는다.(15,4.6) 생명은 몸의 각 지체가 기능을 다할 때에야 순환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바오로의 이 주제를 잘 알고 있다.

오늘의 복음보다 두 장 앞에 있는 13장에서, 요한은 발을 씻는 장면을 서술하는데 그것은 성목요일의 말씀에 있다. 이 장면의 깊은 의미는 어떤 외적 정화가 아니다. 단순히 제자들의 발에서 먼지를 털어 내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태도가 보여 주는 것은 또한 겸손, 섬김, 그리고 사랑이다. 그것은 심연의 정화다. 이 장면에서 물은, 제자들로 하여금 빛과 사랑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하는 상징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어둠과 동료애가 부재한 세계를 떠나는 것이다. 주님과의 결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발견한 사람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섬기는 일에서 자신을 새롭게 찾은 사람들은 깨끗하다. 이처럼 말씀은 우리를 정화하고,(15,3) 우리를 안으로부터 변화시키며, 다르게 만든다. 말씀을 믿는 것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두 가지 측면을 분리시킨다면 야고보 서간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두 마음을 품은 자”가 될 것이다.(야고보서 1,8; 4,8) 제자들은 예수의 메시지와 증인들을 환영할 만큼 깨끗해야 한다.

깨끗한 사람만이 열매를 맺는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행동과 말로

깨끗해지는 것은 과정이다. 그래서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의 가지를 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도록.(요한 15,2)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의 결실로 영광을 받는다;(15,8) 그분의 뜻은 우리가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단지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에 나타난 진리다.(요한1서 3,18) 우리는 만일 우리가 행동하는 것을 말하고, 말하는 것을 행동한다면 깨끗하다. 우리가 행동으로 사랑한다면,(3,18)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3,19) 하느님 안에 살게 될 것이다.(3,24)

사도행전의 구절은 오래된 제자들이 새 개종자인 바오로를 무서워 한다고 말해 준다.(사도행전 9,26)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이 바오로를 예전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 이외에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오로는 이미 사명에 대한 갈망 없이 생활에 안주해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하는 힘과 넓은 마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새롭게 신앙을 받아들여 사명의 에너지가 충만했다. 그는 용감하게 설교했고, 그리스 계통의 유대인들과(그리고 아마도 그리스도인들과도) 논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오로의 메시지와 열정이 그를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한다.

바오로는 우리에게 너무나 힘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즉 이웃들을 그들의 특정한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도피처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역사 위에 자리 잡고 땅에 뿌리를 깊이 박은 포도나무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어려움이 야기된다 해도 두려움 없이 우리 이웃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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