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착한 목자' (이미지 제공 = 박유미)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부활 기쁨의 시기
길 잃은 양을 위해 목숨 걸고 헌신하는 착한 목자처럼

부활시기를 지내는 신앙인들은 부활의 기쁨을 경축하면서 그 부활의 신비를 이제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가운데 하느님나라가, 구원의 완성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희망하면서 살아야 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거룩하게' 일상을 이루어 가야 한다.

초대교회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렸던 착한 목자,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사랑으로 양들을 이끌고 구하는 착한 목자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부활 둘째 주일 자비 주일에 발표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처럼 지내도록 하는 (거룩한) 기쁨의 부활시기도 중반을 지나고 있다. 교회력 안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신앙의 토대가 되는 시간. 구원사의 중심이 되는 부활을 기념하고 그 뜻을 새기는 시간은 교회에서 첫 번째로 기념하던 축일로 초대교회부터 이어져 오는 것이지만, 주님 수난을 묵상하며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절과 성삼일처럼 부활 주일부터 성령 강림까지 50일을, 부활 8주로 경축하며 새기는 부활시기도 시간의 흐름 안에서 구원사에 연결되는 유대교의 축일 전통과 그 신학적의 의미를 정립하는 논의를 거쳐서 정립되었다. 

성령 강림까지 50일의 시간도 "부활 이후 7주"라 불리다가 전례개혁 후에 부활 주일을 포함하여 부활 주일에 이어지는 "부활시기의 주일들"로 부활 8주가 되었다. 가톨릭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다른 교회들, 구가톨릭과 영어권 루터교에서도 "부활시기의 주일들"로 정했다.

부활시기 가톨릭 전례에서 특징적인 것은, 1. 제1독서는 모두 사도행전에서, 2. 복음 말씀은 거의 모든 주일에 요한 복음, 특히 부활하신 예수가 나타나심과 반복되는 성령에 대한 약속(요한 14,16; 14,26; 15,26; 16,7)에 대한 텍스트와 이별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산상설교 색유리창. 독일 프랑켄아우 운터폴렌도르프. (사진 제공 = 박유미)

부활절 이후 매 주일은 그날의 복음과 말씀 첫머리에 따라서 그리고 전통 관습에 따라서 각각 이름을 붙이고 그 의미를 새겼다. 부활 주일에 영세를 받은 어린아이들이 다음 주일까지 8일간 하얀 세례복을 그대로 입고 있다가 벗는다고 해서 "새로 태어난 아기처럼"(Quasimodogeniti) 주일에서 "백의 주일/하얀 일요일"이라 불리게 된 부활2주,  19세기 이후에는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던 의미가 있는 이날에 어린이들 첫영성체를 주어서 첫영성체 아이들의 하얀 옷을 연상하게도 되었는데, 새천년에 들어서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하느님의 자비를 묵상하고 전한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며 이날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인간을 보살피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자비주일"로 정했다.

"주님의 자비 온 땅에 가득하네!" 시편 3,5 구절처럼 "하느님의 자비"(Miseridordias Domine)를 그리는 부활3주, "나는 착한 목자"라고 하시는 복음 말씀에 따라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도 불렀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이날 사제, 수도자 성소를 위해 기도하도록 '성소 주일'로 정했다. 원래는 '착한 목자 주일'이자 '성소 주일'이 부활3주였지만, 부활 주일 이후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 세 번을 먼저 새기고 그 다음 그 의미들을 돌아보는 것으로 전례개혁을 하면서 1973년부터 가톨릭에서는 부활4주가 '착한 목자 주일'이 되었다. 그리고 "온 세상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하는 찬미 주일(Jubilate)인 부활5주, 교회음악 주일이기도 한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려라"(Katate) 주일인 부활6주,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을 새기는 "기도하여라"(Rogate) 주일이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요일 주님 승천 축일이 주일로 이동하면서 부활7주, 주님 승천하신 후 이별의 여운 속에서 성령이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들으소서"(Exaudi) 주일을 함께 지낸다. 제자들에게 "세상 끝까지,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당부하심을 새기며, 특별히 현대의 다양한 홍보매체들을 복음 선포에 적극 활용하며 매체들이 올바로 사용되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홍보 주일'이기도 하다.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주님 승천 다음 주일을 '홍보 주일'로 정했다. 그리고 부활8주, 성령 강림 대축일로 부활시기가 끝난다.

'착한 목자', 로마 프리실라 카타콤바, 3세기 후반.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성령 강림 대축일로 부활시기가 끝난다는 것은 성령 강림으로 수난과 부활의 인류 구원의 신비가 완성되고 이 신비가 성령과 함께 하는 교회 안에서 역사의 종말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활시기를 지내는 신앙인들은 부활의 기쁨을 경축하면서 그 부활의 신비를 이제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가운데 하느님나라가, 구원의 완성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희망하면서 살아야 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거룩하게' 일상을 이루어 가야 한다. 재임 초기부터 '하느님의 자비'를 강조하고 '자비의 해'로 '복음의 기쁨'으로 '하느님처럼 자비로이' 자비를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특별히 "자비 주일"에 세 번째 교황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발표하신 뜻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 권고문으로 "모든 이가 각자 일상생활에서 '거룩함'의 소명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하고자“ 했다는 말씀에 담긴 뜻.  

승천하시기 전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당신 떠나심이 지니는 더 큰 사랑의 의미와 제자들의 소명을 심어 주고, 그리고 조력자를 보내 주신다는 약속을 해 주시는 시간, 부활4주인 지난 주일은 착한 목자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새겨 보는 착한 목자 주일이었다. '착한 목자'는 초대교회 신자들이 처음으로 표현한, 가장 오래된 예수님의 표현 형태였다.

3세기까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수치스러운 십자가상 죽음에 대한 표현을 피하고 대신 잃어버린 양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착한 목자" 모습 안에서 죽음의 나라로 내려간 것을 표현했다. 파아란 풀밭에서 어린 양들이 뛰어 노는 좋은 시기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성금요일과 부활 사건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표현이었다. 고대에도 동방 거의 모든 곳에 많이 퍼져 있었던 주제였고 인간에 대한 친화를 비유하는 비유로 이해되기도 하고 비참한 상황에서 죽은 이들의 무덤 장식으로 쓰기도 했던 표현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구원을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결했다. 140여 개의 카타콤바 성당에 착한 목자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십자가 수난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십자가 경배가 널리 퍼져간 것은 중세 중기, 10세기 이후였다.    

'착한 목자', 라벤나, 갈라 플라씨디아의 무덤, 5세기 초반. (사진 제공 = 박유미)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라는 예수님 말씀에서처럼 그분이 나를 아신다, 나의 약함과 두려움을 아시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 주신다는 것은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무엇보다도 목자가 양들을 알고 있듯이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시고, 한 마리 양이 길을 잃어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신다는 것은 깊은 신뢰를 준다. 양들을 보호하고 이끌고, 또 길을 잃어도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나서며 찾으면 크게 기뻐하시는 모습.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약속하고 실행하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신 분. 착한 목자 예수 그림을 보며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분의 사랑,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아무도 내 손 안에서 그들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요한 10,28)는 말씀대로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신다는 약속을 새겼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과 고통 중에서도 그분의 소리를 듣고 그분 안에 머물며, 그분과 함께 싸우며 나아갈 힘을 얻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어떤 모욕과 박해 가운데서도 앞서 길을 가시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신 분의 사랑과 모범을 믿고 따르며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주님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아란 풀밭에 이 몸 뉘어 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이끌어 주신다.

내 바람을 채워 주신다

당신 이름에 충실하게“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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