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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상업화와 연대성의 원리 2[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1. 전문가주의의 기원

의사와 성직자와 법률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신부와 건달의 공통점은?”식의 우스개를 뒤로 하면, 이 세 가지의 직군은 서양 역사에서 최초로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전문 교육 과정을 거쳐 양성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신학으로 명성을 얻은 파리 대학, 최초의 의과대학인 살레르노 대학, 그리고 법학의 요람 볼로냐 대학이 12세기 후반부터 설립되기 시작하여 중세 대학 가운데 선구적 위치를 누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먼저 문법과 논리학, 수사학의 3학를 배운 다음, 산술, 기하학, 음악, 천문학의 4과를 배움으로써 자유과(Liberal arts)를 마치는데, 이렇게 인문적 기초를 닦은 학생들 중에서 소수만이 앞서 언급한 세 학문을 공부할 자격을 얻었다. 그리하여 최소 8년에서 14년에 이르는 긴 교육 과정을 마치고 나면, 의사와 성직자와 법률가는 그들의 지식과 술기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를 위해 쓰겠노라는 선서를 했는데, 이 선서(Profess)를 통해서 사회로부터 독점의 보호를 받는 동시에 더 높은 윤리 의식과 공익 우선의 자세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노라는 일종의 사회계약을 맺게 되었고, 이를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의 기원으로 본다.

어떤 직업이라도 고유한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 세 가지 직군을 유독 ‘전문직’으로 대우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세 가지 직군이 인간 그 자체를 보살필뿐 아니라 특별히 비밀을 다루기 때문이었다. 먼저 사제는 영혼을 보살피고 고백성사와 면담을 통해 내면의 비밀을 마주하는 사람이다. 법률가는 사회적 관계의 비밀을 다루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의사는 인간의 비밀을 가장 광범위하게 다루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의철학의 거두 에드먼드 펠레그리노에 의하면 의학은 인간의 내외면을 다함께 아우르고 그 비밀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고 사회는 이 위치에 상응하는 지위와 보상을 제공하기 위해서 제도적 장치를 유지해 왔다. 오늘날의 의사 면허제도도 그러한 장치의 하나다.

의사는 인간의 비밀을 가장 광범위하게 다루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Pxhere)

2. 의사가 되기까지

그렇다면 오늘날 의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많은 이가 의대생들의 엄청난 학습량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만 하더라도 토요일 새벽쯤 되면 거의 매 주말 반복되는 시험이나 발표 때문에 좀비 비슷한 모습으로 강의실과 도서관을 서성이는 학생들이 다수다. 의과대학의 경우 최소 6년의 공부 끝에 국가고시를 통과하면 일단 의사 면허는 얻게 되지만, 많은 경우 전문의 면허를 더 하기 위해 다시 몇 년의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방대한 학습량과 지난한 과정에 비추어 보면, 과거에 비해 갈수록 약화되는 의사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상은 부당하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계약의 관점에서 볼 때 의사들의 헌신과 사회의 보호 및 보상이 과연 공정하게 교환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심을 품을 만도 하다.

그러나 의사가 배운 의학 지식과 술기 능력이 과연 의사의 독점적 소유물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 보면 경우가 달라진다. 예컨대 목공 기술이나 컴퓨터 전산 기술의 경우에는 열심히 배워 익힌 사람들의 소유로서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하거나 상업적 이익에 활용할 수 있지만, 의학은 그렇지 않다. 면허와 자격증 제도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는데, 면허는 원칙적으로 허락 없이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공익을 위해 특정한 사람들에게 허용하는 것이고, 자격증은 그 자격증을 가진 사람의 능력을 권위 있는 기관이 보증하는 것을 뜻한다. 면허 없는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면 처벌을 받지만 조리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요리를 한다고 해서 불법은 아닌 것처럼, 면허는 사회가 그 면허를 소유한 집단에 부여한 특권이다. 예컨대 사람의 옷을 벗기고 은밀한 구석까지 들여다보는 행위나 몸에 칼을 대고 상처를 헤집거나 약물과 주사를 투여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금지된 행위이지만, 의사는 면허를 통해 그런 일을 하도록 허용된다. 의과대학생들이 해부학 교실에서 타인의 시신을 헤집고 바라보는 행위, 어설픈 지식에도 환자를 대면하여 병력을 청취하는 행위, 의사의 감독 하에 시술과 수술에 참여하는 행위 등은 오직 사회가 주는 특권의 예들이다.

따라서 의학 교육의 특권을 받을 때, 의학도들은 암묵적으로 그들의 지식을 환자를 위해 쓰겠다는 사회와의 약속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 약속에 들어섬으로써 그들은 의학지식의 소유자라기보다는 관리자가 된다. 교회가 의료인들을 ‘생명의 봉사자’로 일컫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은 보상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 보상의 근거는 그들이 의학 지식의 소유자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로서 책무를 다하는 데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의사만이 아니라 독점적인 권한을 보장받는 이들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누군가에게 특권이 주어져 있다는 것은, 그들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거나 남다른 능력을 지녀서가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 갚아야 할 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연대성의 원리는 이렇듯 인간 상호 간의 의존성과 상호 존중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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